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일본 구마모토의 지진에 이어 다음날에는 에콰도르의 지진으로 수백 명이 죽고 수 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지진들을 보면 많은 경우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에서 발생해왔기에 우리나라도 더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대되며 지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은 지진의 공포에 휩싸이곤 했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금융 거래의 중심지였으며 의학(안약)이 번성하였고, 섬유 산업이 활발했으며, 물품의 자급 자족률이 높았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교회의 터라 여겨지는 흔적과 원형경기장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제우스 숭배로 유명한 이 도시는 주후 60년경 심각한 지진 피해를 보았지만, 제국의 재난 구조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이로 인해 ‘라오디게아 주의’ 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나는 부자라 부요 하여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는 의미로 통하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는 환난과 궁핍함에도 영적으로 부유하며 신실했던 2개의 교회와, 성적 타락, 우상숭배, 타협, 죄에 대한 관용, 외식, 거짓 가르침(거짓 교사와 예언)을 받아들이며 세속화된 5개의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책망받았던 5개의 교회는 조직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어있었고, 겉모양도 성도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 같았지만 실체는 그렇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속화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교회 최대의 적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니라 ‘세속화’라 말했다. 또한, 교회가 이렇게 세속화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교회가 새로운 신자를 환영해야지 불신자들을 환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진리와 믿음의 원리가 아니라 세속에 물든 교회가 되었고, 이 땅에서의 자랑을 추구하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육신과 안목의 정욕이 가득한 공동체가 되었고, 예수님이 교회 안에 계시지 못하고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지급하더라도 우리의 교회는 순결한 신부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를 위해 라오디게아를 향한 주님의 책망에 귀를 기울여야 하여, 그것은 우리 자신을 살피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무엇인가?
정체를 밝히라
라오디게아교회는 뜨거운 물도, 차가운 물도 아니었다. 행위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않다.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 그래서 주님은 “미지근하여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셨다.
라오디게아 지역의 9km 북쪽에 위치한 히에라폴리스는 뜨거운 광천수가 나오는 곳이다. 그 광천수, 온천수를 통해 질병 특히 류마티스와 같은 것을 치료하기도 했다. 동남쪽으로 18km 지점에는 골로새가 있었는데 그 지역의 물은 맑고 신선하고 차가워서 식수로는 최고였다. 그러나 이 두 도시 사이에 놓인 라오디게아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물이었다. 미지근한 물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에서도 물을 마시다가 미지근하면 바로 토해버리곤 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하면 ‘냉담하다, 이도 저도 아니다, 미지근함’을 나타내는 어구가 되었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나 주님과 관계없는 모습의 성도나 공동체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영적인 냉담으로부터 벗어나라
영적 냉담은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이어진다.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를 주인 삼고 자기를 과시한다. 그러며 우쭐거린다. “나는 부자다! 이만하면 훌륭하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를 부자로 여기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상태였다. 자신들만 모르고 있었지 주님은 그들의 실상을 다 알고 계셨다.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거드름을 피울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주님은 이들의 벌거벗음을 다 알고 계셨다.
영적 통찰력이 있고 자기 상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의 문제가 진짜 무엇인지 모르는 영적으로 오만한 상태,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복을 모르는 영적으로 가난 상태. 이 모든 것은 그들의 주님을 향한 냉담한 태도로부터 기인한다.
우리의 정체는 분명한가? 우리는 영적으로 냉담한 상태는 아닌가? 주님과 관계된 삶과 사역을 감당하고 있지만 혹시 주님은 문밖에 계신 것은 아닌가? 스스로 잘하고 있고 부족한 것 없는 듯 만족하고 있지만 실상은 가난하고 눈이 먼 상태는 아닌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냉정하고 진지하게 진단함으로써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벗어나며, 세속의 거대한 압력 으로인해 환난과 궁핍이 몰려와도 영적으로 부유하여 신실한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