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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두면? [제574호]
   조회수 855
2020-06-16 14:54:57


 



쾌락의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두면?


해로운 쾌락을 잃고 어차피 재앙에 불과했던 복이 끝나서 괴로워하는 사람보다는 악한 행실을 즐기는 사람이 더 가련하다. - 아우구스티누스


모든 우상 숭배자에게 결국 남는 것은 뱃속이 뒤틀리는 지독한 뒷맛이다. 행복을 약속하는 우상을 숭배하면 그런 결과를 당한다. 성경에 나오는 여러 우상 숭배의 문화에서 복음을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우상을 수거하여 없앤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우리가 종종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우상숭배다. 우리 문화에 우상들이 어떻게 출현하는지 알려면 우리 자신도 훈련을 받고 또 미래 세대들을 훈련시켜야 한다. 음식, 옷차림, 명예, 비디오 게임, 스포츠, 섹스 등 그것들 자체는 대개 악하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그런 우상을 식별하여 타파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면서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를 누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을 시야에서 놓치면 우상에게 이끌린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저녁노을 앞에 서 있는 눈먼 사람들과 같다. 하지만 완전한 맹인은 아니다. 로마서 1장 19~10절 말씀대로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 세상을 어떤 우연한 세력이나 심지어 별이나 외계인이나 가공의 신들이 창조했다고 우긴다. 우리 문화는 하나님이 없다면 그 자리를 보충하려고 제멋대로 경외할 대상들을 양산한다. 한때 하나님께만 쓰이던 ‘경외심을 자아내다’(awesome)는 이제 ‘환상적이다’는 뜻으로 신곡 다운로드나 맛있는 피자에도 쓰인다.

팀 켈러는 말했다. “죄란 단지 나쁜 짓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죄란 좋은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둔갑시키는 일이다. 삶의 의미의 기초를 하나님보다 다른 것,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그 위에 두면 그것이 바로 죄다. 삶의 기초를 어디에 두든지 그것이 우리를 몰아가며 속박하게 되어 있다. 죄란 무엇보다도 우상 숭배다.”

안락.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안락을 앞세우면 그 쾌락이 우상으로 변한다. 

음식과 음료. 음식이 몸에 활력과 즐거움을 주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이 삶의 중심이 되면 우상으로 변해 사람의 행복을 앗아갈 수 있다. 강박적 과식, 폭식, 거식증 등이 좋은 예다. 요즘은 식탐의 죄가 거의 거론되지 않지만 바울은 ‘그들의 신은 배’(빌 3:19)인 사람들을 책망했다.

섹스. 하나님이 의도하신 섹스 곧 남녀 부부간의 섹스는 마음껏 누려야 할 쾌락이다. 그러나 혼외 섹스는 정서적, 신체적, 영적으로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 섹스와 포르노에 중독되면 그것이 약속하는 것처럼 장기적 쾌락을 얻기는커녕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 존엄성을 잃고 노예가 된다. 사탄은 우리에게 혼외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믿기를 바라겠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재물.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할 사람들은 많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그 이론을 시험해보기 원한다!


세상 최고의 부자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행복은 갖지 못했다. 솔로몬 왕의 인생은 아름다움, 교육, 생산적인 일, 미술, 음악, 여자, 최고급 음식과 포도주, 오락, 성공, 권력, 재물 등 모든 최상의 것으로 가득했다. 모든 것을 얻은 후에 그가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역사상 가장 부러움을 살 만한 자신의 인생을 그는 이렇게 요약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잘못된 하나님관(觀)을 품는 것도 우상 숭배다. 우리는 무엇이든 궁극적으로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믿는 것을 숭배한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을 예배하면서도 그분에 대해 사실이 아닌 내용을 믿을 수 있다. 잘못된 대상을 예배하여 ‘하나님’마저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을 전부 다 곧 우리의 작고 유한한 머리로 이해되는 부분만 아니라 그렇지 못한 부분까지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분에 대한 생각이 우상 숭배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을 하나님 안에서 찾지 않으면 행복도 우상이 된다. 행복이 우상이 될 수 있다. 행복 그 자체를 추구할 때, 그것도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면서 추구하는 행복은 곧 우상이다. 하나님 안의 행복은 결코 우상이 아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그 기초를 그분께 그리고 예수님의 복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도 부차적인 것들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은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헌신된 사람은 모든 작은 기쁨 속에서 그분을 본다.


행복을 말하는 모든 세속적 스승과 서적과 세미나는 미래의 희망이라는 부분에서 치명적 결손을 보인다.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영생을 받아들이지 않아 새 땅에서 부활하지 못할 사람들은 몸과 마음의 영원한 젊음을 누릴 소망이 없다. 장차 우리는 부활한 땅의 변화된 문화 속에서 몸을 지닌 존재로서 앞서 말한 행복의 목록 중 대다수를 끝없이 누리며 살 수 있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다시는 우리를 우상 숭배 쪽으로 유혹할 수 없다.


위의 글은 랜디 알콘의 '행복'(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0-06-16 쾌락의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두면.hwp (1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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