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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목적적 존재로 지음받은 교회와 성도2019-09-18 16: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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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11/01/20 15:41

 

목적적 존재로 지음받은 교회와 성도

오늘날 이 병든 세계안에 땅들과 도시 그리고 지역들을 복음화 하려면 문제의 정황을 정확히 그 근본 부터 파헤쳐 나아가야 한다. 세계는 지금 중병에 신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과거보다 더욱 다양한 형태로 죄악이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는 은밀히 숨어서 죄를 짓던 이들이 이제는 당당히 거리로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가운데로 파고들어 문화화되는 이상한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동성애, 성 중독 환자들, 성전환자들의 커밍아웃, 십대들의 거리흡연, 마약과 각종 약물중독, 혼전순결의 조소와 조롱, 혼전 동거와 무한 개방된 성의 자유, 포노 그라피의 대중화등등... 매스미디어에서는 이러한 주제의 드라마나 영화 또는 각종 오락물들을 공공연히 제작 방영하고 있다. 영아유기, 고위급 정치인 또는 재벌들의 자살, 친부모의 자녀유기, 가정 파괴와 기초가정 해체, 백성을 섬기는 직에 있는 고급 공무원들의 범죄율 상승, 지난날 신뢰의 상징이었던 은행이나 금융 기관원들의 범죄율 급상승, 국가를 신뢰로 시작한 각종 연금의 고갈과 횡령 등등.... 지금 우리사회는 급속도로 자본주의 정체성에 혼란이 가중되어 가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천박함과 그 일탈 현상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에 의하여 위기를 맞고있는 실정이다.

밀림에서 포효하는 사자의 죽음은 늙어죽는 경우보다는 귓속으로 파고든 불 개미의 뇌침투로 인한 뇌 손상에 의하여 죽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어떤 이데올로기보다도 탄탄해 보이는 거대 자본주의의 말기 현상이 꼭 이와 같아 보인다. 사망진단이 내려진 임종 준비환자처럼 비틀거리며 행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심각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은 도덕성 재무장 운동이나 주어진 자유를 쾌락의 기회로 삼는 것에 대하여 절제를 부르짖거나 정직성 운동 또는 대대적 윤리회복 운동 등등의 비슷한 어떤 운동도 부르짖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정치생명을 지키기 위한 당리당략에 따라 여론의 향배에 입 맞추며 말초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음녀같은 정신을 가진 집단처럼 보인다. 이미 20세기 말에 타락의 중심을 걷고있던 세기의 황혼을 바라보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하여 대안을 논하자고 도전했던 프란시스 쉐퍼의 부르짖음이 생각난다.

모든 인간의 존재적 고뇌는 나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모든 어그러짐의 원인이된다.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론적 사유에서 부터 이어지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의 삶은 나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목적에 이끌리는 삶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귀기울여 듣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삶의 청사진을 받아든 자만이 참 인생의 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로부터 출발하여 삶의 정황이 뒤틀려버린 사회, 나로부터 시작하였기에 미궁에 빠졌고 그 결과로 죄악이 범람하는 도무지 배울 것이 없는 사회, 존경할 만한 스승으로부터 주어지는 교훈이 없는 사회는 병적인 사람과 병적인 사회를 재생산하게 된다. 이 민족에 미래의 지도자들인 청소년들이 버젓이 하교시간 교문으로부터 몇 발짝 나서는 순간 이성간에 손깍지를 끼고 담배를 입에 물고 거리를 활보하며,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부담 없이 음란한 애정 표현을 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들이 청소년에게 주어진 자유가 넓게 확보된 사회라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청소년들 자신들이 이런 사회를 민주적이고 자율적이며 건강한 사회라고 인식하고 있겠는가? 아마도 우리사회에 심리적으로 병든사람이나 어떤 중독자들 말고는 이것을 정상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어른들의 삶의 투사요 반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어른들이 그렇게 조장한 것이다.

목적을 잃어버린 아버지가 타락한 삶을 살고 목적인의 실제적 해답이 없는 어머니가 방탕한 삶을 살기에 이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자식들의 가슴에 맺힌 옳음과 바름에 대한 갈증이 바닥이 나고 이젠 그 기다림에 지쳐 통제불능의 죄악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제시하여야 할 스승들이 혼돈된 자기정체성 때문에 범죄의 중심에 서 있으니 다음세대의 삶에 정의와 진리를 불어넣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인 우리가 그들에게 목적이 정확한 삶이 아니기에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교회 공동체들이 이런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해답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가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암담한 일이다. 법조항에 이러한 일들이 범죄에 해당한다는 문구나 사항이 있다 할 지라도 보통시민을 포함하여 국가 지도자 그룹에 속한 경찰이나 의사 심지어 교사, 목사들 조차 이러한 범죄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비젼과 꿈은 하나님이 제시한 목적에 이끌리는 삶과 사회로의 전환이다. 아브라함부터 이 반열에 서서 믿음의 맥을 이어온 남은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목적에 이끌리는 사회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청지기들이 넘치는 사회이다. 거룩한 삶의 모범과 건강한 삶의 전형이 일반화된 사회이다. 다시 말하면 거리에 나아가면 아! 저렇게 사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구나 . 하는 건강한 삶의 과정과 따라야할 기준 (형성트랙)이 있는 사회를 말한다. 누가 이것을 할 것인가? 바로 건강한 교회와 거룩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목적에 이끌리는 하나님의 가족은 체면이나 분노 때문에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나님의 기쁨 넘치는 가족으로 부름 받은 성도는 남의 격려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 땅을 아버지의 땅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일을 하여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공동체 안에 스며든 세속적 동기와 야심 그리고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교회(성도)들을 독려하는 어떤 것들이 없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당이 커지고 교회에 출석하는 숫자가 많아져서 그 내부적 모임과 사역들 만으로도 도무지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아쉬울 것이 없는 교회, 사회의 비난이나 비판에 대하여는 어떤 반응을 하지 않아도 아무런 걱정과 부담이 없는 교회, 이래서는 안 된다.
목적에 이끌리는 교회는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예레미아의 심령으로 애통해 하며,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을 회복하여 세상을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제사장이며 신사도적 사명을 이어받은 존재인 것이다. 목적인으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을 말씀에 이끌리는 순종의 사람으로 세우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위탁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이 경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경영하도록 내어 드려야 한다. 이 땅이 아버지의 땅임을 알고 이 땅을 사랑하며 물과 성령으로 씻고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는 일에 거룩한 열망으로 일어날 거룩한 아버지의 동역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이끌리어 사역함으로 이 사회가 변화되도록 섬겨내지 못하는 한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바꿀 것이다. 다가오는 날들에 대하여 어제와 오늘 반성이 없는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어 갈 것이다. 아니 세속의 거함이 구멍난 교회들을 침몰시키고 말 것이다. 교회는 바뀌어야 한다. 리더십들과 성도들은 자신의 문제를 냉철하게 진단하여야 한다. 파괴되어 회생이 불가능 하기전에 우리는 스스로 잘못된 것들을 시정하고 바꿔야 한다. 자발적 자정과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리는 희생공동체이어야 한다. 비 성경적 자기 추구의 공동체는 자본주의에 영성에 세례를 받은 세속화된 공동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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