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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지 말고 '복'을 구하라 [제455호]


관리자   조회 : 366, 등록일 : 2018/01/09 13:48

 

주저하지 말고 을 구하라

 

번영신학은 복음이 아니다. 이것은 건강과 부유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건강과 부유함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도록 하며,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부유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영신학은 기독교의 기독교다움을 훼손시켜왔다. 그리고 이러한 번영신학과 한국의 샤머니즘의 교묘한 조화를 통해 기독교의 안팎에서는 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을 구하거나, ‘축복을 해 주는 기도는 기복주의 신앙이라며 통째로 묶여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구하도록 해야 한다. 복의 가치는 단순히 물질에 있지 않고복을 구하는 것은 단순히 부자로 사는 것을 구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실 수도 있고, 가난하게 하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유하다고 복을 받은 것이라고, 가난하다고 복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질의 부유함이나 가난함, 이 모든 것은 단순히 도구에 불과하다. 이것을 이용해서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이다.

 

복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온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야고보서 1:1617)

 

야고보는 이 세상에는 그 어떤 것도 선한 것이 없고 우리가 사랑할 만한 것도 없고 우리의 아버지, 즉 빛의 아버지에게서 오지 않은 어떤 것도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가 인생에서 선한 것을 찾는다면 어디서 찾겠는가? 이 세상 속에서 그것을 찾겠는가? 재물과 권력과 명성을 통해서 그것을 찾겠는가? 쾌락을 통해서 그것을 찾겠는가? 아니다. 모든 선한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며 오직 그분에게서만 우리는 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당신을 떠나서는 어디에도 선한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 이외에는 어디에도 복을 받을 곳이 없으며, 당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역대상 29:1112)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모든 것이 주님에게서 왔다. 그러므로 주님 되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복을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복을 허락하신다.

 

복은 하나님께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에 주어진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비보다 더 자비로운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주기를 기뻐하시기에 나누어 주신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하나님을 화내고 무섭고 인색한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이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기 원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러내도록 요청하였다. 그때에 하나님은 산에 둘러싸여서 서 있는 모세의 앞으로 지나가시며 말씀을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출애굽기 34:6)

 

이스라엘의초대왕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무관심과 어리석음으로 삶을 추락시킨 사울왕을 향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사무엘하 12:7b~8)

 

이미 많은 것을 주셨는데, 혹시라도 더 필요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셨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주시려는 분이다. 결코 인색하신 분이 아니다.

 

복은 간구하는자에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복 주시기를 좋아하신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복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의 저장고가 영원과 닿아 있음을 알고 있다. 또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임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만약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정말로 알고 있다면 구해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7:711)

 

우리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시되 하나님께 구하는 자들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구하라. 도리어 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교만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주시려고 하신다. 우리를 위한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어떤 경우 우리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도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며, 주 안에서 우리를 행복하게 할 만한 복을 간절히 구하라.



(2018.01.09)주저하지_말고_복을_구하라.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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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 [제501호]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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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주님은 우리가 인생에 어떤 결과를 남기고 성과를 이루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어떤 직장, 학교, 결혼, 지역 등과 같은 것이 우리의 주 관심사가 되지만 하나님의 주 관심사는 아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닮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에 관심이 있으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을 따라 살면 후회할 일은 절대 없다. 믿음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에 믿음의 사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목적이 나의 목적보다 우선순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갔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후회함이 없이 인생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바울,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임을 삶으로 고백하는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 하나님의 뜻에 흔들림이 없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았던 그가 그분을 닮고, 그분을 추구하고, 그분만을 의존하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르쳐 준다.1.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기쁨을 찾는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립보서 1:18)바울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고 말한다. 지금도 기뻐하고 앞으로도 계속 기뻐할 것임을 밝힌다. 옥에 갇히고 환경적으로 매인 가운데 있고 질투하는 자들의 공격 속에서도, 죽음 속에서도, 육신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기로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비방과 공격으로 말미암아 힘들지라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일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기쁨을 찾는다. 변화무쌍한 상황과 환경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 주시고 부르셔서 사명의 자리에서 늘 한결같이 함께하셨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해 주실 그리스도만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았다. 그리스도는 처음과 나중이신 영원한 하나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의 연출가이시자 신랑으로서 함께 영원을 누릴 분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선택한다. 콜롬비아의 연구가 쉬나 아이엔가는 보통 사람이 매일 약 70번의 의식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1년이면 25,550번의 선택을 하는 셈이고, 70년을 인생으로 치면 1,788,500번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린 1,788,500번의 선택을 다 합치면 바로 그것이 우리 자신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신앙의 인격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을 선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간다. 그리스도가 칭송을 받고, 높임을 받고, 크게 드러나는 것을 기뻐하며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를 향한 비방에 대한 반박을 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싸울 수 있었지만 자신의 명예보다는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선택한다. 즉, 뒤집어 보면 자신으로 인해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 방해되는 것을 늘 경계했다.
왜냐하면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자기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바울의 삶과 죽음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임을 믿고 고백하는 자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늘 ‘그리스도’를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며 그분만을 선택하는 자이다.3.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다른 지체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우선시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늘 둘 사이에 끼어 있거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바울도 지금 그러한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육신으로 살며 사명의 열매를 맺는 것과 하나님 나라, 천국에 대한 열망이 커서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사이에 서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대사와 같이 삶과 죽음의 양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바울은 단지 자신의 죽음과 삶에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생사를 넘어 믿음의 형제들의 유익과 기쁨이었다. 이를 위해 믿음의 무리와 함께 있기 위하여 육신으로 있는 것을 선택한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의 유익 때문이다. 주님의 눈물과 절규 속에는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현재 당한 일이 현실적으로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수반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유익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유익이 그리스도 앞에서 영원한 유익으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진보가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이롭게 하는 유익으로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기초로 한 선택이라면 결과가 어떠하든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모두 보고 계시며 모두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역사로 아름답게 마무리 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임을 믿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성도는 그리스도에게서 기쁨을 찾고,
그분의 존귀함이 드러나고, 그분이 전파되는 것을 위해 선택하고,
주변의 지체들이 믿음의 진보와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을 우선시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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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신뢰 [제500호]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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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신뢰리더는 자기 자신과 따르는 사람에 대하여 바른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리더는 보스(Boss)가 아니기 때문이다. 셀프 리더십을 잘 발휘하며 자기를 이끌어야 하며, 따르는 사람들이 잘 따르도록 동기부여를 주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 리더로서 반드시 겸비해야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성실과 따르는 이들을 향한 신뢰이다. 이큅(Equip)의 존 맥스웰은 이 두 가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도전을 준다.아는 체하지 말고 성실하라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찌니라 (욥기 38:2~3)욥기를 통해 하나님은 정의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나타내신다. 욥은 마치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엘리바스, 빌닷, 소발의 의견에 반박하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을 끝내시기 전에 욥에게 “내가 세상을 창조하였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고 질문을 하신다. 많은 리더는 모든 것을 아는 체하고 싶어하는 커다란 유혹을 느낀다. 때론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리더는 흔히 자기 확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비이성적인 필요를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그러한 가식적인 태도를 금방 눈치 채게 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사실 사람들에게는 모든 답을 알고 있는 리더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리더에게는, 어떤 사항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잘못된 확신보다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리더에게 성실성이 없다면, 그것은 그를 따르는 개인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리더는 사람들에게 거짓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한 우리는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당신이 자신 없어 하는 주장이 마치 확실한 것처럼 말하지 말라. 오직 성실함으로 말하라. 비록 그로 인해 당신의 말이 전체 그림 중 극히 일부만을 색칠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모든 주장에 있어 잘못된 확신 보다는 성실함이 필요하다.신뢰가 사람을 꽃피우게 한다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6~7)사람들은 기대 수준에 따라 그 평가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만일 리더인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회의와 의심을 나타낸다면 그들은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그들을 믿고 기대감을 표시한다면 그들은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이는 결국은 당신과 그들 모두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이다.리더로서 당신은 다른 사람을 믿어야 한다. 리더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믿음을 가질 때,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을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그 돈은 곧 바닥이 나고 만다. 자원을 주면 기대만큼 유용하게 이용되지 않는다. 실제적 도움을 주게 될 경우, 그들은 흔히 즉각적으로 자신들이 시작한 곳으로 뒷걸음질쳐 되돌아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믿어 주면 그들은 당신을 신뢰하고, 의욕을 갖고 힘차게 행동하게 되며, 자립심(self-reliant)을 갖게 된다. 그들에게는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는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 자금과 자원, 도움이 제공될 때 그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주어진 모든 자원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다른 사람을 믿어 줄 때, 그가 아무리 자신 없고 미숙한 사람일지라도 그는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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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끝이 같은 인생 [제499호]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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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끝이 같은 인생세상에는 4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처음도 좋고 끝도 좋은 사람. 처음도 나쁘고 끝까지 나쁜 사람. 처음에는 나빴지만 끝이 좋은 사람. 처음은 좋았다가 나중에는 나쁜 사람.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으로 인생의 종착점을 맞이하기를 원하는가?한때 열심이었던 사람인데 지금은 그 열심이 사라져 버린 사람이 있다. 한때 열심의 자리에서 한몫을 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그 자리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한때의 열심이 아니라 늘 한결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지금 열심이 있다면 그 열심이 끝까지 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의 말미가 희미한 삶이 아니라 갈수록 선명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역대하 16장에는 유다 왕 아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다. 성경에 시작과 끝이 다른 다양한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에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사는 시작이 괜찮은 왕이었다. 유다 땅에서 우상숭배를 몰아내고, 구스의 100만 대군을 물리쳤으며, 선지자의 격려와 경고를 들으며 지속적인 개혁을 진행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리게 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배제하는 삶으로 추락한다. 하나님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에 쌓아 두었던 은금을 의지한다. 즉, 자기가 축적한 자원을 의지한다. 자신의 전성기 때 여호와의 전에 드렸던 것이기에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며 함부로 사용한다. 북 이스라엘이 쳐들어와서 괴롭힐 때 아람 왕 벤하닷을 의지하며 도움을 구한다. 20년 전에는 100만의 구스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만 의지하며 도움을 구하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도 외면해 버린다. 그 결과 아사왕의 인생은 처음과 끝이 다른 모습으로 추락한다.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역대하 16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아사왕이 매우 중요한 것을 외면했기 때문이다.첫째, 하나님의 시선을 외면한다.선지자 하나니는 아사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대하 16:9a). 초심을 잃고 하나님을 배제하는 삶으로 추락한 아사는 자신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를 잊으시고 보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두루 감찰하시며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는데 아사왕은 국가의 일시적 위기 극복을 위해 성전을 비우고 탁월한 외교정책으로 외부의 힘을 끌어들여 위기를 순간적으로 극복한다. 성공적인 외교정책으로 백성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다. 그의 장례식을 백성이 크게 치르어 줄 정도로 백성의 평가는 그렇게 나쁘지 않은 듯하다. 당장에는 나라와 민족에게 눈에 띄는 번영, 평화, 풍요가 주어진 듯하지만 하나님의 성전 곳간은 비워지고,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시며, 하나님 보시기에는 망령된 행위일 뿐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인기가 절정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잊고 산다면 그것은 망령된 행동과 삶일 뿐이다.둘째, 하나님의 소리를 외면한다.아사는 왕위에 오른 지 10여 년 동안은 앞장서서 “여호와를 찾으라”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왕위에 오른 지 약 15년쯤 되었을 때는 구스의 100만 대군에게 승리했고 선지자 오뎃의 예언을 경청하며 지속적인 개혁을 진행했다. 그런데 지금은 선지자 하나니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도리어 화를 내고 선지자를 옥에 가두며, 그에게 동조하는 자를 학대하기까지 한다. 듣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으면 듣는 능력을 상실한다. 그 결과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병적 증세가 나타난다. 아사의 증조 할아버지였던 솔로몬왕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던 초심을 잃어버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서 멀어지고 듣지 않음으로써 추락한 삶을 산 것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설교를 들을 때, 기도할 때, 소그룹 모임의 나눔에서, 지체와 동료들의 권면을 통해, 책을 통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신의 음성으로 직접적인 계시는 아니지만 깨달음과 울림을 통해 말씀하신다. 들려오는 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할지라도 그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라면, 그 소리가 분명 맞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하여 바르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셋째, 하나님을 찾는 것을 외면한다.아사왕에게 삶의 위기가 찾아온다. 발에 병이 들어 매우 위독한 상태에 직면한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의원만 찾을 뿐이다. 병들어 위독한 세월을 보내는 2년여간 하나님을 다시 찾고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날리고 그저 용하다는 의원을 찾느라고 전전긍긍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두렵고 떨리는 것은 아사왕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두었던 삶을 살았던 자, 하나님을 찾았기에 평안과 형통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하던 자가 그 정도까지 추락하게 되었다(대하14:7). 사람이 늙고 병들면 없던 신앙도 생기고 하나님을 찾을 확률이 높아지는데 아사왕은 도리어 인생의 말미에서 하나님을 더욱 외면한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물음표’를 남겨서는 안 된다. 아사는 왕위에 오른지 35년 동안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 6년의 마지막 여정은 우리로 하여금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주님을 닮아가던 한때의 신앙이 아닌 한결같은 신앙의 삶이 되어야 한다. 계속 주님에게로 나아가는 삶 말이다. 신앙의 경주는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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