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설교를 위한 설교자의 배려
바울은 복음을 증거 함에 있어서 많은 이방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묘사했다(행 17:22-23, 24-28). 그가 즐겨 표현한 대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말이다. 그는 나름대로 문화에 적응하며 상황화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여 지는데, 아마도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과, 동시에 복음이 배제된 그 시대의 문화에 당당하게 맞서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1세기 때보다 시대 문화와 가치가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어떻게 복음을 더욱 선명하면서도 강력하게 증거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회색지대가 넓어지고, 복음의 메시지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 좀 더 선명하게 들려지도록 지혜를 구함은 물론 끊임없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떠한 노력이 더 필요할까?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가 남긴 복음에 대해 무관심한 이들을 향한 설교자의 배려라는 측면과 사람들의 귀에 메시지가 더 들려지도록 하기 위한 전달의 과정을 위해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첫 번째, 이해하기 쉬운 단어와 어휘 사용하기 그리스도인이나 교회 내부에서만 사용될 수 있는 익숙한 단어에 사로잡혀 있으면 안 된다. 신앙적으로 열심이 특심?인 사람만이 알고 있는 단어, 즉 기독교 안에서만 들려지는 특유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단어를 삼가해야한다. 중요한 단어나 표현일수록 반복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의를 소개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신학적 정의나 논지를 설명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청중이 자신들의 언어로 들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을 따로 구별하며 비 그리스도인을 표현할 때 그리스도인을 우월하게 표현하거나, 비 그리스도인을 비하하는 표현과 어휘는 삼가해야한다. 두 번째,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에 도움 받기 최고의 권위인 성경의 가르침을 강화하기 위해 성경의 가르침에 압도당함으로 변화된 사람의 고백을 인용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해주는 예화나 인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설교의 주제와 관련되어 그 주제와 분야에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활용하는 것은 청중들로 하여금 설교자와 그의 설교에 관심을 갖게 하고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말씀 그 자체이셨던 예수님도 당신의 말씀의 권위와 논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모세와 선지자의 글, 시편 기자들의 글인 구약을 인용하셨고, 그 시대가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적 통념을 반영한 가르침과 이론들을 적절히 이용하셨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권위 있는 사람들의 말의 인용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친 반복이나 나열은 도리어 전하는 메시지를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 번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저항과 반대를 이해하기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감 없이 기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다. 내면에 의구심과 반대의 의견이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믿어지고 그것을 신뢰하며 붙잡고 사는 삶이 되었다. 메시지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의구심과 반대의 의견에 따른 갈등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경험이 있었고, 또한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기에 세상의 세속성과 비 신앙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겸손이 빠진 우월감이나 공감이 생략된 무조건적인 공격은 도리어 청중들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게 만든다.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기에 주저하는 사람들이다. 설교하는 당신이 도리어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 그들의 의심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네 번째, 인간의 분명한 한계를 직시하도록 하기 복음은 단순하다. 그러나 복음의 적용은 매우 다양하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과 관계와 공간과 조직이 많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은 단순하지만 강력하기에 인생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공통점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많은 시행착오와 한계를 경험한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란 파랑새가 저 멀리 날아가거나, 뜻하지 않게 찾아온 고통 앞에서 주저앉아 울기도 한다.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결코 자신의 직관과 계획, 경험과 노력만으로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이나 성공을 쟁취할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때로는 이 일을 위해 아픈 곳을 더 아프게 할 수 있고, 그들의 혼란을 더 가중 시켜야 할 때도 있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