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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 가는 길 [제 779호]
   조회수 39
2026-03-31 14:25:09


“자유!” 

인간이라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 않는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갈망합니다. 어떠한 제한도, 속박도, 매임도 거부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갖고, 누리며, 행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행하는 ‘자유로운’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네 살 짜리 아들이 초콜릿을 먹고 싶은 대로 양껏 먹는 자유를 누린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곧 불행해질 것입니다. 급속하게 증식할 충치와 그에 따른 통증은 물론, 과도한 당분 섭취로 인한 건강 상의 문제에 시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자유를 사용함으로 맞이하게 될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순간의 행복을 위해 어리석은 선택을 합니다. 이와 같이 자유로움이 곧 행복함은 아닙니다. 나의 시각과 이해, 경험은 본질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위 사실에서 알 수 있는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법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 법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정교한 질서와 법칙에 의해 움직여집니다. 자연계는 자연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계절이 바뀌고 이른 비, 늦은 비를 따라 땅은 열매를 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요, 질서입니다. 또한,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며 그에 따라 사회법이 형성됩니다. 공적 합의에 의해 세워진 법은 해당 사회를 보호, 유지하는 틀로서 기능합니다. 자연법이든 사회법이든 법은 알게 모르게 강제력을 띠고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계절이 바뀌면 우리의 옷차림도 바뀌게 돼 있고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의 규칙을 따라 일상의 모든 방식이 결정되게 돼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법 아래에 있기에 법을 무시하면 불편한 삶을 사는 것은 물론, 심각한 위험에 빠집니다. 요컨대, 내 맘대로 살아가는 방식은 자칫 망하는 길로 가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제한하고 구속하는 법과 자유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법의 의도와 정신을 알 때 우리는 법 안에서의 행복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한 여성 드러머의 연주를 보았습니다. 한 때 인기 TV 프로였던 개그콘서트의 드러머 은성태 씨의 딸, 은아경 씨의 연주였습니다. 특히 연주하기 어렵다는 삼바 리듬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고난도의 드러밍 기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상이었습니다(https://youtu.be/G47i8qm_AS4?si=EJU2DbclU2oYKVYf). 무엇보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연주의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음악이 점점 고조되며 절정부에 이르렀을 때, 행복에 겨워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음악과 하나가 되어 듣는 이 모두를 빠져들게 만드는,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흔히 음악을 감각적인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음악은 정교한 질서와 법칙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모든 소리는 진동수에 따른 음 높이를 가지며, 규칙적인 배열에 따라 화음이 결정됩니다. 화음에 따라 자연히 무드(mood)가 형성됩니다. 한편, 아무리 조화로운 화음이 연속된다 하더라도 일정한 템포(빠르기)에 근거한 리듬이 없다면 음악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소리의 나열일 뿐입니다. 무드와 리듬이 있다 하더라도 곡조가 없으면 또한 음악이 될 수 없습니다. 곡조를 통해 작곡자는 곡의 기승전결을 나타내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합니다. 이 모든 조건이 채워질 때 비로소 음악이 됩니다. 

이렇게 정교한 법이 지배하는 음악에서 리듬을 담당하는 드러머가 그저 ‘제 멋대로’, ‘자유롭게’ 연주한다면 그것은 음악도, 무엇도 아닙니다. 의미 없는, 듣는 이들을 불쾌하게 하는 소음을 양산할 뿐입니다. 그녀는 철저히 법에 매여, 법 아래에서 행복한 자유를 누렸습니다. 자유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과정을 통해, 음악의 법을 알고 법과 하나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교통법규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교통법규 안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법규를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원하는 것을 했다가는 목숨이 경각 간에 오가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불평을 늘어놓으며 법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하등 유익이 없습니다. 나의 자유를 박탈당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법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교통법규의 취지와 의도를 알 때, 즉 이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는 입법자의 정신을 알 때, 자원함으로 법규를 따를 수 있습니다. 법을 알고 법과 하나 됨으로 내가 법의 취지와 의도, 정신 안에서 마음껏 선택하는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동일한 이치가 우리의 삶에 적용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법의 입법자요, 재판관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참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통법규의 의도와 취지를 알 때, 음악의 정해진 템포, 리듬을 알 때, 그 법 아래서 행복한 자유를 누리듯, ‘준행하면 삶을 얻을 율법’(겔20:11)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앎으로,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앎으로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립니다. 놀라운 사실은 법이 일일이 다 규정하지 않는 다양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를 알고 자원함으로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규례 중 곡식을 거둘 때에 밭 모퉁이까지 거두지 말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라고도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 거류민들을 위해 남겨두라는 것입니다(레19:9-10). 새 집을 지을 때 반드시 지붕에 난간을 만들라고도 하시고(신22:8),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은 것을 보거나, 원수의 짐승이 짐을 싣고 가다가 자빠지면 반드시 그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씀하십니다(출23:4-5). 이런 율법의 세부 조항들은 물론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에만 골몰하여 그저 율법을 행했다는 사실에만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세부 율법을 행하고 묵상하면서 자신들을 애굽의 압제에서 구출하시고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삼으신 은혜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들을 택하시고 제사장 나라로 세우셔서 거룩의 영향력을 나타내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나만 아니라 주 안에서 형제 된 성도들 또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아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율법의 정신이요, 율법의 정신이 그들 마음에 새겨질 때 율법이 세세히 규정하지 않는 여러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주십니다. 신자나 비신자나 모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자연법, 사회법이 있겠으나 무엇보다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고 묵상하게 하는 ‘율법’을 주십니다. 바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경 말씀이요, 오늘 교회를 통해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따라 주시는 실제적인 삶의 지침들입니다. 목회자는 성령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말씀하신다는 분명한 믿음과(계2:7) 성도들을 향한 참 목자이신 주님의 심정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에 근거한 삶의 지침을 제공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시라는 사실(엡1:22-23, 골1:18), 자신이 머리와 연결된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롬12:5, 엡4:15-16,25) 영적 권위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을 주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행20:28, 살전2:13). 성경을 읽고 듣고 배움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통해 주시는 삶의 실제적 지침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을 분명한 뜻과 계획을 갖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는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이요(신29:4),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이 통할 때 비로소 성경이 규정하지 않는 다양한 삶의 정황 속에서도, 영적 권위자의 그늘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습니다. 마치 늘 부모의 지시를 받던 어린 자녀가 장성하여 스스로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자유롭게 행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유를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경, 그리고 교회삶의 컨텍스트라는 뚜렷한 실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를 앎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율법의 완성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면 율법은 자연스레 행해지는 자유를 누립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이시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어 참 자유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_디모데성경연구원


첨부파일2026_3_27_자유로 가는 길.docx (26.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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