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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스겔 강해3,4(새벽기도 설교전문)2019-09-18 16: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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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01/21 16:46

 

말씀: 겔39:1-20
승리

여러분!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역사 속에서 수많은 전쟁이 있어서 나라가 무너지고 또 다른 나라가 세워졌지만 이 역사의 배후에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지난 5,560년 동안 지구상에는 14,530회의 크고 작은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인간의 죄에 의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역사운영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나라와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또 한편 전쟁에는 역사의 심판 속에서도 긍휼을 잃지 아니하시면서 그루터기를 남기시고 믿음으로 사는 의인을 남기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보이는 싸움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은 더욱 치열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늘 끊임없는 영적인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곡이 이끄는 이방 동맹 세력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앞선 38장의 말씀에서 곡이 이끄는 동맹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올 것과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그 동맹세력이 완전히 괴멸될 사실 등이 예언된 바 있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본 단락에서도 반복적으로 곡과 그 동맹 세력의 멸망을 예언합니다만 앞단락보다는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곡과 그 동맹군의 파멸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1-10절까지 나옵니다.
앞선 38:11에서 보듯이 당시 곡과 그 동맹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들어 왔을 때, 이스라엘은 성벽도 문의 빗장도 없는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이처럼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던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을 이끌고 급습한 곡과 그 동맹군을 무찌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곡과 그 동맹군이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참패를 당하고 멸절을 당합니다.

1절-3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대적자를 대적하십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대적들의 권력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철저하게 꺾일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있을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줍니다.

이제 4-5절에 보면 선지자는 마곡 연합군의 군대가 완전하게 패배하게 되어 그 시체가 들판에 흩어지고 들짐승과 날 짐승의 먹이가 되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죽어 그 시체조차도 매장되지 못할 정도로 마곡 연합군의 패배와 죽음은 처절하고 비참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괴롭히고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최후는 저주 그 자체요, 처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죽음은 마지막 심판 때에 악인의 운명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선지자는 마곡과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들에게도 재앙이 임하리라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죄악된 그 공동체 전체에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그 개개인에게만 심판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전체에 심판이 임합니다. 왜냐하면 한두 사람의 범죄는 결국 그 사회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그 공동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만한 악한 상태로 타락하고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악이 아무리 작더라도 철저히 뿌리를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7절을 봅니다.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이 사건에 개입하신 것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온 천하에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곡과 그 동맹군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와 공의로우신 통치에 도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타락한 이방 세력의 마수에 넘어가게 내버려두셨다면 하나님 자신의 이름은 또다시 이방세계에서 더럽힘을 당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보존하시며 당신의 영광을 온천하에 드러내시기 위해 친히 곡과 그 동맹군에 맞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마곡 연합군의 심판을 경고하시면서 8절에 보면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볼찌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반복적 표현은 강조적 의미를 갖습니다. 반드시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한번 작정하신 일은 결코 폐기되지 않으며 그대로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악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십니다.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악인의 흥왕함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셔서 멸망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9절-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대적들의 병기를 모두 불사르는데 무려 7년이 걸리게 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결국 곡과 그 동맹군은 수많은 군사를 동원하였으며 막대한 전쟁물자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 말을 많이 가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군대의 강함이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을 지켜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여 왕이 말을 많이 두고 그러한 군대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까하여 그런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고백한 말이 무엇입니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나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러분! 진정 하나님의 후원을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절대안전과 절대승리가 늘 보장되어 있습니다. 요16:33에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나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이기 때문에 당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가 바로 우리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적인 능력이 탁월해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개입덕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군사가 되시어 곡과 그 동맹군을 물리쳐 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11절-16절의 말씀은 마곡 연합군의 시체는 하몬곡에 매장될 것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마곡 연합군의 시체가 하몬곡, 즉 곡의 무리라는 이름의 골짜기에 장사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지나는 나그네들에게 큰 경고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말씀에는 그 시체의 매장으로 인해서 길이 막힌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전투가 치열한지, 그리고 얼마나 완전히 파멸되었는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장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강대한 전력을 갖춘 곡과 그의 동맹군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함으로 인하여 열방중에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이 명성을 얻는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12절 하반절, 14절 하반절, 15절 하반절에 보면 시체를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시체를 매장하여 거룩한 땅을 철저하게 정결하게 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이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 시체로 더렵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곡 연합군의 시체는 매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매장지는 하몬곡의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다시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참으로 이런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 이외에 감히 존귀와 영광을 받을 존재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17-20절은 새와 짐승들이 곡과 그 동맹국들의 군대의 시체를 뜯어먹는 것으로 완전한 곡의 멸망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산에 예비된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새와 들짐승들은 마곡 연합군의 시체를 먹는 잔치자리에 초대되었습니다. 마곡 연합군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비참하고 처참한 저주의 자리였지만 새나 들짐승의 입장에서는 더할 수 없는 축복의 잔치였습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백성의 크나 큰 기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수 대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패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줍니다. 이러한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승리로 인한 성도의 기쁨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 때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마곡 연합군이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악한 원수 대적들의 비참한 최후가 어떠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고도 실감나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원수 대적의 대장격인 사단과 그 수하의 마귀들의 최후가 어떠하리라는 사실도 짐작케 합니다. 원수 대적 마귀와 사단의 최후는 영원한 멸망이요 파멸입니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다면 우리는 결코 염려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혹시 이 가운데 시련과 어려움, 염려 속에 있는 성도님은 없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승리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승리를 믿으시고 현실의 고난 속에서도 실망치 않고 믿음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동신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삶속에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사단은 굶주린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다니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자를 이러한 사단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신다라는 실로 소중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동안 사단의 공격을 능히 이기는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으로 사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롬8:1 ; 요일5:4)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싸움은 피할 수 없는 주님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인 이상 우리에게는 늘 이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승리가 보장된 싸움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속에는 마귀를 이길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런 믿음의 싸움으로 불러 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승리는 그분의 것입니다. 우리를 이 영적인 전쟁터로 부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수많은 전쟁에서 한번도 패해 본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강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힘의 능력 안에 두심으로써 우리를 승리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겔40:17-37
하나님께 가는 길

제가 지난 번 말씀 드린 것처럼 선지서를 생각할 때 선지서의 중요한 메시지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심판, 하나는 회복입니다. 에스겔은 1장-32장까지는 심판이, 33장-48장까지가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1장부터 32장은 유다와 예루살렘 더 나아가 열방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나오고 33장부터 48장까지는 이스라엘의 회복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이 회복의 말씀 중에서 에스겔서40장부터 43장의 말씀은 천사의 인도함을 받아 에스겔의 눈을 통해 본 회복될 새성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40장부터 새롭게 회복되어질 새성전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그리고 그 수치를 꼼꼼하게 그려주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스겔11장23절 이후 성전을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 새성전의 지성소로 돌아오시는 43장에 이르러서는 그 절정을 이룹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으실 새 성전은 거룩함과 율법에 대한 사랑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에스겔서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의 가장 절정에 왜 하나님의 성전을 기록했겠습니까? 성전의 회복이 이스라엘의 회복에 어떠한 의미를 던져 주는 것입니까?

여러분! 성전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배하며 예배하는 곳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피상적으로 보여지는 외형적인 회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회복, 진실하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그것이 참된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회복의 말씀의 절정속에서 에스겔은 성전의 회복의 이상을 그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 성전이 바로 무엇을 가리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이나 스룹바벨 성전, 헤롯의 성전과는 그 규모에 대해서 잘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펴 볼 47장에 나오는 것처럼 성전 어느 쪽에도 강물이 흐르지 않습니다. 이 성전을 이해하는 열쇠는 바로 성전 아래에서 흐르는 물입니다. 그 물이 결국에는 넘쳐흘러 모든 것을 소생하게 하였습니다.
신약에 와서 요한복음 3장에 가면 예수님께서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던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면서 자신이 생수를 공급하는 여인을 가리켜서 자신이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물을 먹는 자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을 것이며 모든 문제에서 해결함을 받고 온전하게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에스겔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신약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주님의 백성된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구약성경을 읽는 가운데 아주 지루한 본문일 수도 있습니다. 성전의 여러 부분의 묘사-성벽, 문, 문지방, 현관, 문설주, 아치와 기구들 그리고 때때로 지루하게 나열되는 측량한 치수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우리들에게 지루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듣는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모든 에스겔의 이상 중에서 가장 감격적인 것 가운데 하나였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 이상을 보는 에스겔은 제사장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누구보다도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지루하고 어렵게 느낄지 모르지만 성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제사장출신의 에스겔에게는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부분은 성전의 대한 이상 중에서도 성전의 바깥뜰, 성전의 북문, 성전의 남문, 그리고 성전 안뜰로 통하는 문에 대한 이상입니다.

시간상 모든 말씀을 상세히 살펴 볼 수는 없고 몇 가지 중요한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살펴 봄으로써 기도의 제목을 삼기를 원합니다.

먼저 17-19절에서 보는 성전의 바깥뜰에 대한 묘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전의 바깥뜰의 삼면에는 박석 깔린 땅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땅위에 30개의 방이 있습니다. 여기서 박석이란 다듬어진 돌을 가리키는 말로서 포장된 마당이나 길을 가리킵니다. 즉 성전 바깥뜰의 삼면은 이렇게 포장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흙먼지가 나지 않도록 정결함과 성결함을 유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는 소란도, 소요도, 분요함도 없어야 합니다. 정결하고 정숙하며, 항상 거룩하고 성결함이 유지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정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사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고 계십니까? 로마서 12장1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랑하는 동신의 성도여러분! 모든 삶 속에서 단정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20-27절 성전의 동문처럼 북쪽과 남쪽에도 같은 치수의 균형적인 문이 있습니다. 그 치수도 같고 창도 같고 문벽위에 종려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 또한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주 균형적으로 발 만들어진 성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앙의 공동체인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공동체가 질서있고 안정적이고 균형이 잡혀져 있어야 합니다. 성전의 지체된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분들은 기도가 제일 중요하다하고 기도만 열심히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무엇을 보았다!" 그럽니다. 아닙니다. 말씀으로 잘 분별해보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전도만 열심히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말씀을 배우셔야 합니다.
모든 것이 균형적이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사실이 성전에 문이 북, 남, 동문을 통해서만 성전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길이나 다른 문은 결코 없습니다. 더욱이 성전 담을 넘어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결국 성전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생생하게 교훈해 줍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우리를 미혹케 하는 많은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의 속임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확고한 믿음가운데 든든히 서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 28-37장까지는 성전 안뜰로 통하는 문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전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곳에는 여덟 개의 계단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선정 밖에서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에는 7개의 계단이 있었는데, 이제 성전 바깥뜰에서 안뜰로 향하는 데는 한 개의 계단이 더 추가되어 여덟 개의 계단이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소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신앙과 믿음이 성숙하고 성장해야 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늘 고 과거에 메여 사시는 분이 계십니다. "내가 과거에는 소나무 몇그루 뽑았어!" "내가 옛날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 줄 알어?" 중요한 것은 그 때와 비교해서 지금 과연 얼마나 신앙의 진보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 여러분의 믿음, 여러분의 헌신이 날이 가면 갈수록 더 깊이가 있고 뜨거워 질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문 벽마다 종려나무가 새겨져 잇다는 사실입니다. 이 종려나무 그림 형상은 이전에 성전 출입문의 벽에도 새겨져 있던 것이었습니다. 왜 성전안으로 들어가는 문마다 이 종려나무를 그려 놓았겠습니까? 여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종려나무는 흔히 이스라엘에서 승리와 환히, 기쁨을 상징하는 그런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사람들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종려나무 상징물이 안뜰로 들어가는 문의 벽에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자에게는 영원한 승리와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이 복된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실 때 여러분에게 승리와 기쁨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다가오지만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 이 새벽에 주님 전에 나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승리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회복될 성전의 모습을 살펴 볼 것입니다. 여러분! 성전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영광 중에 임재하시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깊은 교제를 나누시고 죄지은 인생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자비가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바로 그 장소, 그 현장이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회복 그 절정에 성전에 회복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이 성전의 회복의 말씀을 통해서-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시간 사업의 어려움을 안고 사업의 회복을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혹시 건강의 문제로 건강의 회복을 구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가정의 회복을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대구 땅의 회복을 원하십니까? 우리가 늘 기도하지 않습니까? "주님 팔공산이 시온산이 되게 하옵소서!" 이 일을 위해 먼저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대구의 부흥을 원하십니까? 먼저 그 부흥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일어나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써 온전히 회복되어지고 든든히 서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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