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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바로 알기 [제 615호]
   조회수 573
2021-04-13 11:45:22


 

 

진 게츠 목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확장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물질을 사용해야 할 중요성을 교회가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다.”라고 말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든 교회가 다 돈, ! 돈만 얘기한다.”고 생각한다. 불신자들은 모든 설교자가 돈을 강조하고, 종교적인 광신자이며, 모든 예배를 마치 돈을 거둬들이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람들에게 돈을 강요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보편적으로 잘못된 이러한 인식에 대한 교회와 지도자의 책임도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금에 관한 성경적인 가르침과 지속적인 드림은 계속되어야 한다.

 

헌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다

그리스도인이 헌금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하신 주님의 일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태도에 힘입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헌금을 부탁 할 수 있었다. 바울 사도에게는 그들에게 헌금을 하도록 명령할 권리가 있었음에도 그는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다.

마게도냐에 있던 어느 교회들은 고린도의 교인들보다 훨씬 더 가난했지만 그들의 능력 이상을 이미 바쳤다(고후 8:14). 고린도후서 8:89에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마게도냐 교인들의 헌신과 이로 인해 주님께서 저들에게 하신 일을 비교하며 바치는 것을 통해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 사도는 헌금에 관해 조금 더 가르치고 있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이 말씀에 관해 더 할말이 있지만 한 가지만 지적한다면 헌금은 반드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진정한 사랑은 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연장이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헌금을 바치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헌금은 대사명을 가능하게 한다.

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신 유일한 단체이다. 마태복음 16:18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내 교회라고 부르셨을 때는 주님께서 소유하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는 교회 전체가 주님께 속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에 있는 각각의 교회 역시 주님께 속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다니는 교회에 헌금을 하면 주님께서 소유하시고 주님께서 지으신 교회에 바치게 되는 것이다. 다른 말로 옮기면 우리가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짓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은 지상 대 위임을 주셨다 (28:1920). 우리를 대신하여 땅끝까지 기꺼이 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헌금은 다른 지역으로 가서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을 파송할 수도 있고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사용된다. 가족, 친구, 친척 들과의 유복한 생활을 등지고 떠나 많은 희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후원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 헌금을 함으로써 그들이 당하는 어려움들을 훨씬 가볍게 해 주는 교회의 사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헌금은 예배의 한 형태이다

리처드 B. 커닝햄은 헌금은 예배의 두드러진 한 형태이다. 이는 매주 예배시에 감사와 자기 헌신의 중심점이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바울 사도의 사역을 위해 빌립보 교회가 헌금을 모금했을 때 바울은 저들의 헌금을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4:18)고 표현했다. 사실상 바울은 저들에게 너희들의 교회를 통해 내게 준 것은 구약 시대에 번제단 위에 제사에 쓸 양을 바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같은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와 마찬가지로 헌금으로 예배를 드릴 때에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바울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비록 헌금이 교회 사역에 드는 여러 가지 비용을 지불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께 나의 헌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헌금통에 돈을 넣는 행동이 더 중요하다. 사실 헌금함(혹은 헌금 자루, 헌금 접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선물을 저장하는 그릇이라는 의미이며, 하나님께 바치는 이 행동은 예배인 것이다. 우리가 한 지체로 속해 있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바치는 이 행동이 바로 예배이다.

 

헌금은 교제의 한 형태이다

교회에 헌금을 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교제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서로 베푸는 것은 바로 삶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4:32). 이 말씀에서 통용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교제라는 코이노니아와 어근이 같은 단어이다. 똑같은 단어는 아니지만 이 단어(코이논)는 코이노니아란 단어보다 재정적인 의미가 강조된 것으로, 기금을 서로 합치거나 공동 구좌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

교회에 헌금할 때에 서로서로에게 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공통의 명분을 위해 다 함께 드릴 때에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된다. 우리가 교회에 바침으로써 주님 나라의 일에 함께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헌금을 통해 전도 활동, 선교 활동, 성도들을 세워 주는 일, 노숙자 급식,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돕는 일 같은 사역에 어깨를 맞대어 힘을 낼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이 바로 교회라는 몸 안에서의 상호 책임이다. 교회에 헌금하기 싫어하면서 어떻게 교회의 한 지체이길 원할 수 있겠는가?

 

헌금은 자신의 삶이 변화된 것과 남을 염려한다는 표시이다

사도행전 4:3437에서는 다른 사람 중심의 모습과 변화된 삶의 놀라운 간증을 엿볼 수 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이 소유들을 팔아 그 돈을 교회로 가지고 가서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도록 했다. 이 같은 선한 행동을 함으로써 저들의 삶이 이제는 변했고 다른 사람들을 염려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더 이상의 예전의 사람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의미로 이들은 교회에 헌금했다.

 

헌금은 우리를 후원하는 사역을 도리어 후원하게 된다

목회자가 사례를 받는 것이 옳은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의 목회자들이 옛날 바울이 그러했듯이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최대한 스스로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고 그러고 나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설교도 하고 다른 목회 활동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에 대한 재정적인 보조는 성경적인 것이다. 고린도전서 9:614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14절에서는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10:10 참조).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6:6).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딤전 5:17). ‘존경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원어는 사례란 뜻을 담고 있다. 이 두 구절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요약해서 강조하자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교회에서 사역만 하는 목회자들은 교회 공동체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내 돈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우리가 벌고 쓰고 모으는 것이 누구의 것인가? 하나님의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가 내 것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편 24:1). 하나님의 교회에 헌금하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가 나를 포함해서 돈과 내가 당분간 소유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의 실소유주이심을 상기시키는 행동이기도 하다.

 

자신을 먼저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이상 교회에 바치는 헌금은 영원히 아무런 혜택을 줄 수 없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8:5에서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을 칭찬하고 있다. 그들의 헌금에 관해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단지 어떠한 책임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드리지는 않았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헌금도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한 번에 드린 헌금이나 한평생 바친 헌금을 다 모은다 하더라도 천국 가는 표를 살 수는 없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신(권리, 시간, 좋아하는 것, 선택, 그 외 모든 것)을 헌금과 함께 헌금함에 넣어야 한다.

 

자신을 주님께 바쳤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 이미 바친 사람처럼 헌금을 바쳤는가?

 

 

[위의 글은 도널드 휘트니A+ 크리스천은 이렇게 믿는다(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 수정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1-04-13_헌금 바로 알기.hwp (1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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