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고난과 신뢰 [제587호]
   조회수 370
2020-09-14 23:06:40


 


고난과 신뢰


바울은 그의 신뢰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가 받은 고난을 자주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기 위해 고린도후서에서 여러 차례 이것을 언급했다. 그에 대한 좋은 예가 64~10절이다.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4). 그리고 그는 그가 자천할 수 있는 이유를 열거한다. 바울의 긴 목록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처음에는 가가 받은 고난의 열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4~5). 그 다음에 그는 그의 성결함에 대한 아홉 가지 요소들을 제시한다.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6~7). 마지막으로 고난의 또 다른 아홉 가지 요소를 말한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8~10).

이렇게 바울은 열아홉 가지 고난과, 아홉 가지 성결의 요소를 나열함으로써 그의 신뢰성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끄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두 가지 중요한 방법이 바로 이 성결과 고난이다.

바울은 그의 메시지와 지위를 거부한 몇몇 거짓 선생들로 인해 빗나가고 있는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6:17). 노예의 표식이 그 노예의 소유자를 나타내듯, 바울이 매를 맞아 생긴 상흔은 그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종임을 증거했다.

복음주의자들조차도 권위적이고 유익하지 못한 방식으로 말하던 근본주의 선조들의 훈계를 떠올리면 당황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모으는 방법으로 재미열정을 대체한 것 같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열정을 진정성이 바탕이 되지 않은 일종의 예술 형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지도 않으며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기는 커녕, 설교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유능한 설교가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위치를 차지하도록 허용했다. 사이비들이 열정을 가장했다. 아돌프 히틀러는 열정적인 연설로 나라 전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 당연히 오늘날의 사람들은 열정을 의심한다. 어떤 이들은 열정을 중고차 판매인들이 유용하게 사용하는 판매 수단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불타는 열정은 성경에 나오는 설교의 특징이다(20:9, 5:35, 고전 9:16). 어떻게 그런 열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교회에 훈계를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

성령을 통해 말씀의 진리에 대한 열정이 불타올라, 그 진리에 헌신하기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하는 설교가들을 세우는 것이다. 영어의 열정(Passion)’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고난이라는 뜻의 ‘passio’에서 유래한 말이다.

냉소주의가 교회 안에 퍼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위에 걸맞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헌신이 천국의 요구 사항이 아니라 개인의 요구 사항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의 이기심을 보았다. 그들은 지도자들이 교회에서의 지위를 이용해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설교와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설교가들을 보았다. 그들은 선교에 헌신하라고 요구한 다음 헌신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혹사시키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교회에 암흑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진리를 선포하는 지도자들이 그 진리대로 살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거부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교회 안에 다시 진리를 건전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회복시킬 수 있을까?

성령의 역사 속에서 지혜롭게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또한 지도자들이 신실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꺼이 진리를 위해서 안락과 편리, 심지어 명성까지도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진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고난 받을 때에도 주님으로 인한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통해 그들이 전파하는 복음의 위대성을 증명하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고난이 더 이상 우리의 기쁨을 빼앗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위해서라고 믿고 있는 것 때문에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위의 글은 아지스 페르난도, 고난과 기쁨, 그 역설의 믿음(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0-09-15_고난과 신뢰.docx (16.1K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