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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 [제586호]
   조회수 496
2020-09-07 21:48:02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

헤아릴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고난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직접 겪는 것이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것이든 간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대화가 이루어지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고난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과의 대화는 그만큼 더 격렬해진다.

먼저 우리가 제기하는 질문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혼란의 정도를 반영해준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왜? 어디? 언제까지? 인지를 묻는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까?’ ‘이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그리고 지금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거나 무슨 일을 하실 때까지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고난이라는 가파른 절벽은 생소하고 모호한 곳이다. 최선을 다해 기어오르지만 그곳을 아주 잘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발걸음이 점점 안정된다. 여기저기서 발판을 찾게 된다. 쉬며 익숙해질 수 있는 야영지에도 때때로 이르게 된다. 그리고 안정을 찾게 되면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은 매우 달라지게 된다. 그 질문들을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질문을 던지고 우리의 실망을 표현하고 불평할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또 하나님의 질문들과 실망들과 불평들을 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기도는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 될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은 우리의 질문이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늘 기도하고 낙심치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비유에는 재판관을 자주 찾아와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는 과부가 나온다. 그녀의 끈질긴 요청에 지친 재판관은 마침내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이 비유를 마치신 후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이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6~8)라고 말씀하셨다.

공평은 신속하게 약속되었다. 그러나 이 비유에 나오는 여인의 경우처럼 우리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신속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부분적으로 그 문제는 하나님이 시간을 보시는 관점과 우리가 시간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데 있다. 우리에게는 천 년이 하나님께는 하루에 불과하다면(90:4)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가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지연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움을 방해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자신의 문제들 외에 생각해보아야 할 다른 요인들도 있다는 데 있다.

비유에 나오는 여인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시간표가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다. 중요한 질문들은 우리가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던지시는 질문들이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18:8).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공평함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을 하신다면 이 질문을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우리에게 해야 할 질문이 있다면 바로 그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과 함께 다음 질문들을 추가해야 한다.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순종은?

결국 이런 것들이 중요한 질문들이다. 하나님께 해명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우리의 책임을 묻는 질문들이 중요한 질문들이다.

공의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의 책임이다. 그리스도가 버림을 받으셨던 날 밤보다 그 사실을 더 잘 보여주는 예는 없다. 그리스도의 영혼에 깊은 어둠이 내린 그날 밤 그리스도는 허락되지 않은 자비를 구하셨고, 자신에게 합당치 않은 고난을 받으셨으며, 대답되지 않는 질문들을 하셨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와 권리와 목숨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기신 본보기를 통해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적용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1~23).

공평한 심판은 하나님의 책임이다. 신실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위의 글은 켄 가이어, 『하나님의 침묵』(도서출판 디모데)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0-09-08_지금 우리가 해야 할 질문.docx (15.7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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