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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활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2019-09-18 16: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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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01/20 16:04

 

부활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드립니다

1. 부활절을 지키는 날자는 왜 유동적인가
부활절은 매년 3월 22일부터 4월 25일에 온다. 이것은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주일이다. 이렇게 지켜지는 이유는 그 유례가 있다.
초대교회 때 3세기 동안에는 해마다 부활절을 지켜야 할 일자에 대하여 계속 날카로운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동방교회(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안디옥, 콘스탄틴 교구를 포함한 로마 동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자를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을 음력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서방교회(로마교구를 중심으로한 서쪽에 위치한 교회들)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주일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서방 크리스천들에게는 요일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의 크리스천에게는 날자가 중요하였다.
이런 의견의 해결은 AD 325년 니케야 총회에서 결정했는데 결국 날자와 요일을 인정하여 부활절은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주일이 되도록 하였다.

2. 부활절 계란의 유래
오래 전부터 부활절에는 색칠한 계란을 교환하거나 아이들에게 선물해왔는데 그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한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동양의 새인 닭을 가진 유럽 귀족이 얼마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닭이 없는 마을에 정장을 한 귀족부인이 시녀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긴 여행과 추위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선량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잘 곳을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부인은 계속 그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그녀는 본래 귀족 집안 출신 사람인데, 남편이 십자군에 출정한 후, 못된 신하에게 재산과 집을 빼앗기고 떠돌이 신세가 된 로잘린드 부인이었다. 로잘린드는 이 마을에 닭이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애석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닭을 주선해 와서는 정성껏 기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부활절이 되었을 때 로잘린드는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활절 아침 일찍이 마을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자, 여러분 지금부터 숲에 가서 각각 자기 나무를 만들어 놓고 돌아오세요. 그러고는 함께 부활절 식사를 합시다.”라고 말했다.
어린이들은 환호성을 치며 숲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숲속으로 가세요. 자기가 만든 둥우리를 찾아서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보세요."
숲에 다녀온 어린이들의 손에는 예쁘게 색칠된 달걀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위하여 반드시 도와주신다.”라는 로잘린드 집안의 가훈이 쓰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부활절 선물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날 오후 로잘린드는 부인은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는 고갯길을 넘어온 한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중병에 걸린 어머니를 찾아가기 위해서 밤잠도 안 자고 걸어 왔던 것이다. 로잘린드 여사는 이 소년에게 사려깊은 위로와 함께 색칠한 달걀 한 개를 주어 가지고 가게 했다. 소년은 여행을 계속하던 중에 어느 산길에서 부상당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병사를 발견하고는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소년은 망설이던 끝에 어머니께 갖다 드리려던 달걀을 내놓았다.
병사는 그 달걀을 받아들자 깜짝 놀랐다. 자기 집안의 가훈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으로 돌아온 그 귀족 병사는 아내를 찾아 읍에서 읍으로, 마을에서 마을로 오랜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인데 마침내 달걀을 인연으로 해서 다시 찾게 되었다.

3. 부활절 계란의 영적인 교훈
부활절이면 우리는 의례히 계란을 선물하곤 한다. 부활절 계란에 대해서는 유래도 다양하지만 그 외에도 계란은 몇 가지 영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첫째, 계란은 겉보기에 꼭 죽은 것 같지만 어미 닭이 3주간 품고 있으면 너무나 예쁜 병아리가 나온다. 이것이 죽은 지 사흘 되신 예수님께서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것을 생각나게 한다. 물론 따지고 보면 이건 난센스이다. 계란은 그냥 죽은 것 같아 보일 뿐이고 예수님을 정말로 죽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계란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해주는 좋은 시각자료가 될 수 있다.
둘째, 양계가 일반화된 요즘에는 계란은 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계란 가운데는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다. 양계장에서 암탉이 혼자서 낳은 무정란의 경우 어미 닭이 품고 있으면 예쁜 병아리가 나오기는커녕 썩은 계란이 되어 버린다.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계란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준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겉보기에 똑같은 계란이라도 유정란 만이 병아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겉보기에 똑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모신 사람만이 생명이 있고 마지막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부활절 계란을 맛있게 먹으면서 생각해보자.
이 계란은 유정란일까?
그리고 내 속에는 예수님이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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