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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리더에게 필요한 것[제422호]


관리자   조회 : 190, 등록일 : 2017/05/16 11:38

 

모든 리더는 가끔씩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한다. 그러나 리더이기에 자신의 실패를 딛고 일어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따르는 이들을 성공의 자리로 이끌어야 한다. 리더이기에 많은 장애물도 있다. 돌부리에 걸려 주춤할 수 있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난다. 언제나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에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한다. 리더는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에서 포기라는 사치를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의 리더를 주님을 섬기려고 하다가 자주 실패했던 베드로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주저앉고 포기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은 그였지만 주님이 회복을 위해 마련하신 만남의 장소에서 그는 다시 일어나 주님이 부르신 리더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모두 베드로 안에 있던 상당한 잠재력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발견하셨다. 그래서 그를 게바라고 하셨다. 좌충우돌이 반복되는 상황이 그에게서 많이 연출되었지만 수동적인 다른 동료 제자들에 비해 언제나 적극적으로 주님을 향하여 나아갔던 자였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결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그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배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디베랴 호숫가에 나타나신 주님을 발견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주님께로 가기 위해 배에서 뛰어내렸던 그는 가능성이 참으로 많았던 리더임이 분명했다. 그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 실패 뒤에 새로운 시작을 이어갔다. 실패마저도 사용하셔서 자신의 삶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았다. 마치 자신의 스승이셨던 예수님처럼 말이다.

우리의 주님은 참으로 탁월한 리더이시다. 우리의 반복되는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적으로 기회를 주시며 결국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시며 지속적으로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늘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부활하신 주님과 만남의 자리에서 회복되는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몇 가지를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삶을 교정할 필요성을 인지해야 한다.

주님의 제자들은 스승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떤 제자들은 고기를 잡기 위하여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서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그들의 노력이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주님은 개입하셨다. 또한 제자들이 이러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21:5)라고 질문하셨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21:6)라고 명령하셨다. 사람들은 종종 모든 것이 실패한 다음에야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데 제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이 주님의 명령대로 하자 그물에 고기가 가득 차서 배 위로 끌어올리기가 힘들 정도였다.

둘째, 주님은 우리 삶 가운데서와 우리 곁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께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요한은 주님이 자신의 곁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신속하게 그분의 임재를 깨닫는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21:7)라고 고백했다. 주님의 역사를 스스로 깨닫는 요한과 같은 이도 있지만 주님의 역사를 누군가가 해석해 주어야만 되는 베드로와 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의 삶에 분명하게 역사하고 계시는 주님에 대한 깨달음의 깊이와 속도, 더 나아가 상황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주님은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며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신다는 것이다.

셋째, 말과 행동 모두에서 그리스도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한다.

제자들은 주님이 차려놓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주님과의 교제를 새롭게 했다.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방금 잡아 올린 고기를 불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그 일에 이바지했다(21:10). 그러나 행동만으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사이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기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 이번에는 반대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세 번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며 과정을 밟으셨다.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의 행동을 변명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밝히자 예수님은 그에게 더 많은 사역을 맡겨 주셨다.

넷째, 다른 부수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고 자기 앞에 주어진 임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요한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 회복된 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갔다. 요한복음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요한은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 너무도 많아 만일 그것을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21:35).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20:31)”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것을 걸러냈다. 넓게 펼치며 많은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보다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리더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교정하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 리더가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리더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자리에 있고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으면서 말이다. 그럴 때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신뢰를 가진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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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권위 회복하기[제431호]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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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권위 회복하기 오늘날의 시대는 목회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더 이상 목회자를 지혜와 성실함의 대명사로 바라보지 않는다. 목사라는 직책 자체의 권위도 추락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제 목회자들이나 설교자들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목회자 스스로가 존경, 신뢰 그리고 권위를 얻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내가 왜 목회자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와 같은 사람들의 의문이 커지는 상황에서 목회자 스스로가 적절한 권위를 회복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목회자의 설교 사역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와 목회자의 권위가 상실된 이 시대에서 권능 있고 효과적인 모습으로 복음을 전달하고 설교하기 위해 필요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어떻게 이러한 권위 회복을 위해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해돈 로빈슨 교수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따라가 보자. 성도들이 표현하지 않은 감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라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목회자가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교회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먼 과거의 성경 속 리포터가 전해 주는 내용을 예의 바르게 들을지는 몰라도 설교자가 그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확신하지 않으면 설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도들에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성도들을 ‘위해’ 이야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래, 맞아. 나도 그래’라고 반응이 성도들에게서 느껴지도록 설교자는 성도들의 감정을 표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도들에게 귀 기울여라설교자가 청중과 효과적으로 관련성을 갖는 또 다른 방법은 책상 앞에 앉아 설교를 준비할 때 그 주변에 예닐곱 명 정도의 보통 사람들을 앉게 하는 것이다. 빈정거리는 사람, 단순하게 모든 것을 잘 믿는 성도, 몸을 비비 꼬고 있는 십대의 청소년, 외로움에 빠진 이혼한 홀어머니, 종교적인 용어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비신자, 교회에 나와 앉아 있지만 왜 왔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사람, 하루하루 노동해서 먹고 사는 노동자. 설교를 작성하는 당신의 책상 주변에 이러한 사람들, 당신의 설교를 들어야 할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설교를 준비할 때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복합성을 인정하라삶은 매우 복합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렇지 않는 것처럼 설교한다. 설교자가 권위를 가지고 의사소통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시장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봐야만 한다. 삶에 긴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단순하게 지적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지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결코 어떤 행동에 대해 그 자체가 올바른 행동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 어떤 행동도 동기와 유리된 채 올바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살인, 거짓말, 간음과 같은 명백한 행동이 있지만 올바른 행동에 대해서 이와 마찬가지로 규정하고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권위를 가지고 말하라설교자들은 단순히 ‘함께 힘들어 해 주는 사람’ 이상이 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은 지금 진행되는 힘든 문제가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성경의 메시지를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에게서, 어떻게 타격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서 조언 듣기를 원한다. 성도들의 경험이나 필요에 대해 잘 알고 공감도 해야 하지만, 성도들에게 그들이 지금의 모습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소망을 주며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설교자가 성경의 전문가로서 건강하게 균형이 잡힐 때 설교자의 권위가 세워진다. 설교자는 성도들의 어려움과 상처를 잘 알고, 성경과 신학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한다. 설교자가 성경에 의존함으로써 성도들을 섬기고 설교할 때 신뢰성은 더욱 높아진다.  묘사와 설명을 정확하게 하라설교자가 한 성경 본문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 설명하거나 혹은 예를 제시하고자 할 때, 묘사나 규정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하는 일은 특별히 중요하다. 정확성은 적대감을 갖고 있거나 혹은 좀 덜 호의적이며 날카로운 청중에게 필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설교자의 사소한 실수와 잘못을 설교자가 말해야 할 나머지 다른 부분을 귀담아 듣지 않을 이유와 근거로 삼을 것이다. 설교자가 전문적이지 않는 영역의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자신의 비전문성을 인정하거나, 혹은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정확하고 공정하게 대하는 것은 설교자를 향한 신뢰성을 향상시켜 준다. 인격을 제시하라인격은 교회 리더들에게 권위와 신뢰성을 향한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어떤 설교자들은 사역에 깊이 헌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진정한 인격과 특징을 감추는 방식으로 자신을 포장한다. 하지만 설교자가 자신의 내적 확신이나 내적 모습을 그에 적합하고 잘 부합하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 제시해 주는 능력은 효과적인 설교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설교자가 제시하고 보여 주는 이미지는 신뢰성에 영향을 미친다. 강단에서 외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모습은 성도들이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현대 문화 속의 청중은 외적인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어떻게 자신을 자기가 확신하는 것과 잘 부합하는 모습으로 드러내고 보여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내면의 인격을 더욱 바르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전하기 위하여 밖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지 자기 인격을 교묘하게 포장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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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삼는 교회에 필요한 리더십[제430호]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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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교회에는 어머니의 온유함과 아버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리더는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역사적으로 제자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지하는 관계의 필요성을 간과해 왔다. 그들은 친교를 재생산의 부산물로 보았다. 리더와 회중에게 부모의 마음이 없다면 제자 양육이 강력하고 생산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확신한다. 부모의 마음이 없는 교회는 역기능 가족과 같다. 제자 양육이 제대로 일어나기 어렵다. 어머니의 온유함어머니는 원래 온유하며 받기보다는 주는 사람이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바울은 생생한 비유로 어머니의 마음을 설명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데살로니가전서 2:7) 바울이 ‘돌봄’의 의미로 사용한 헬라어 원래의 뜻은 ‘따뜻하게 하다, 소중히 하다’이다. 무릎에 상처가 나거나 몸이 아픈 아이는 엄마에게 온다. 엄마의 온유함과 용납은 아픈 상처도 낫게 해 준다. 아이는 어머니의 무릎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와 상관없이 특별하고 사랑받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안전과 안정, 온유함과 용납의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모두가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 특히, 인생의 실패로 심각한 충격을 받고 실망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성품이나 은사, 신앙에 따라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제자도 환경에서 이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은 탓에 많은 훌륭한 사람을 놓치는 경우가 제법 많다. 회중 가운데 어머니의 온유함이 효과적으로 발휘되려면 리더들이 정신적 지주들에게 적절한 제자 양육을 해야 한다. 이들이 전체 몸과 같은 가치관을 갖지 않는다면 그들의 공감 능력은 오히려 교회 리더십에 대적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성경으로 바로 서 있지 않으면 비성경적인 사고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 아버지의 리더십교회 가족이 균형을 유지하려면 어머니의 온유함과 함께 아버지의 리더십도 필요하다. 아버지는 권위자로서 인지적인 역할을 맡는다. 바울은 어머니가 보살피고 아버지가 인도한다고 말한다. 보살핌과 인도를 둘 다 할 때도 있지만 그들의 주요 역할은 다르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2:11~12) 바울은 위의 구절에서 사랑의 3가지 동의어로 아버지의 리더십을 설명한다. 첫째는 ‘권면’이다. 권면이란 ‘특정 행동 방식으로 이끌고 도와주다’를 의미한다. 즉, ‘와서 나를 따르라’의 리더십이다. ‘우리는 여기로 가야 한다. 내가 책임지고 너를 훈련하고 도와주겠다’는 의미가 있다. 교회에는 바른 일을 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아버지의 리더십은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향을 제시하고 그들을 인도한다. 엄격한 리더십은 저항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행동을 제시한다. 목회의 핵심은 동기를 유발하여 사람들이 스스로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위로’이다. 위로란 ‘감정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특정 행동을 하도록 권면하는 것’을 의미한다. 권면은 사람의 논리에 호소하지만 위로는 사람의 감정에 초점을 둔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방식이나 계획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럴 때는 심리적 안정에 호소하여 심각한 위기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보호할 수 있다. 셋째는 ‘촉구’이다. 촉구에는 ‘법정에 소환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가정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을 따라오도록 아버지가 가족을 촉구해야 할 때가 있다. 아버지는 리더십을 행사하여 가족이 힘든 경험을 통과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아버지는 명분에 대한 신념도 있고 그 행동에 필요한 심리적 안정이 있기 때문에 가정을 이끌 수 있다. 부모의 마음어머니의 온유함과 아버지의 리더십이 만나면 부모의 마음이 생긴다. 부모의 마음은 아이에게 향한다. 부모는 아무리 찢어지게 아파도 기꺼이 아이들에게 마음을 모두 내어 준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이들의 마음을 수용할 넉넉함을 주셨다. 사람을 세우는 교회에는 부모의 마음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이 결합되면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본이 된다. 부모의 마음은 교회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 접착제이다. 우리에게는 온유함, 권고,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두 사람 또는 열 사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부모의 마음은 우리가 몸 전체, 공동체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만 개발된다.  위의 글은 빌 헐의 『제자삼는 교회』(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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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설교를 위한 설교자의 배려 [제429호]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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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는 설교를 위한 설교자의 배려바울은 복음을 증거 함에 있어서 많은 이방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했다(행 17:22-23, 24-28). 그가 즐겨 표현한 대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말이다. 그는 나름대로 문화에 적응하며 상황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여 지는데, 아마도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과, 동시에 복음이 배제된 그 시대의 문화에 당당하게 맞서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지금은 1세기 때보다 시대 문화와 가치가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어떻게 복음을 더욱 선명하면서도 강력하게 증거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회색지대가 넓어지고, 복음의 메시지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좀 더 선명하게 들려지도록 지혜를 구함은 물론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노력이 더 필요할까?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가 남긴 복음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을 향한 설교자의 배려라는 측면과 사람들의 귀에 메시지가 더 들려지도록 하기 위한 전달의 과정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 번째,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어휘 사용하기그리스도인이나 교회 내부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익숙한 단어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된다. 신앙적으로 열심이 특심?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단어, 즉 기독교 안에서만 들려지는 특유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단어를 삼가해야한다. 중요한 단어나 표현일수록 반복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의를 소개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신학적 정의나 논지를 설명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청중이 자신들의 언어로 들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을 따로 구별하며 비 그리스도인을 표현할 때 그리스도인을 우월하게 표현하거나, 비 그리스도인을 비하하는 표현과 어휘는 삼가해야한다.     두 번째,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에 도움 받기최고의 권위인 성경의 가르침을 강화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에 압도당함으로 변화된 사람의 고백을 인용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해주는 예화나 인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설교의 주제와 관련되어 그 주제와 분야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자와 그의 설교에 관심을 갖게 하고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말씀 그 자체이셨던 예수님도 당신의 말씀의 권위와 논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모세와 선지자의 글, 시편 기자들의 글인 구약을 인용하셨고, 그 시대가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적 통념을 반영한 가르침과 이론들을 적절히 이용하셨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의 인용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반복이나 나열은 도리어 전하는 메시지를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저항과 반대를 이해하기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감 없이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다. 내면에 의구심과 반대의 의견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믿어지고 그것을 신뢰하며 붙잡고 사는 삶이 되었다. 메시지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의구심과 반대의 의견에 따른 갈등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경험이 있었고, 또한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세상의 세속성과 비 신앙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겸손이 빠진 우월감이나 공감이 생략된 무조건적인 공격은 도리어 청중들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게 만든다.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기에 주저하는 사람들이다. 설교하는 당신이 도리어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들의 의심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네 번째, 인간의 분명한 한계를 직시하도록 하기복음은 단순하다. 그러나 복음의 적용은 매우 다양하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과 관계와 공간과 조직이 많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은 단순하지만 강력하기에 인생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공통점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많은 시행착오와 한계를 경험한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란 파랑새가 저 멀리 날아가거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 고통 앞에서 주저앉아 울기도 한다.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결코 자신의 직관과 계획, 경험과 노력만으로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이나 성공을 쟁취할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이 일을 위해 아픈 곳을 더 아프게 할 수 있고, 그들의 혼란을 더 가중 시켜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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