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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에 반격하는 법, 사랑 [제 764호 칼럼]
   조회수 46
2025-06-20 09:41:39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다양한 복을 주권적으로, 분량에 따라 나눠 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거대하고 징그러운 바퀴벌레와 위풍당당한 아라비아 말을 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 문화는 ‘모두의 감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시는 복의 다양성을 부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닌 척해도 재능이나 지능, 아름다움, 태도, 힘, 기술 따위를 남들보다 많이 받은 사람이 있고 적게 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이 받거나 많이 성취하는 사람이 우리와 매일 부대끼며 사는 사람일 때, 즉 친구와 가족을 비롯하여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일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느 고대 사상가는 이렇게 말했지요. “내 친구들의 재능이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내 형제의 행복에 기분이 나쁘다.”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드러내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아들을 품에 안은 하갈을 향한 사라의 시선, 찬사를 받으며 당당히 입성하는 다윗을 보는 사울의 마음. 그렇습니다. 바로 시기심입니다. 


시기라는 죄는 잘 드러나지 않는 성격을 가졌지만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합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 즉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이 시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창4:5, 요일3:12). 메시야 예수님을 죽인 인류 최대의 살인 역시 대제사장들의 시기에서부터였습니다(막15:10). 그러니까 시기야말로 온갖 참담한 죄들의 연쇄 반응을 촉발하는 무시무시한 폭발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 크리소스톰, 키프리안 등 교회사의 리더들이 시기를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 혹은 대죄 중 하나로 규정했던 이유 역시 시기가 그만큼 주된 문제요, 수많은 다른 죄를 쏟아내는 원천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은밀하면서도 치명적인 시기의 죄에 대해 성경은 명쾌한 해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해법인 이유는 고전13:4에서 말씀하시는 바, ‘사랑은 시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기의 정반대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곳에 시기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시기할 수 없습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누군가를 시기한다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나의 친구든 누이이든 팀원이든 형제자매이든 그런 호칭은 무의미합니다. 그를 시기한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해야 합니다. 시기의 감정과 분노를 쓰러뜨릴 결정적 공격은 바로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꼭 따스한 애정의 감정이 생겨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사랑은 그런 따스한 애정의 감정이 없을 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시고 오늘도 의지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시기는 자동으로 물러가기 시작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랑은 시기의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둘은 공존하거나 양립할 수 없습니다. 


본보기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갓난아기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와 카시트에 앉히는 순간부터, 부모의 삶은 송두리째 바뀝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기중심적이던 인간이 갑자기 새벽 2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의 시중을 듭니다. 갑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돈을 쓰며, 관심을 쏟고, 칭찬하며,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뎌냅니다. 


자녀가 무언가를 배우고 잘 하게 될 때, 부모는 진심으로 기뻐할 뿐이지 결코 자녀를 시기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성적우수상을 받거나, 피아노 독주회의 피아니스트로 선정되거나, 중요한 축구 경기에서 결정적인 골을 넣는다고 시기심이 북받쳐 오르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더 잘 되기를, 나보다 더 잘 하기를, 누구보다 더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본보기로 보여주시는 사랑을 당신의 형제에게도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분명코,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토록 원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형제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낼 때 빌2:1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권면(격려), 위로, 교제, 긍휼과 자비를 얻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 사이의 일상적인 상호 작용(사랑)을 통해 이 하늘로부터의 네 가지 수직적 현실을 매일 우리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과의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의 ‘권면’을 가시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분 자녀들과의 올바른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님 사랑의 ‘위로’를 경험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환대와 상호 헌신을 통해 우리 구속자와의 ‘교제’를 실질적으로 경험합니다. 주변에 가득한 구속과 용서를 받은 무리의 그리스도를 닮은 손발을 통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긍휼과 자비’를 느낍니다. 사랑을 흘려보냄으로써 하늘로부터의 영적 가치가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곳에 시기는 발붙일 수 없습니다. 그렇게 시기라는 파괴적인 죄에서 자유하십시오. 


위의 글은 마이크 페버레즈, 『나를 무너뜨리는 내 안의 적』(도서출판 디모데)의 6장을 발췌, 요약,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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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2025_06_19_시기에 반격하는 법, 사랑.docx (17.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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