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community

Column

칼럼


장님들의 나라를 향한 편지 [제 468호]


관리자   조회 : 123, 등록일 : 2018/04/10 11:18

 

장님들의 나라를 향한 편지



H.G 웰스의 장님들의 나라라는 소설은 장님들의 나라에서는 눈을 하나 가진 사람이 왕이다라는 오래된 속담을 인용한 뒤 이를 바꾸어 놓는다. 웰스는 수천 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잊힌 부족을 발견한 탐험가의 이야기를 썼다. 이 탐험가가 일몰과 무지개의 찬란함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자 시력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생각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들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이 세상이 장님들의 나라인 것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성경의 눈으로 복음의 참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세상은 복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암흑 속에서 복음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응을 보이는 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들에게 분노보다 연민이 필요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앞을 못 보는 자가 우리의 발을 밟았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영적으로 앞을 못 보는 자와 같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한일서 2:11)

 

이 말은 우리가 빛의 유익은 모두 누리면서도 여전히 어두움에 거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동정 없이 그렇게 행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도 사랑이나 동정 없이 행하신 적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을 그와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때가 우리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잃어버린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증거함으로써 앞을 보는 기적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빛을 따라 살며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해 등불을 들어 주어야 한다. 장님들의 나라와 같은 이 세상 속에서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비이기적인 사랑만큼 논의의 여지가 없고, 권위가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는 것은 없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결하게 하고 용서하는 능력을 느끼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조건없이 오래 참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들 또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만 번을 되풀이해도 질리지 않는 방법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편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보내야 하는,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받아야 하는 편지이다. 우리가 깊이 사랑할 때 결코 늙지 않는다. 깊이 사랑하는 자는 나이가 많아 죽을 수는 있어도 결코 늙어 죽지는 않는다



468호.jpg

(2018.04.10)_장님들의_나라를_향한_편지.hwp



글쓴이 비밀번호
 
글수 464Page 1 / 155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제470호]
2018/04/24
89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면 현재의 어려움 너머를 바라보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곧게 하기로 결정하실 때까지 우리 인생의 모든 구부러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하나님은 왜 곧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굽게 하실까?     첫째, 인생의 구부러진 것은 우리가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참으로 신뢰하는지 결정하게 해 주는 테스트이다. 욥을 생각해 보라. 그는 믿음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고통과 시련을 당했다. 우리의 고난에도 동일한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여전히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신뢰해야 함을 또한 알도록 도와준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이 헛된 세상에서 돌이키시고 내생의 행복을 찾으라고 가르치시기 위해 우리가 이 땅의 운명에서 갖게 된 굴곡을 조심스레 디자인하신다. 고난은 영원에 대한 준비의 일부이다. 탕자를 생각해 보라. 그는 가진 것을 전부 잃기 전까지 아버지께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고난은 그가 속했던 곳인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순례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인생의 어떤 것이 굽은 것처럼 보일 때 하나님이 그것을 곧게 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라.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 인생의 구부러진 것을 사용하신다. 어떤 것이 구부러진 이유는 우리 자신의 죄를 포함하여 세상에 죄가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운명의 굴곡을 양심을 건드리는 데 사용하신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특정한 죄를 상기시키신다. 고난당할 때마다 그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일 수 있다. 하지만 각 시련을 계기로 고백하지 않았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역시 실수일 수 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를 교정해 주시기 위해 인생의 구부러진 것을 사용하신다. 고난이 하나님의 공의의 도구로 사용되는 때가 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였을 때가 그랬다. 하나님은 그의 집에서 칼이 영원토록 떠나지 않을 거라고 정의롭게 판결하셨다(삼하 12:10 참조).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죄의 결과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이나 훈련 아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것을 굽게 하시는 이유는 이런 것들만은 아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게 하시기 위해, 혹은 내면에 너무 깊숙이 있어서 고통스런 시련을 겪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죄악된 태도를 들추시기 위해 우리의 고난을 허락하신다. 혹은 시험 중인 우리의 신앙심을 통해 그분의 은혜를 보여 주시기 위해 우리의 운명에 굴곡을 두신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에서 굴곡을 가질 때 그것은 우리를 영적 선잠에서 깨어나게 하고 ‘믿음, 소망, 사랑, 자기(自己) 부인(否認) 그리고 다른 은혜의 행위들’을 많이 낳게 한다.     - 위의 글은 필립 G. 라이큰의 『헛된 세상, 헛되지 않은 삶』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Read More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취하라[제469호]
2018/04/17
131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취하라 하나님은 교만을 미워하고 싫어하신다. 육신의 죄도 매스껍고 주의 사람들에게 중대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들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교만에 대해 말씀하실 때처럼 맹렬한 노를 드러내시지는 않으신다. 교만은 하나님이 정말로 질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시고 또한 멀리하신다. 교만한 마음은 하나님과 만날 공통점이 없다. 그러나 그분은 상한 마음과 뉘우치는 심령을 물리치지 않으신다. 교만은 본질야고보서 4:6에 나오는 ‘교만’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 대한 범죄이다. 데오필락트는 “교만은 모든 악의 보루이자 절정이다”라고 했다. 교만은 자신을 신격화하는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다. 교만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는 것이다.교만의 특징은 하나님 없이 홀로 서려는 것이다. 교만은 아담이 저지른 범죄의 핵심이다. 그는 하나님께 의지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다. 그 결과 인류를 파멸로 이끌었다. 교만은 하나님과 인간 누구에게도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한다. 교만은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교만은 스스로 이룬 것을 자랑한다.교만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 깔려 있다. 교만은 다른 모든 존재를 하급한 것으로 여겨 내쫓아 버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의 뛰어남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이용한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자기보다 열등한 소시민이며 하층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교만을 경멸하지 않고 자기보다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경멸을 쏟아 붓는다. 교만은 본질상 경쟁적일 수밖에 없다. 교만은 항상 더 나은 쪽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비교를 포함하기 마련이다.교만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부패시킨다. 교만은 덕스러움을 사악함으로, 축복을 저주로 바꾼다. 아름다움이 교만과 만나면 허영이 된다. 열심과 교만이 한데 어울리면 독재와 무자비함이 된다. 인간의 지혜는 교만과 어우러져 불신앙을 만들어 낸다. 교만은 말 가운데 비판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비판은 언제든지 자신이 우월하다는 유리한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만은 누구에게서나, 무엇에서든지 비판할 거리를 발견할 것이다. 교만은 자기를 높이고 이웃을 낮추는 것이다. 교만은 정신적으로나 영적인 면에서 착란에 빠진 상태이다. 교만의 치료     교만은 반드시 근본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교만을 치유하는 길로 나아가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인정이다. 우리는 자기의 진솔한 모습을 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간구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기 비하에 빠지게 된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면 우리의 교만의 근거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둘째는 단련이다. 하나님은 교만을 지극히 싫어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한 예방 조치로 그들을 사랑으로 훈련시키신다. 우리가 무기력한 한계, 고통스러운 질병, 좌절된 야망 가운데 빠질 때 우리가 그보다 더 나쁜 교만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셋째는 금욕이다. 현명한 농부는 잡초가 어릴 때 그 싹을 뽑아버리듯이 우리는 교만한 생각이 있는지 살펴보고, 고백하고, 떨쳐버려야 한다. 교만한 생각을 가슴속에 품는 것은 마음속에 독사를 키우는 것과 같다. 교만은 육체의 일이며, 성령님은 우리가 그것을 없앨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롬 8:13).넷째는 비교이다. 우리는 자신을 자신과 비교하고는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신을 온전하신 그리스도와 비교해야 한다.다섯째는 묵상이다. 그리스도를 묵상해야 한다. 자신을 발견하고 훈련하기 위한 우리의 최고의 노력도 이 암 덩어리를 뿌리째 뽑아내는 데는 부족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본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심령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오직 ‘주의 영으로’ 인하여 가능하다. 성령님은 자신의 교만을 미워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흠모하는 모든 사람에게 끝까지 함께하실 것이다. –  위의 글은 『영적 도약의 갈망』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하여 요약한 글입니다.
Read More
장님들의 나라를 향한 편지 [제 468호]
2018/04/10
124
장님들의 나라를 향한 편지 H.G 웰스의 『장님들의 나라』라는 소설은 “장님들의 나라에서는 눈을 하나 가진 사람이 왕이다”라는 오래된 속담을 인용한 뒤 이를 바꾸어 놓는다. 웰스는 수천 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잊힌 부족을 발견한 탐험가의 이야기를 썼다. 이 탐험가가 일몰과 무지개의 찬란함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자 시력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생각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들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이 세상이 ‘장님들의 나라’인 것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성경의 눈으로 복음의 참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세상은 복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암흑 속에서 복음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응을 보이는 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들에게 분노보다 연민이 필요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앞을 못 보는 자가 우리의 발을 밟았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영적으로 앞을 못 보는 자와 같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한일서 2:11)     이 말은 우리가 빛의 유익은 모두 누리면서도 여전히 어두움에 거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동정 없이 그렇게 행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도 사랑이나 동정 없이 행하신 적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을 그와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때가 우리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잃어버린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증거함으로써 앞을 보는 기적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빛을 따라 살며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해 등불을 들어 주어야 한다. 장님들의 나라와 같은 이 세상 속에서 말이다.그리스도인의 비이기적인 사랑만큼 논의의 여지가 없고, 권위가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는 것은 없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결하게 하고 용서하는 능력을 느끼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조건없이 오래 참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들 또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만 번을 되풀이해도 질리지 않는 방법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편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보내야 하는,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받아야 하는 편지이다. 우리가 깊이 사랑할 때 결코 늙지 않는다. 깊이 사랑하는 자는 나이가 많아 죽을 수는 있어도 결코 늙어 죽지는 않는다. 
Read More
  
 
1 2 3 4 5  다음 5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