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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세상, 외로운 그리스도인 [제477호]


관리자   조회 : 266, 등록일 : 2018/06/12 11:45

 


혼자 사는 세상, 외로운 그리스도인


캐나다 출신의 힙합 가수 드레이크가 부른 노래에 담긴 한 가사인데 한국 문화를 만나 더욱 유명해진 문장이 있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이다” YOLO).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마법의 주문처럼 기업의 마케팅에 활용되면서 더욱 확장되고 왜곡되어 “한 번 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자”라는 신조어로 둔갑했다. 욜로 햄, 욜로 빙수, 욜로 인테리어 조명, 욜로 모발이식, 낯선 땅에서 참된 행복을 만나는 욜로 여행과 같은 상품으로 말이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분들까지 가세하며 ‘쓰죽회’가 등장했다. ‘한 번 사는 인생, 다 쓰고 죽자’

불안한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현재 삶을 즐기는 것을 인생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기에 혼삶을 살며, 혼밥을 먹고, 휴가 때 지갑을 톡톡 털어서라도 해외로 긴 혼행(혼자하는 여행)을 한다. 집이나 물건은 사는 것이 아니라 렌트하며 다양한 경험을 위해 취미 활동에 적극 투자한다. 당장이 중요하고 당장을 즐기는 문화를 연출하면서 말이다.

젊은 2030 성인 남녀 84%는 욜로 라이프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 이유는 60.7%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55.4%는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있어서”, 30.7%는 “실용적인 생각 같아서”, 23.5%는 “열정적인 것 같아서, 20.9%는 “도전 정신이 있어 보여서”이다. 통계를 볼 때면 함께하는 삶은 누군가에게 구속당하고, 자기 삶을 추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혼자사는 삶에 익숙하고 혼자가 편하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갈등도 없고, 자기 주도적인 삶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년기로 갈수록 혼자의 삶은 편함이 아닌 비극적인 모습임을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통계청은 전국적으로 1인 가구의 비율이 1위가 되는 시기는 2019년(29.1%)이 될 것이라 발표했다. 또 인구주택 총조사에 의하면 혼자 사는 50대 1인 가구 비율이 10년 동안 123%나 증가해 차후 1인 가구 대부분은 노인 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기 진입 그리고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서서히 해체되고 있는 사회 현상도 욜로 인생, 혼자 사는 인생을 부추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은 물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다 고독하게 사망하는 사람들이 매년 급증하여 사망자가 최근 4년간 57%나 증가하여 2017년 한 해 2000명을 넘은 상황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야기가 아직은 남의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혼자만의 욜로 인생을 즐기는 현재의 사람들이 직면하게 될 미래의 비극이라는 이야기이다. 현대인들은 혼자이면서 혼자인줄 모른다. 각종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SNS)에 연결되어 있어 가상 공간에서 소통하고 있으며, 포털(네이버, 다음 등)을 통해 세상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손바닥 안에서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이 발견된다. 혼자로서 혼자만의 삶에 익숙해 간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이 진정 중요한 것이라 믿는다면 하나님과의 관계, 예수님만으로 충분한 삶은 반드시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로 나아가 그들과 연결됨으로써 그 진정성이 증명되어야 한다. 함께하는 삶이 ‘갈등’이라는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을 수반하지만, 함께하는 삶이 서로를 보호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s)임을 잊지 말자.

혼자만의 삶은 하나님이 원래 디자인하신 인간다움의 삶이 아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함께’ ‘서로’ 라는 것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한다. 혼자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혼자가 익숙하기에 서로를 의지하고 도와주는 것이 불편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혼자가 편하기에 신앙생활을 많은 사람이 모여 드리는 주일 낮 예배에만 살며시 참석하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혼자가 익숙한, 별로 건강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외로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불편할지라도 혼자만의 삶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혹시 당신은 혼자가 아닌가? 혹시 외로운 그리스도인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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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가치의 중요성[제503호]
201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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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가치의 중요성『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서 한때 편집자로 있었던 조지 로리머(George H. Lorimer)는 “모든 삶의 이면에는 그 삶을 형성한 원칙이 있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삶을 안내하는 이 원칙이 바로 가치이다. 결국 한 사람의 ‘핵심 가치’는 내재화된 삶의 원칙이 된다. 그리고 이런 핵심 가치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에 개인의 삶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닻살면서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어려운 시기에 가치가 없다면 어떻게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 어떻게 방향을 찾을 수 있겠는가? 가치가 없는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대양에서 표류한다. 파도가 거칠게 일면 그들에게는 편히 쉴 수 있는 장소가 없어진다. 거대한 폭풍우가 닥치면 그들이 침몰될 수도 있다. 해류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렇지만 굳건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당신의 날씨가 험악할 때에도 당신을 안정적으로 잡아 줄 무엇인가를 지니게 되는 셈이다.진실한 친구핵심 가치는 영혼을 확실하게 보여 줄 수 있는 깊이 간직한 믿음이기 때문에 평생 친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내가 행정부의 고삐를 손에서 놓았을 때 친구 한 명이 곁에 남아 있으면 하는데 그 친구는 내 안에 있다”라고 말했다.북극성환경만큼이나 생활하는 방식 또한 계속 변한다. 당신은 새로운 기술, 원칙, 습관 등을 습득한다. 상황에 따라서 실천 방법도 항상 변한다. 반면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가치는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그것은 항상 의존할 만하다. 일단 가치를 철저하게 검토하고 그 가치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 가치를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가고 더욱 현명해질수록 가치 목록에 덧붙일 사항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핵심적인 가치라면 평생 동안 계속 남는다.코미디언인 프레드 앨런은 “우리는 한 번 밖에 살지 못한다. 하지만 제대로만 산다면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제대로 살 수 있는가? 자신의 가치를 알고 날마다 그 가치에 맞추어서 살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인생의 종착역에서 후회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좋은 가치의 목록과 함께 그 가치에 대한 당신만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 가치에 관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적어 보라. 당신의 가치는 직업이나 환경 등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말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요한 교훈을 기록하며 그것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피상적이거나 일시적인 항목을 제거하면서 말이다.또한 주변의 좋은 가치를 포용하라. 삶의 본이 될 만한 사람들의 가치를 분석하고 그 가치가 당신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명료화하고 포용하라. 아인슈타인은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마라. 오히려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라”라고 충고했다. 그는 가치를 지니는 일이 한 사람을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바른 가치를 지니면 삶의 질이 더 나아지며 성실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거기에다가 가치에 집중한다면 삶의 진정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위의 글은 본 연구원의 『오늘을 최고로 만드는 리더』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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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자 [제502호]
2019/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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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자미국 혁명 당시 일단의 시민들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시민 의용군을 조직했다. 평상시에는 각자 농부, 땜장이, 변호사, 대장장이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다가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나가면 그들은 즉시 군인으로 변신했다. 화약과 탄창, 총 등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기에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부르기만 하면 즉시 위력 있는 병사가 될 수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예비군과 같은 개념이었던 그들은 긴급 지원병이라고 불렸다. 신호가 들리면 그들은 연장통을 찾기 위해, 무기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지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에 있든, 곡식을 추수하고 있든, 혹은 재판 중이든 간에 즉시 병사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도 오늘날에도 긴급 지원병을 찾고 계신다. 준비가 된 자는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신호가 떨어지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상황을 뒤로 하고 사령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사무엘은 일생 동안 하나님의 긴급 지원병으로 살았다. 사무엘상 7장이 이를 증거해 준다. 20년간 블레셋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후회했고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와 반역으로 인해 슬픔과 환난에 빠졌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원수의 발에 밟히도록 내버려두셨기 때문이다. 한때 하나님의 임재와 복의 확실한 상징이 되었던 언약궤는 20년간 이스라엘 진영에서 떠나 있었다. 언약궤의 자리는 기괴한 바알과 아스다롯의 주상이 차지했다.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잘못을 깨달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곤란에 처하고 나서야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교만하고 세속적이며 거룩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어디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는가? 실로는 완전히 파괴되고 폐허가 되었다. 버려진 제단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났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긴급 지원병이 없었더라면 거대한 하나의 민족이 절망 가운데서 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신실한 사무엘은 즉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당신의 이웃이 삶 가운데서 겪는 비극적인 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들은 인도와 충고를 구하기 위하여 과연 누구의 문을 두드릴 수 있겠는가? 당신의 직장 동료들은 혹시 삶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리고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당신이 찾아와 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배가 난파되었을 때 조난당한 사람들은 절박하게 섬이나 바위를 찾게 된다. 혹시 조난당한 사람들이 당신의 해변가에 닿아서, 당신의 삶을 지탱시켜 주는 그 힘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지는 않는가? 그들은 당신의 믿음과 헌신, 당신의 구원자에 관하여 알고 있는가? 사무엘의 동족은 이를 알고 있었다. 20년 동안 동족이 우상을 숭배하던 때에 사무엘은 굳건히 하나님 앞에서 헌신된 모습으로 살아가며 기다렸다. 아무도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자 하지 않을 때, 누구도 성결한 삶이나 하나님의 말씀, 혹은 기도나 헌신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때, 사무엘 홀로 그 자리를 지켰다. 긴급 지원병처럼 그는 준비된 상태로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그의 일생은 깨끗이 닦여서 언제든지 쓰일 준비가 된 접시처럼 어느 순간에도 필요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동족의 마음이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질 만큼 순화되었을 때 사무엘은 하나님의 소집에 즉시 응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 자리에서 즉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나님께서 지금 당신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다면 당신은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증인이 되고, 위로와 격려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당신은 아직도 자질구레한 일에 매달려 있는가? 긴급 지원병이 긴박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자신의 생필품을 구하고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라. 전장에 도착하기 전에 상황은 이미 종결되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군대에 지원하는 자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좀더 특별하게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먼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대하 16:9). 당신은 하나님에게 부름을 받는 긴급 지원병이 되기 위해 울며 매달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지금도 긴급 지원병으로 쓰일 만한 누군가를 찾아서 온 땅을 두루 살피시지만 우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쓰일 준비된 자, 성령의 인도하심에 신실하게 따르는 자, 말씀의 검으로 무장하며 준비된 자를 찾고 계신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이 차출하시면 언제든지 현장으로 달려갈 수 있는 준비된 자로 2019년을 신실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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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 [제501호]
20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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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주님은 우리가 인생에 어떤 결과를 남기고 성과를 이루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 어떤 직장, 학교, 결혼, 지역 등과 같은 것이 우리의 주 관심사가 되지만 하나님의 주 관심사는 아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우리가 그분의 형상을 닮고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에 관심이 있으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을 따라 살면 후회할 일은 절대 없다. 믿음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기에 믿음의 사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목적이 나의 목적보다 우선순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갔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후회함이 없이 인생의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바울,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임을 삶으로 고백하는 바울은 빌립보서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사명, 하나님의 뜻에 흔들림이 없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았던 그가 그분을 닮고, 그분을 추구하고, 그분만을 의존하는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르쳐 준다.1.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기쁨을 찾는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립보서 1:18)바울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고 말한다. 지금도 기뻐하고 앞으로도 계속 기뻐할 것임을 밝힌다. 옥에 갇히고 환경적으로 매인 가운데 있고 질투하는 자들의 공격 속에서도, 죽음 속에서도, 육신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기로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비방과 공격으로 말미암아 힘들지라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일로 인해 기뻐하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기쁨을 찾는다. 변화무쌍한 상황과 환경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 주시고 부르셔서 사명의 자리에서 늘 한결같이 함께하셨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해 주실 그리스도만을 기쁨의 근원으로 삼았다. 그리스도는 처음과 나중이신 영원한 하나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의 연출가이시자 신랑으로서 함께 영원을 누릴 분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선택한다. 콜롬비아의 연구가 쉬나 아이엔가는 보통 사람이 매일 약 70번의 의식적인 선택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1년이면 25,550번의 선택을 하는 셈이고, 70년을 인생으로 치면 1,788,500번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내린 1,788,500번의 선택을 다 합치면 바로 그것이 우리 자신이 된다. 그리스도인의 선택은 신앙의 인격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가 선택하는 모습을 통해 그 사람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을 선택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간다. 그리스도가 칭송을 받고, 높임을 받고, 크게 드러나는 것을 기뻐하며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바울은 자기를 향한 비방에 대한 반박을 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싸울 수 있었지만 자신의 명예보다는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선택한다. 즉, 뒤집어 보면 자신으로 인해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이 방해되는 것을 늘 경계했다.
왜냐하면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자기를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이 바울의 삶과 죽음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임을 믿고 고백하는 자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늘 ‘그리스도’를 최고의 우선순위에 두며 그분만을 선택하는 자이다.3.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다른 지체들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우선시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늘 둘 사이에 끼어 있거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바울도 지금 그러한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육신으로 살며 사명의 열매를 맺는 것과 하나님 나라, 천국에 대한 열망이 커서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사이에 서 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대사와 같이 삶과 죽음의 양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바울은 단지 자신의 죽음과 삶에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생사를 넘어 믿음의 형제들의 유익과 기쁨이었다. 이를 위해 믿음의 무리와 함께 있기 위하여 육신으로 있는 것을 선택한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의 유익 때문이다. 주님의 눈물과 절규 속에는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현재 당한 일이 현실적으로는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수반하지만 그것이 가져올 유익을 생각하며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유익이 그리스도 앞에서 영원한 유익으로,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진보가 나타나는 것과 같이 그들을 이롭게 하는 유익으로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을 기초로 한 선택이라면 결과가 어떠하든지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모두 보고 계시며 모두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역사로 아름답게 마무리 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임을 믿고 고백하며 나아가는 성도는 그리스도에게서 기쁨을 찾고,
그분의 존귀함이 드러나고, 그분이 전파되는 것을 위해 선택하고,
주변의 지체들이 믿음의 진보와 참된 기쁨을 누리는 것을 우선시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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