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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3가지 형태[제442호]


관리자   조회 : 127, 등록일 : 2017/10/10 15:28

 

열매의 3가지 형태

 

수확의 계절이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일꾼으로서 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어떤 것을 좋은 열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선한 일, 즉 선행을 통해서 나타난다. 은밀함, 공적, 개인적 등 3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선한 행실을 통한 열매를 살펴봄으로써 수확의 계절에 삶을 통해 맺은 열매를 계수해 보자.

  

첫째,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

이것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 선행이다. 당신이 선행을 하는 동안 당신을 주목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행하는 특성이 있다.

 

A.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구제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3~4)

 

, 음식, 옷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선행은 단지 주는 것뿐만 아니라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당신 자신이 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한다면 당신의 동기는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기에 선행이라고 할 수 없다.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구제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구제를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보이려고 하느냐, 보이려고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해당된다.

 

 

B.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기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6)

 

많은 사람이 기도를 선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도는 대표적으로 선한 행위이다. 주님 외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당신은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이다.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함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는 그 사람을 위해 하늘의 능력을 풀어 놓는 사역이다.

 

 

C.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금식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7~18)

 

어떤 특별한 필요를 느낄 때 그리스도인들은 금식한다. 기도의 힘과 강도를 증대시키기를 원할 때 금식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열심을 증대시키고 주님께 더욱 초점을 맞추고자 할 때 주목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시며 자녀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둘째,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

이 선행은 은밀히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선행이다. 일반 대중과 지역 사회에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A.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러내는 선행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공적 선행은 보여질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도록 영감을 준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고 공정하고 아름다운 선행을 통해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눈길을 끌게 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의 선행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하기 위함이다.

 

 

B. 믿는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선행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1~12)

 

비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지속적인(현재 능동태) 선행을 보기 때문에 당신을 비난할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성도는 궁핍한 사람들과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해야 한다. 그 결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당신이 있음으로 인해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C. 개인의 참여와 희생이 요구되는 선행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그리스도인은 가장 궁핍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나 과부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선행은 특별히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고아나 과부와 같은 궁핍한 사람들은 자신을 도왔던 사람에게 자신들의 능력으로 대갚음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선행은 어디서나 주목을 끄는 선행이 된다.

 

 

셋째, 개인적인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

그리스도인은 은밀하거나 공개적인 선행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선을 행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선행이 삶의 부분이 되게 해야 한다.

 

A. 이웃과 일터에서

일터는 당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선행을 할 수 있는 요람과 같은 곳이다. 오늘날 비윤리적이고 탐욕스런 일터에서 희생적인 행동과 진실한 나눔은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신선한 충격(영향)을 줄 수 있다.

 

B. 가정과 결혼 생활에서

선행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는 가정, 즉 결혼과 가정생활이다. 디모데전서 5:10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행임을 알 수 있다. 선행의 영역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C. 사역에 은사를 활용함으로써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우리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선행하도록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크고 작음을 떠나 이 땅의 소망인 교회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은사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행위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보실 때 기뻐하실 선한 행위이다. 이러한 선행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더욱 성장시키며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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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3가지 형태[제442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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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의 3가지 형태     수확의 계절이다. 그리스도인은 좋은 일꾼으로서 주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어떤 것을 좋은 열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선한 일, 즉 선행을 통해서 나타난다. 은밀함, 공적, 개인적 등 3가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선한 행실을 통한 열매를 살펴봄으로써 수확의 계절에 삶을 통해 맺은 열매를 계수해 보자.    첫째,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이것은 밖으로 알려지지 않는 선행이다. 당신이 선행을 하는 동안 당신을 주목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행하는 특성이 있다.     A.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구제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3~4)     돈, 음식, 옷과 같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선행은 단지 ‘주는 것’뿐만 아니라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당신 자신이 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면 당신의 동기는 자기 영광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기에 선행이라고 할 수 없다.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구제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구제를 보느냐, 보지 않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보이려고 하느냐, 보이려고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해당된다.          B.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기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6)     많은 사람이 기도를 ‘선행’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도는 대표적으로 선한 행위이다. 주님 외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당신은 선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이다.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함으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는 그 사람을 위해 하늘의 능력을 풀어 놓는 사역이다.          C. 은밀한 가운데 행해지는 금식     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17~18)     어떤 특별한 필요를 느낄 때 그리스도인들은 금식한다. 기도의 힘과 강도를 증대시키기를 원할 때 금식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을 부인하고 열심을 증대시키고 주님께 더욱 초점을 맞추고자 할 때 주목하신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시며 자녀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둘째,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이 선행은 은밀히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선행이다. 일반 대중과 지역 사회에 알려지도록 하는 것이다.     A.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드러내는 선행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공적 선행은 보여질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도록 영감을 준 하나님을 주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본질적으로 선하고 공정하고 아름다운 선행을 통해 매력을 발산함으로써 지역 사회의 눈길을 끌게 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의 선행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B. 믿는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선행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11~12)     비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지속적인(현재 능동태) 선행을 보기 때문에 당신을 비난할 수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성도는 궁핍한 사람들과 위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해야 한다. 그 결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당신이 있음으로 인해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          C. 개인의 참여와 희생이 요구되는 선행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그리스도인은 가장 궁핍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나 과부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선행은 특별히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고아나 과부와 같은 궁핍한 사람들은 자신을 도왔던 사람에게 자신들의 능력으로 대갚음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선행은 어디서나 ‘주목을 끄는 선행’이 된다.          셋째, 개인적인 선한 행실로 맺는 열매그리스도인은 은밀하거나 공개적인 선행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 선을 행함으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선행이 삶의 부분이 되게 해야 한다.     A. 이웃과 일터에서 일터는 당신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선행을 할 수 있는 요람과 같은 곳이다. 오늘날 비윤리적이고 탐욕스런 일터에서 희생적인 행동과 진실한 나눔은 당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신선한 충격(영향)을 줄 수 있다.     B. 가정과 결혼 생활에서선행을 위한 가장 좋은 기회는 가정, 즉 결혼과 가정생활이다. 디모데전서 5:10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행임을 알 수 있다. 선행의 영역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C. 사역에 은사를 활용함으로써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우리는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특별히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선행하도록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크고 작음을 떠나 이 땅의 소망인 교회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은사에 따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든 행위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보실 때 기뻐하실 선한 행위이다. 이러한 선행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더욱 성장시키며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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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잘 연결되는 리더 [제441호]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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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잘 연결되는 리더

 

 

르호보암의 삶은‘자기 이익을 좇는 리더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없다’는 진리를 분명히
보여준다. 권력에 눈이 먼 그는 연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정치권력을 휘두르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심지어 백성들이 짐만 가볍게 해준다면 영원히 충성하겠다는 데도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만 바빴다. 결국 그는 어리석은 리더로 생을 마감했다. 자기 이익을 챙기면서
사람들과 연결되기는 어렵다. 연결이란 본래 자신을 내주는 행위다. 이큅(Equip)의 창립자였던 존 맥스웰은
『성경에서 배운 21분
리더십』(생명의말씀사)에서사람들과 건강하게 연결되는 것을 돕기 위해 아래와
같은 기준을 제시하며 우리 자신의 동기를 점검하도록 도전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라.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건강, 재능, 능력, 성공 등 무엇을 남들보다 더 많이 받았든당연하다는 듯이 이 모든 것을 챙겨서는 안 된다. 축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의 일부를 다른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은 대개 이기적이거나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다. 르호보암은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자기가 우선이었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철저히 매혹되었다. 그는 겁을 주면
존경을 받을 줄 알았으나 돌아온 건 냉소뿐이었다. 연결되려면 남을 먼저 생각하고리더십이 특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성장하라.

간디는 “우리가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차이만 없애도 세상의 문제 대부분을 해결하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르호보암이 장로들의 말에 귀만 기울였어도 자신의 약한
리더십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남에게 배우기에는 너무 오만했다. 그는 성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결국 국가를 말아 먹었다. 자신을 넘어 성장하고 싶다면자신을 낮추고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 자신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나눠주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 자신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하지만 미시건대학의 연구 자료에 따르며, 정기적으로 자원 봉사에 참여하면 삶의 열정과나아가 수명이 늘어난다고 한다. 르호보암은베풀기는커녕
오히려 빼앗는 일에만 열심이었다. “남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은 매순간과 평생동안 던져야 할 질문이다. 자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저수지가 아닌 흐르는 강이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뻗어가라.

중동에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고 세상을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는
세상이 울고 당신은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라”라는 격언이 있다. 자신을
넘어 뻗어간다는 말은 광범위한 연결로 만난적이 없는 사람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르호보암이
남긴 유일한 유산은 전쟁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국가를 파멸시킨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 진심과 꾸준함으로 사람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리더는 저 멀리까지영향을
미친다. 늘 연결을 삶의 중심에 두는 리더의 영향력은 저 멀리까지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 리더십이 아무리 뛰어나도 연결 능력을 배양하지 않으면 더 나은 리더라는 꿈은 헛된 망상일뿐이다.연결하라. 그러면 리더십 수준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잘 연결하라. 그러면 당신이 어디를가든 사람들이 따라올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과 잘 연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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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균형과 성장 [제440호]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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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균형과 성장 신앙의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한 장성한 자로 자라가야 한다고 말했다(히 5:14).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선택적인 것으로 바꾸려고 한다. 신앙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거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성장을 원하지만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본질을 교묘히 가리고 인류에게 찾아와 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탄은 오늘날도 교리의 왜곡됨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을 미혹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는 이때에 그리스도인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맞서며 건강한 균형 속에 신앙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마지막 때의 거짓 교리와 도덕적 타협을 일깨우기 위해 쓰인 베드로후서의 마지막 구절인 3:18을 근거로 정리해 본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먼저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베드로는 이 부분을 주와 구주로 표현했다. ‘주’는 삶의 주인이자, 주권자의 능력을 강조한다. ‘구주’는 말 그대로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구속자, 해방자’를 의미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사변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신 후에 다시 오시기 위해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의 믿음이 사변적일 수 없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산 믿음이요, 그 믿음은 삶 자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 먼 곳 어디인가에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의 영원을 책임지실 분으로 현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존재 역시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자들이다(엡 2:5~6). 그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시다(롬 8:34). 즉,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시지만 지금이라는 현재의 삶에도 적극 개입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심을 신약은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사실을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사소하게 생각한다. 신앙을 편안한 내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 현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는 신앙을 이용할 뿐이다. 왠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편안한 삶의 훼방꾼인 것으로 오해하면서 말이다. 구주가 제시한 삶의 원리를 따르면, 자신을 우리의 삶의 주인이라 말씀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님을 허용하면 삶의 다양한 불편함과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는 왜곡에 속아 넘어간다. 그로 인해 삶에서는 주님을 떠나고 그분을 경외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 예배당과 같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주와 구주로 고백할 뿐이다. 사실 이러한 삶 자체가 악이요 고통(렘 2:44)인데 말이다. 건강한 성장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자 주님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구주이시다.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구주시라면 우리는 그분을 삶의 주인과 주님으로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두 번째로는 믿음의 내용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즉, 은혜와 지식(진리)의 균형을 말한다. 우선은 우리의 믿음의 내용에는 은혜가 담겨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라고 했다. C. S. 루이스는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에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막연한 추상이 아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호의로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의 상황 속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은혜의 경험과 깨달음이 없이는 자라지 못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딛 2:11).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 속에 나타나는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이끄는 에너지(힘)이 된다.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밤새도록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선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며 주님이 찾아오셨다. 자신의 노력과 실력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낚았을 뿐만 아니라 호언장담 속에 주님을 끝까지 따를 것이라 했던 그는 유다의 배신으로 잡히시는 예수님을 뒤로 하고 멀리 도망갔다.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날 사랑하느냐?”라는 세 차례에 걸친 질문 속에서 주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며 사람 낚는 어부로서 삶과 사역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받았다. 이렇듯 은혜는 삶의 변화의 시작을 가져오고 지속적으로 삶이 변화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 안에서 자라갈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호의를 베푸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도와주셔야 하는 상황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분의 크심과 우리의 작음이 교차되는 곳에서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능력과 인간적 계산을 내려놓고 주님의 주 되심과 그분이 구주 되심을 인정하며 그 뜻에 합당한 생각과 행동, 결단과 선택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은혜 안에서 자라가도록 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다.또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단순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지식, 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지식이다. 경험된 지식이자 산 지식이다. 이것은 어떤 높은 수준의 일반 학문이나 그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무시할 때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이단 혹은 일종의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신을 섬길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마크 A. 놀은 복음주의 기독교 안에 지성이라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을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라 정의했다. 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경험은 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지식(지성 혹은 진리)이라 할 만한 내용도 없고 지식에 기반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며 단지 샤머니즘일 뿐이다. 호세야 선지자는 말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호 4:6).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고 그 안에서의 자라감이 없다면 결국 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했던 공생애 기간 동안 성경이 곧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 은혜를 경험하게 한 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시편이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눅 24:44).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던 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선포하는 자로 폭풍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갈 수 있는가? 성경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며 삶에 적용하라. 이 성경이 곧 우리의 주요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 이러한 자라감은 단순히 믿음의 대상을 저 멀리 밀어 낸 추상적인 개념이나 관념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단지 내가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믿음이나 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신앙은 삶 그 자체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감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분을 주와 구주로 고백함과 그 고백의 진실성을 삶으로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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