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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가꾸는 방법 [제562호]
   조회수 121
2020-03-17 15:54:51


 


행복을 가꾸는 방법

 


느헤미야서에는 예루살렘을 재건하실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거기 보면 건축 사업을 방해하는 많은 적에 대항하기 위해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장면이 거듭 나온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느 4:9). 느헤미야는 기도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지혜롭게 행동할 책임을 인식하고 미리 대비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동도 기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 안의 행복을 찾고자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 행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초자연적이지만 마술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비옥한 토양에 심겨 하나님과 그분의 사람들의 생수를 흠뻑 마시고 그분의 은혜라는 찬란한 햇빛을 쐬어야 한다. 그러면 행복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지혜로운 선택은 지속적인 행복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마음[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야 하고 무엇이든 선하고 칭찬받을 만한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참조. 빌 4:8). 구태여 갈 필요가 없는 길로 가서 자신의 거룩함과 행복을 망칠 때가 너무 많다. 사악한 자의 길에 들어가거나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아야 한다(잠 4:14). 죄는 재앙과 화와 고통과 괴로움을 부른다. 불행을 낳는다. 죄의 열매는 자멸과 파탄이며 죽음과 상실을 낳고 큰 수치를 부른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선택은 우리를 극도로 불행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죄나 의나 행복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속에 들어간다. 

사람들이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이해할 수 없다. 순결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다시 인터넷 포르노에 빠졌다. 하나님은 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이러한 말에 대한 분명한 답변은 “당신의 선택이 기도를 무력하게 했다”라는 것이다. 음란한 사이트의 접속을 제한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했는가? 사이트에 접속할 때마다 친구나 담당 목사에게 통보해 주는 프로그램을 깔았는가? 컴퓨터를 아예 없애거나 모니터를 사람들에게 다 보이는 자리로 옮겼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 주시기만을 바랐는가? 

날마다 내린 우리의 선택에서 삶의 차이를 만든다. 선택이 쌓여 죄와 불행을 낳거나, 의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죄나 의나 행복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 문화가 약속하는 것과 반대로 절제는 행복의 필수 요소이다.

헤도니즘 2(hedonism 2)라는 리조트의 웹사이트에 보면 이런 초대의 글이 나온다.


“밤늦도록 즐기고 늦잠에 취하라. 칼로리 계산이나 광천수 따위는 잊어버리고 낮술을 마시라. … 침구 정돈도 하지 말고 벌거벗고 수영하라. … 환상의 섬 자메이카에서 멋진 당신 자신이 되라. … 헤도니즘 2에 사상 초유로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당신의 모든 죄스러운 향락을 충족시켜줄 쾌락주의적 편의와 서비스가 매혹적으로 완비되어 있다.”

 

문장마다 “그러면 당신은 행복해진다”라고 외치고 있다. “죄스러운 향락”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문화가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가고자 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성경은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 25:28)라고 경고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힘써 너희 … 지식에 절제 … 더하라”(벧후 1:5~7)라고 명하신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비교는 치명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행복하다는 생각은 비생산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들의 고민과 혼자만의 아픔과 비밀을 우리는 모른다. 데니스 프레이저(Dennis Prager)는 비교의 덫에 갇힌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비유하건대 그들은 복리로 불행하다. 복리가 이자의 이자이듯 복리의 불행은 불행에 대한 불행이다.” 모두가 같은 싸움터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삶이 쉽지는 않지만 서로 비교하기보다는 동지애를 즐기면 한결 쉬워진다.

 

성공하면 행복해진다는 개념을 버려라.

정상에 오를지라도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새로 취직하거나 큰 계약을 따내서 행복한 며칠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다음 번의 목표치를 높인다. 하지만 올라가는 데도 한도가 있는 법이다. 언제나 내 위에 누군가가 있고 어떤 계약은 성사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은 의사, CEO, 목수, 화가, 운동선수가 늘 있게 마련이다. 설령 1인자가 된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을 행복의 근원으로 삼으면 우리의 행복은 기초가 확실해진다. 그분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의 한계를 아신다(시 103:14 참조). 구태여 1인자가 되지 않아도 우리는 그분을 신뢰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이기면 모두가 축하할 수 있다. 행복은 싸워서 쟁탈해야 하는 제한된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라고 하셨다. 이타적인 삶이 행복의 지름길임을 주님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타적인 삶, 즉 자기를 내어주시는 삶을 통해 참 행복을 보여 주셨다. 사도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기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빌 2:3~4)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살피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도 최고의 유익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는 “다른 사람을 섬기면 상대와 하나님과 당신이 동시에 행복해질 수 있다”이다.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자하면 모두가 승자가 된다. 


첨부파일(2020.03.17) 행복을 가꾸는 방법.hwp (16.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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