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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예배 [제575호]
   조회수 198
2020-06-23 14:48:08



 

성경적 예배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에서 예배는 종종 미국의 실용주의를 각색한 것 같다.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그들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찬송, 성경 봉독, 기도가 예배의 초점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위한 ‘예비적 활동’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예배의 경험은 목적을 향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성경적 예배는 종종 지루함, 목적의 결여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부터의 참여 없이 몸만 움직이는 회중의 비참여적인 행동으로 인해 부패되고 있다. 그 반대의 극단은 종교적으로 치장된 세속적 여흥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것을 제공한다. 그것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으로서 너무나 완벽하고 전문적이기에 심지어는 가장 진지한 예배자라 할지라도 그 꽉 짜여진 구상을 뚫고 진정한 예배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예배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만남’이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면(요 4장)에서 요한은 ‘예배’, ‘예배했다’ 또는 ‘예배자’라는 표현을 10번―요한복음 전체에서 13번 나오는 중에―이나 사용했다. 그 10번의 사용은 모두 다섯 절 안에 나타나는데(요 4:20~24), 이는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마리아 여인은 매우 종교적이었으며 예배를 드리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그리심산)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은 예배의 장소와 시간에 대한 논의를 모두 제쳐 두셨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지만, 요한복음의 메시지는 어떻게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는가를 보여준다. 문제는 예배자가 숨어 계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이 참된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며, 그분을 예배하는 자는 ‘신령’으로 예배해야 한다(요 4:24). ‘신령’이란 단어는 성령이 아니라 예배자의 영을 가리킨다.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취하는 자세―무릎을 꿇거나 서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 이전에 태도에 관심을 가지신다. 그리고 그릇된 태도는 그릇된 행동을 낳는다.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려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또한 신자들이 예배드릴 때 성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는 ‘확언(affirmation)’이다. 예배에서 신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는 반응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스스로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의 반응을 기다리시는데, 그러한 반응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의 의무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날 어떤 특정한 시간에 자신들을 휩쓸고 가는 어떤 종류의 감정이 아니다. 참된 예배에서 신자들은 자신이 그분의 백성이며 그분은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확언한다. 예배는 위를 보는 것이다.

예배는 또한 ‘보존(conservation)’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공예배는 믿음을 보존하고 전수한다. 그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긴다. 그 말씀과 그 믿음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고 전수하는 일의 근거가 된다.

예배는 또한 ‘덕을 세우는 것(edification)’이다. 예배자는 하나님의 인격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증가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른 예배는 신학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적 예배는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을 둘 다 만족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후자가 전자보다 앞서거나 동일한 선상에 놓여서는 안 된다. 

예배는 또한 ‘축제(celebration)’이다. 신자들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그분의 백성의 아버지가 되시는 분과 연합된 것을 축제한다. 그들은 그분이 하신 놀라운 일을 축제한다. 그들은 승리하신 구세주의 탄생, 생애, 죽음, 부활, 재림을 축제한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경배에 동참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초청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는”(엡 5:19) 새 언약의 신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도 기뻐한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사는 그들의 공동의 삶이 축제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재림과 그분이 세우실 그분의 나라를 기대하며 기뻐한다. 참된 예배는 우리의 모든 신체적, 정서적, 영적 기능들을 우리가 공동체로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일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드림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반응과 그분의 영광에 대한 찬미 가운데 이루어진다.

길키(Gilkey)가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반응, 즉 거룩하신 분의 나타나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예배가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반응의 형태를 지니게 될 때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주도권을 쥐셨음을 확언함으로써 은혜를 영화롭게 한다. 물론 궁극적인 선물은 십자가였다. 갈보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신약의 예배를 돋보이게 하며 1세기 지중해 지역의 이교도들의 제식적(cultic) 예배와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비제식화(decultified)’ 된 것이다. 예배는 어두컴컴하고 향냄새가 나는 공간 안에서 행해지는 비밀스러운 의식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매일의 생활의 한 부분과 같다.



첨부파일2020-06-23 성경적 예배.hwp (3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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