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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스겔52019-09-18 15:2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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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1/01/21 16:49

 

제가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너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꿈이 아닌가?' 라고 모두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들의 말로가 하나 같이 모두 좋지가 않았습니다.
특히 5, 6공화국의 두 전직 대통령들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그들의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이 심판대에 설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어떤 초등학교에 설문조사를 했는데 아이들 가운데 대통령이 되겠다고 대답한 아이가 한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권력, 재물, 힘이란 것은 크면 클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더 조심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권력과 재물, 힘이란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나 우리나라 역사 속에 최고권력자인 많은 왕들이 자신의 권력으로 유익되게 하는 경우도 보았지만 오히려 더 타락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속적인 최고의 권력자인 왕에 대한 기업의 규례를 말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제 새벽에 살펴 본 말씀 에스겔46:1-15에서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각종 제사를 드림에 있어서 그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왕의 역할을 중심으로 설명을 합니다.
이에 이어지는 본 단락은 왕의 기업에 대한 규례와 44장 이후로 계속 되었던 새 성전에서 드리게 될 새 예배 규례를 마무리하면서 제물 준비에 대한 규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왕에게 주어질 기업에 대한 규례의 말씀이 16절-1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왕의 기업에 대한 규례는 내용상 45:8에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왕의 기업에 대한 첫 번째 규정은 그 기업이 왕가에 의해 세습된다는 것입니다.(16절을 읽고) 왕은 아들에게 자신의 기업을 상속시킴으로써 세습적으로 그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왕의 권위를 보장하고 왕에게 일정한 분깃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백성의 소유를 수탈할 수 있는 여지를 미리 막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 다음 17절에 나오는 왕의 기업에 대한 두 번째 규정은 왕이 만일 자기 아들이 아닌 다른 자에게 자신의 기업 중 일부를 떼어 주었을 경우 그 기업은 새로운 소유자에게 영원히 귀속되지 아니하고 희년까지 이르러 다시 왕에게 소유권이 회복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희년 규정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 토지제도 있어서의 희년 제도의 궁극적인 기초는 모든 토지의 궁극적인 소유주가 하나님이시라는 인식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에게 주는 중요한 규례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18절
세 번째 왕의 기업에 대한 규례는 왕이 권력을 이용하여 백성의 기업을 강탈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왕으로 하여금 특별히 성별하신 땅을 희년까지 줄이거나 더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막강한 힘과 권세를 부여받은 왕으로 하여금 사리사욕에 빠져 백성을 압제하고 하나님을 배역하는 일이 없도록 조처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밀하십니다.
왕 역시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청지기일 따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권력을 주신 것은 그것을 가지고 백성들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삼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기업에 대한 규례를 언굽하기보다 먼저 왕에게 그 기업에 대한 규례를 엄격히 제한하시는 말씀을 주셨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세속의 권력 앞에서 비교적 힘이 약한 약자를 보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힘이 없는 일반 백성보다 사실 세속적인 힘이 있는 왕이 더 타락하기 쉽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권력이 없는 사람보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더 타락하기 쉽니다. 돈이 없는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더 타락하기 쉽니다. 힘은 있을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힘이 없는 것보다 힘이 있을 때가 더 타락하기 쉽니다. 어렵고 힘든 때만 시험의 때가 아니라 형통한 때가 어쩌면 더 큰 시험의 때가 될 수 있습니다.

왕은 자신이 세속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오히려 모든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쉽고 또 그 힘을 가지고 더 탐욕의 길로 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나님은 왕의 기업에 대한 규례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가 타락하기 쉽겠습니까? 가난한 자가 더 타락하기 쉽겠습니까? 부자가 더 타락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날 이 시대에 향락 문화가 아주 발달하여서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인 여유가 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대의 향락 문화가 건전한 것보다는 혼탁한 것이 더 많다는데 있습니다.

우리에게 재물이 더해 갈수록, 힘이 더해갈수록, 더 지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자신의 청기기적 사명을 반드시 기억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 다음 46:19-24까지의 내용은 제물 준비에 대한 규례입니다. 19절-20절은 제사장들의 부엌이고 21-24절까지는 제사장을 제외한 레위인들을 위한 부엌에 대한 내용입니다.

다시 에스겔이 천사에게 이끌리어 북쪽 거룩한 방 뒤 서편에 한 처소로 나아갑니다. 이곳은 제사장들이 제물을 삶고 처리하는 방입니다. 19절-20절을 읽고
에스겔이 인도함을 받은 곳은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부엌입니다. 여기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려졌던 희생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종요한 사실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에 대해서는 아무렇게나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특별히 지정하신 장소에서, 즉 반드시 '거룩한 방'에서 특별히 요리되고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자만이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졌던 제물이 모두 하나님의 소유로서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소유된 것은 모두가 거룩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우리 역시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로서 분명한 인식과 함께 삶 속에서 경건함과 거룩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21-24절까지는 앞선 제사장들의 부엌(제물 처리장)이 아니라 성전 바깥 뜰 네 구석에 있는 방입니다. 이곳은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제물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예비된 방입니다.
이렇게 성전 바깥 뜰에 있는 부엌에서 백성의 제물을 먹었던 레위인들은 항상 제사장들을 도와 성전 봉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제사장들에게 조력자로 사역을 했지만 그들의 헌신과 봉사가 결코 가치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레위인들의 조력이 없었다면 제사장들은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봉사의 가치를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한 공간을 배려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로 봉사하는 성도들이 떠오릅니다. 때로는 이름도 없이 묵묵히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는 성도들이 잇습니다. 우리동신교회는 그런 이름없이 묵묵히 섬겨나가는 많은 봉사자들에 의해서 세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때로는 잘 드러나는 그런 봉사를 좋아하고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좋은 봉사와 하찮은 봉사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모든 섬김, 모든 봉사는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는 어떤 봉사라 할지라도 하찮고 시시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섬김은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보기에 하찮은 일을 하는 성전에서 수종드는 레위인들을 세밀히 배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한가지 예화를 말씀드리고 말씀을 맺습니다.
중세시대 때 당대 철학자요 신학자인 아퀴나스가 교황과 함께 대성당에 있을 때입니다. 마침 각지로부터 헌금한 금은 보화를 잔득 실은 수레들이 도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교황이 아퀴나스에게 말합니다. "보시오. 아퀴나스! 그 옛날 베드로 사도께서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했지만 이제 교회가 "은과 금 조차도 가지게 되었지 않소?"
그 때 아퀴나스가 말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잊어 버렸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예전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이런 풍요로운에 비하여 죄악된 세상을 향해서 더욱 무기력해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가난해도 그 가운데 예수, 그 이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핍박을 당해도 그 속에 은혜의 삶, 능력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날 그 때 보다 외형적으로 더 부요하고 풍요롭게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더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세속적인 권력과 힘이 있는 왕의 기업에 대한 규정부터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서 조그만 일을 섬기는 수종드는 레위인들을 위해 예비된 방에 대한 말씀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재물이 더 해 갈수록, 힘이 더해 갈수록, 지위가 높아질수록 오히려 그것이 교만하고 타락하는 기회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주님 앞에 겸손해질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재물과 힘과 지위를 주시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섬김은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기억하고 청지기 된 자로써 부요함이 욕망의 기회가 아니라 섬김의 기회가 되어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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