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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3가지 형태[제442호]


관리자   조회 : 318, 등록일 : 2017/10/10 15:28

 

열매의 3가지 형태

 

수확의 계절이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일꾼으로서 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어떤 것을 좋은 열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선한 일, 즉 선행을 통해서 나타난다. 은밀함, 공적, 개인적 등 3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선한 행실을 통한 열매를 살펴봄으로써 수확의 계절에 삶을 통해 맺은 열매를 계수해 보자.

  

첫째,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

이것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 선행이다. 당신이 선행을 하는 동안 당신을 주목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행하는 특성이 있다.

 

A.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구제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3~4)

 

, 음식, 옷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선행은 단지 주는 것뿐만 아니라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당신 자신이 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한다면 당신의 동기는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기에 선행이라고 할 수 없다.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구제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구제를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보이려고 하느냐, 보이려고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해당된다.

 

 

B.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기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6)

 

많은 사람이 기도를 선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도는 대표적으로 선한 행위이다. 주님 외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당신은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이다.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함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는 그 사람을 위해 하늘의 능력을 풀어 놓는 사역이다.

 

 

C.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금식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7~18)

 

어떤 특별한 필요를 느낄 때 그리스도인들은 금식한다. 기도의 힘과 강도를 증대시키기를 원할 때 금식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열심을 증대시키고 주님께 더욱 초점을 맞추고자 할 때 주목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시며 자녀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둘째,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

이 선행은 은밀히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선행이다. 일반 대중과 지역 사회에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A.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러내는 선행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공적 선행은 보여질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도록 영감을 준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고 공정하고 아름다운 선행을 통해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눈길을 끌게 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의 선행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하기 위함이다.

 

 

B. 믿는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선행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1~12)

 

비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지속적인(현재 능동태) 선행을 보기 때문에 당신을 비난할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성도는 궁핍한 사람들과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해야 한다. 그 결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당신이 있음으로 인해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C. 개인의 참여와 희생이 요구되는 선행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그리스도인은 가장 궁핍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나 과부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선행은 특별히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고아나 과부와 같은 궁핍한 사람들은 자신을 도왔던 사람에게 자신들의 능력으로 대갚음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선행은 어디서나 주목을 끄는 선행이 된다.

 

 

셋째, 개인적인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

그리스도인은 은밀하거나 공개적인 선행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선을 행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선행이 삶의 부분이 되게 해야 한다.

 

A. 이웃과 일터에서

일터는 당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선행을 할 수 있는 요람과 같은 곳이다. 오늘날 비윤리적이고 탐욕스런 일터에서 희생적인 행동과 진실한 나눔은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신선한 충격(영향)을 줄 수 있다.

 

B. 가정과 결혼 생활에서

선행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는 가정, 즉 결혼과 가정생활이다. 디모데전서 5:10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행임을 알 수 있다. 선행의 영역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C. 사역에 은사를 활용함으로써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우리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선행하도록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크고 작음을 떠나 이 땅의 소망인 교회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은사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행위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보실 때 기뻐하실 선한 행위이다. 이러한 선행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더욱 성장시키며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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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세상, 외로운 그리스도인 [제477호]
2018/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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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세상, 외로운 그리스도인캐나다 출신의 힙합 가수 드레이크가 부른 노래에 담긴 한 가사인데 한국 문화를 만나 더욱 유명해진 문장이 있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다” YOLO).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마법의 주문처럼 기업의 마케팅에 활용되면서 더욱 확장되고 왜곡되어 “한 번 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자”라는 신조어로 둔갑했다. 욜로 햄, 욜로 빙수, 욜로 인테리어 조명, 욜로 모발이식, 낯선 땅에서 참된 행복을 만나는 욜로 여행과 같은 상품으로 말이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분들까지 가세하며 ‘쓰죽회’가 등장했다. ‘한 번 사는 인생, 다 쓰고 죽자’불안한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현재 삶을 즐기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기에 혼삶을 살며, 혼밥을 먹고, 휴가 때 지갑을 톡톡 털어서라도 해외로 긴 혼행(혼자하는 여행)을 한다. 집이나 물건은 사는 것이 아니라 렌트하며 다양한 경험을 위해 취미 활동에 적극 투자한다. 당장이 중요하고 당장을 즐기는 문화를 연출하면서 말이다.젊은 2030 성인 남녀 84%는 욜로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60.7%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55.4%는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있어서”, 30.7%는 “실용적인 생각 같아서”, 23.5%는 “열정적인 것 같아서, 20.9%는 “도전 정신이 있어 보여서”이다. 통계를 볼 때면 함께하는 삶은 누군가에게 구속당하고, 자기 삶을 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혼자사는 삶에 익숙하고 혼자가 편하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갈등도 없고, 자기 주도적인 삶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년기로 갈수록 혼자의 삶은 편함이 아닌 비극적인 모습임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통계청은 전국적으로 1인 가구의 비율이 1위가 되는 시기는 2019년(29.1%)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또 인구주택 총조사에 의하면 혼자 사는 50대 1인 가구 비율이 10년 동안 123%나 증가해 차후 1인 가구 대부분은 노인 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기 진입 그리고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서서히 해체되고 있는 사회 현상도 욜로 인생, 혼자 사는 인생을 부추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은 물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다 고독하게 사망하는 사람들이 매년 급증하여 사망자가 최근 4년간 57%나 증가하여 2017년 한 해 2000명을 넘은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이러한 이야기가 아직은 남의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혼자만의 욜로 인생을 즐기는 현재의 사람들이 직면하게 될 미래의 비극이라는 이야기이다. 현대인들은 혼자이면서 혼자인줄 모른다. 각종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SNS)에 연결되어 있어 가상 공간에서 소통하고 있으며, 포털(네이버, 다음 등)을 통해 세상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손바닥 안에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이 발견된다. 혼자로서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 간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만으로 충분한 삶은 반드시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로 나아가 그들과 연결됨으로써 그 진정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함께하는 삶이 ‘갈등’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을 수반하지만, 함께하는 삶이 서로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s)임을 잊지 말자. 혼자만의 삶은 하나님이 원래 디자인하신 인간다움의 삶이 아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함께’ ‘서로’ 라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다. 혼자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혼자가 익숙하기에 서로를 의지하고 도와주는 것이 불편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혼자가 편하기에 신앙생활을 많은 사람이 모여 드리는 주일 낮 예배에만 살며시 참석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혼자가 익숙한, 별로 건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외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불편할지라도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혹시 당신은 혼자가 아닌가? 혹시 외로운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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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제476호]
2018/06/05
127
하나님의 주권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메마른 신학적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의 작용은 사실상 일상의 삶 속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주권이 현재 작용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몇 년이 지난 뒤에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될 때도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작용하는 실례가 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이 소개된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한다.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간섭과 통제에서(그렇게 하시는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벗어나 그저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게 된다. 그러다가 이러한 그들의 타락은 사무엘이라는 지도자와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라는 외침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백성의 요청을 들어주어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무엘을 찾아올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시며 만남을 미리 알게 하신다. 하지만 왕이 될 사울은 암나귀를 잃어버린 아버지의 요청으로 사방팔방으로 그 나귀를 찾아다닐 뿐이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귀를 찾을 수 없어 포기하려 했던 사울은 동행했던 사환의 간청으로 누구인지도 모르던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저 암나귀 한 마리를 찾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었다. 결국 사울은 사무엘 앞에 서게 된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한다.사무엘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주권이 현재 작용하는 모습을 듣고 보고 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나귀 한 마리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을 뿐, 사무엘을 만나고 기름 부음을 받는 어마어마한 일을 단지 일상의 삶에서 우연히 일어난 기적처럼 여겼다. 우리가 듣거나 듣지 못하거나,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거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실행해 가시는데 작용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하나님의 주권을 사람들은 하나님의 폭정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에게서 결정을 내릴 책임을 빼앗지 않으시면서도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시며 우리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의 주권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에 찾아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러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적극적인 개입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개입은 나타나는 형식, 즉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매우 구체적이다.종종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일하신다고 해서 우리 자신을 로봇으로 보거나 스스로 결정하면서 하나님 앞에 반응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오해는 주권적인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주권이란 하나님이 모든 순간을 통제하시기에 하나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먼 곳에 홀로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그분을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단의 능력을 주신다. 사랑 안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서로를 의탁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성을 억누르면서 우리를 함부로 다루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막대기처럼 다루시거나 로봇처럼 원격으로 조종하지 않으시며 변덕쟁이처럼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인격 대 인격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며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말씀하시며 우리가 사랑과 애정으로 반응하도록 이끄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자신의 주권을 바탕으로 인간을 다루시고 이끄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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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꾸기 [제475호]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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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꾸기 마음이나 인격에 흠이 있는지 겉을 보아서는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마음이나 인격은 단순히 오래 지속된 습관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겉으로는 잘 웃고 말도 잘 할 수 있지만 안으로는 상처나 고통, 실패감을 안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마음은 어떤 것인지 늘 생각해야 한다.     한 부유한 사람이 집을 짓기 위해 공사 감독자를 찾아 그에게 설계도와 많은 돈을 주었다. 그는 돈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이 돈을 다 쓰게 되지는 않을 거요. 그렇지만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을 지은 후 돈이 남으면 갖고 있길 바랍니다.”공사 감독인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받은 돈 중 극히 작은 액수로 집을 지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돈이 남아 자기 주머니에 넣을 수 있음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즉시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부분을 날림 공사로 했다. 집의 틀을 짜는 데 되도록 적은 나무를 사용했다. 널판 하나에 못도 하나만 사용했다. 페인트를 칠할 때는 한 겹만 발랐다. 지붕은 너무 성기게 깔아서 간신히 집을 덮게만 했다. 공사를 마쳤을 때 그 집은 겉모습은 근사해 보였지만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공사 감독관은 집 열쇠를 부자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당신의 열쇠입니다.” 그 순간 부자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가 말을 안 했군요. 이 집은 당신 집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마음의 진실함, 정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풍조가 늘어가고 있다. 더 많은 이익의 추구가 최고의 목표가 되어 가치의 중요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겉의 화려함에 취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사람들에게 비치는 이미지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프로그램과 같은 기술적인 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영향을 주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각자의 삶과 훈련에서 얼마나 날림 공사를 하는지 아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겉모습을 보며 우리를 과대평가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에 우리의 실체를 알고 계신다.우리가 마음을 제대로 가꾸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감동도 줄 수 없고, 누군가의 마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다. 감동과 선한 영향력은 마음과 마음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 서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잘 진단하고 가꾸어야 한다.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는(Bill Hybels) “인격은 어둠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모습이 당신의 참모습이다”라고 말했다. 대중에게 노출되었을 때 드러나는 모습보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 나타나는 우리의 모습이 진짜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폴 파월(Paul W. Powell)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가 안락함을 누리는 것보다 훌륭한 인격을 갖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를 육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게 하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일반적으로 훌륭한 인격이 어떠한 인격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완벽한 모델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완벽한 모델을 닮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가꾸려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실체인 내면의 인격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할 모습으로, 주님을 더욱 닮는 모습으로 가꾸어 가야 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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