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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받은 상처, 어떻게 해야 할까?” [제 776호]
   조회수 69
2026-01-28 10:55:09


 

다니엘 P. 밀러 목사는 저서 “교회에서 받은 상처, 어떻게 해야 할까?”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흔히, 실제적으로 겪을 수 있는 관계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를 다룹니다. 그는 먼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의 마음이 죄로 인해 타락했다는 사실을 짚으며 교회에서 상처받는 것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함을 전제합니다. 이어 우리가 그런 흔한 상처에 반응할 때 죄로 인한 왜곡된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성경을 따라 올바르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내용을 담은 해당 책의 두 번째 장, “2. 상처와 좌절의 감정에 성경을 따라 반응하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판단을 유보하기

- 감정이 상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상황과 내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판단을 미루어야 한다. 

둘째,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식적으로 자신을 의탁하기

- 믿음으로 행하며 육신의 무기를 내려놓고, 기도로써 그 상처를 하늘에 계신 옹호자의 판단에 맡겨드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셋째, 마음속에 있는 욕망을 찬찬히 살펴보기

- 상처는 대부분 상한 자존심, 이기적 욕심, 고집스레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만의 기준, 훈계를 받지 않으려는 완고한 마음 등 내 안의 비뚤어진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 

넷째, 상처를 준 사람과 화해하기

- 사랑과 겸손으로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을 때 적극적으로 화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용서하기 위해 애쓰기

- 내가 홀가분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임을 인정하며 복음을 기반으로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그런데 저자의 제안에서 일관되게 포착되는 중요한 덕목, 우리가 놓치지 않고 주목해야 할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자아 성찰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감정이 상했을 때 판단력이 흐려지고, 사실을 뒤섞으며, 상대의 말을 오해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조작하기 쉽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또한 그런 일을 당할 때 육신의 지혜에 의지하며 자기 힘으로 맞대응하는 일에 골몰하기 쉽다고도 합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돌아보면 우리의 상처는 대부분 상한 자존심, 이기적 욕심, 고집스레 내려놓지 못하는 자신만의 기준, 훈계를 받지 않으려는 완고한 마음, ‘나를 포기하지 않는’ 아집 등과 같은,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은 비뚤어진 모습에서 비롯된다고도 합니다. 나아가 상처 준 사람과 화해하고 용서하기를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나의 육신을 쉬이 만족시키는 선택, 즉 흔쾌히 그를 용서하지도, 문제를 놓고 그와 대화하지도 않으려고 하는 상태에 머무르려 하는지도 지적합니다. 이러한 통찰은 성경이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주시는 것을 근간으로 한, 저자인 밀러 목사 자신의 경험적인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얻은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신앙생활의 실제적 성숙은 자아 성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사실 자신의 마음을 살핀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죄를 발견하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고 선언합니다(렘17:9). 거짓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함은 자신을 위해 타인을 속일 뿐 아니라 자신마저 속입니다. 자기의 제한된 시각, 경험 등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원하는 바를 행하며 갇혀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본다고 하나 조금도 보지 못하는, 맹인 된 자와 같습니다. 

부패한 마음의 결과는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그분을 찬송하기 위해 지음 받은 본래의 목적이 부패함으로 왜곡되니 자기를 위해, 자기 힘으로 애써 살아가는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그 결과는 자고새가 다른 새의 알을 품는 것과 같습니다. 애써 품지만 결국 자기 새끼들은 다 죽고 남의 새끼마저도 떠나가는, 아무것도 없는 허망함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단절시킨 죄로 인한 것으로서 금강석 끝 철필로 마음에 새겨졌다(렘17:1) 할 만큼 본질적입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썩 내키는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이 회피합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이 무의식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하여 회피하는지도 모르게 회피합니다. 보통의 경우, 그 단계까지 나아가는 일도 드뭅니다. 마음을 들여다보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인(곧 세상의) 방식을 따라(위에서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와 같은 우리 마음의 절망적인 상태를 아는 만큼에 따라 내게 작용하는 보혈 능력, 부활 능력의 크기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자기 반성과 성찰을 통해 나의 죄인 됨을 ‘피 흘리기까지’ 마주할 때, 역설적으로, 그것을 자기 몸에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가 커집니다. 도무지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의 참담한 모습을 주님께서 다 아시고도,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은혜를 실감하는 기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초월적인 은혜로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인애가 부어지고, 또한 그것이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용납으로 확증될 때, 나의 죄 사함의 확신, 용서의 은혜가 ‘사실’이 됩니다. 먼저 용서받은 자가 되어 용서함이 마땅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합니다. 나를 위해, 내 힘으로 애써 살던 인생에서 하나님의 영광 위해 자원하는 심령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칼뱅은 그의 기독교 강요 1권 1장 1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참되고 건전한 지혜는 거의 전부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다. 그러나 이 둘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이며, 어느 것이 다른 것의 원인인지 분명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먼저 사람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자신을 깊이 성찰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들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앎이 곧 나를 앎이며, 나를 앎이 또한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교회 생활 속에서 필연 마주할 수밖에 없는 갈등, 상처는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됩니다. 나의 생각, 경험, 지식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를 아집의 성에서 꺼내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 자아 성찰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혼의 등불이 되어 주셔서 우리 마음의 깊은 곳을 밝히십니다. 우리 마음이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다면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받으셨습니까? 상처받았다는 사실에 골몰하며 나 중심으로 반응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펴 우리를 영화로운 주님 형상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인애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소개한 책의 마지막 챕터 한 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교회는 보호를 받고자 달려가는 곳이지만, 좌절과 고통을 맛보는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고통은 실제적이고 극심합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도록 계획된 주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를 통해 성전 뜰을 정화하셨듯, 우리 마음속 우상들을 끝까지 쳐부수실 것입니다. 지역 교회라는 환경에서 경험하는 쓰라린 좌절을 통해 우리가 마음에 모셔두었던 안락과 편안함의 우상을 거꾸러뜨리시고, 관계에서 얻었던 확신과 인정의 우상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_디모데성경연구원


위의 글은 대니얼 밀러, 『교회에서 받은 상처, 어떻게 해야 할까?』(도서출판 디모데)의 일부 내용을 발췌,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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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2026_1_23_교회에서 받은 상처, 어떻게 해야 할까.docx (24.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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