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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은 성(性)을 낭비하는 것인가? [제 765호 칼럼]
   조회수 185
2025-07-03 15:13:00

‘독신은 성(性)을 낭비하는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을 주셨는가?’의 문제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는 창조에 관한 것으로 창세기에 답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온 우주를 아우르는 창조의 규모는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시작을 봅니다. 물질이 형성되고 정리되며, 더없이 다양한 생명체가 세상에 쏟아져 나옵니다. 모든 것이 종류대로 지음을 받고 그 종류 안에도 다양성이 있습니다. 그토록 풍성하고 다양한 중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의 여러 부분을 조화롭게 아울러 창조의 장엄한 교향곡을 연주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창조의 클라이맥스는 인간의 등장입니다. 클라이맥스 답게 등장의 방식도 그전까지의 피조물과는 구별됩니다. 그전까지는 하나님의 “있으라”는 말씀에 따라 피조물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전례 없이(?) 협의하시고 “만들자”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특별히’ 하나님을 닮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어느 정도 그분의 본성을 반영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의 본성, 곧 형상을 그대로 품었습니다. 그 형상의 중요한 한 측면이 바로 “남자와 여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의미하는 바의 핵심은 다른 피조물에서도 발견되는 ‘상호보완적 성격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를 “쌍”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서로 협력해야 할 보완적인 짝들을 지으셨다.” 하늘과 땅, 빛과 어둠, 낮과 밤, 바다와 마른 땅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상호 작용하고 보완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본적인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는 것, 즉 남녀가 함께하는 모습으로 창조되는 것으로 위대한 클라이맥스에 이릅니다. 

이 마지막 짝인 남녀의 관계는 첫 짝인 하늘과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관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하나님의 안식하심으로 완성된 7일간의 창조 기사 직후에, 피조 세계 전체를 비추던 카메라는 갑자기 초점을 좁혀 한 동산의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비춥니다. 한 남자 아담은 혼자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완벽한 짝인 하와를 선물로 받습니다. 둘은 하나가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 행사는 혼인식입니다. 

엄청난 규모의 창조 사건 이후에 왜 갑자기 성경은 작은 동산에서의 혼인식을 그리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더없이 중요한 성경의 줄거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 줄거리는 하나님이 우주를 위해 계획하신 것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의 최종 연합”을 가리킵니다. 즉, 남녀의 연합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피조 세계 전체가 상호보완적이라는 것, 즉 하늘과 땅의 연합을 가리키는 이정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 나가다 보면 이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집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얻기를 원하시는 신랑으로 묘사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해 자주 결혼의 이미지를 사용하며, 복음서에서 예수님 역시 자신을 3인칭인 “신랑”으로 소개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서 내내 신부를 찾아 헤매셨던 그 신랑으로서, 자신이 구원한 백성의 남편이 되기를 원하시는 구원자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예수님과 우리가 한 영으로 연합하는 것이 남녀가 한 몸으로 연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존중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서의 존중과 같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클라이맥스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양과 그 백성의 혼인 잔치가 나타납니다. 그 후에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이 연합하는 환상이 이어집니다(계21:2). 하늘과 땅이 마침내 하나가 되는 것이요, 결혼만큼 이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해 주는 표현도 없습니다. 

요컨대 인간의 결혼은 성경 이야기 전체를 가리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우주 속에서 행하고 계신 커다란 일을 가리키는 것이요, 그 일은 바로 그분의 아들을 위한 백성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남녀라는 성을 주신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결혼에 대한 건강한 시각, 즉 복음적 관점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결혼에 대한 복음적 관점이란 첫째, 결혼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그분 백성의 관계를 가리키기 때문에 단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는 결혼을 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둘째, 결혼을 소중히 여기되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에 지나친 기대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앞서 논의한 바, 결혼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결혼의 목적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결혼은 진짜 결혼을 보여주는 시각자료일 뿐입니다. 

또한 결혼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독신에 대한 복음적인 관점을 제공해 줍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결혼은 궁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것은 천국에서의 ‘어린양의 혼인잔치’로 묘사되는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진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관계로 들어갈 때, 교회가 마침내 완벽한 신부로 그분 앞에 설 때, 결혼이라는 제도는 그 목적을 다합니다. 실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때는 더는 그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결혼은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극한 행복 속에서 영원을 보낼 때 우리끼리 결혼한 상태로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외에 우리는 독신자로 살 것입니다. 영원한 것이 아니기에 결혼은 현재 세상에서도 필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인은 독신으로 사셨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독신으로 사셨다는 사실은, 그분이 이루기 위해 오신 이 '궁극적인 결혼'을 확증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독신으로 사는 것도 궁극적 결혼을 증언하는 한 방법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독신으로 사는 것은 이 미래의 현실이 너무 확실하고 너무 좋아서 지금부터 이렇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독신의 삶은 성에 집착해 있는 세상을 향해 성이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것이 궁극적인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독신자가 성욕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해서 그들에게 성욕이, 당장 떼내 버려도 사는 데 별 지장 없는 맹장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독신자가 바라는 성적 충족은 다가올 더 큰 충족을 가리킵니다. 독신자의 성욕은 일시적인 이 땅에서 버린 것을 새로운 피조세계에서 영원하고도 온전하게 누릴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독신자는 성욕을 느끼면서도 충족시킬 수 없을 때 오히려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될 온전하고 깊은 만족을 더욱 분명하게 의식하게 되며, 그런 순간은 그들로 하여금 그분을 더 갈망할 수 있게 해줍니다. 

글린 해리슨은 말합니다. “이 땅에서 결혼을 했든 독신이든, 성욕은 우리 안에 내재된 하나님을 향한 귀소본능이다. 집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일종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종의 신체 언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우리에게 만족과 영원하 복이라는 더 큰 현실에 관해 말해주며, 그 방향으로 가라고 재촉한다.”

그러므로 독신은 성을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을 충족시키는 놀라운 길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혼이 복음의 모양을 보여준다면 독신은 복음의 충분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독신자에게 성은 복음의 현실을 가리켜줍니다. 성의 목적을 알기 전까지는 성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위의 글은 샘 올베리, 『싱글, 그의 자유함과 두려움』(도서출판 디모데)의 6장을 발췌, 요약, 수정,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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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2025_07_02_독신은 성(性)을 낭비하는 것인가.docx (18.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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