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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청지기[제510호]
   조회수 268
2019-09-18 14:13:01

등록일 : 2019/03/12 14:05

 


겸손한 청지기

하나님의 충성된 청지기가 부딪히는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자신의 헌신과 성취에 대한 교만이다. 자신에 대하여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자신을 드려 하나님을 섬기라고 명하면서 로마서 12:3에 바로 그 유혹을 물리치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자화자찬은 오직 하나님만 치유하실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타락한 본성에 아주 당연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간의 교만을 고치는 하나님의 치료책은 우리가 회심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순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의 거짓되고 교만한 자아상의 깊은 뿌리는 우리가 부활하여 영화롭게 될 때에만 이 몸에서 완전히 뿌리 뽑힐 것이다. 그때까지 교만은 우리가 매순간 싸우며 살아야 할 대상이다. 그것만이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시각이라고 바울은 로마서 12:3에서 말한다.
누가복음 17장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늘 자신을 “무익한 종”, “겸손한 청지기”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림을 보여 준다. 누가복음 17:10을 통해 우리의 삶에 주는 함축된 의미를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선행으로 하나님에게 공로를 쌓을 수 없다.
천주교는 일부 사람들이 청빈과 독신의 서원을 하고 독실한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여분의 선행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공로를 벌 수 있고, 그 공로는 하나님에게 본분을 다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천주교에서는 그것을 ‘공덕의 행위’라고 한다. 그러나 누가복음 17:10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요구 이상의 행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 무익한 종이다. 이익이란 종이 자기에게 요구되는 수준을 넘어설 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레온 모리스(Leon Morris)는 자신의 주석에서 “우리는 아무리 잘 섬겨도 하나님에게 조금도 내세울 수 없다”라고 했다. 
더욱이 우리는 회심한 후에도 모두 계속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받아 주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공로가 무한한 행위인 그리스도의 죄 없는 삶과 대속의 죽음이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의 섬김에는 교만의 여지가 없다. 
누가복음 17:10에 함축된 두 번째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섬김에는 교만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만족에 빠져 스스로 흡족해하다가 한 나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끊어짐을 당했다(마 21:43). 그러나 우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똑같은 화가 닥칠 수 있다고 바울은 말한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20b~21).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도 안일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전 9:27).
하나님을 위한 우리의 섬김이 지금껏 아무리 성공적이었더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이루는 모든 일은 오직 그분의 은혜와 능력 주심으로만 가능하다. 우리에게 그분의 일을 할 수 있는 자원과 기술과 힘을 주시고 그에 뒤따르는 성공까지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일꾼으로 고용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을 섬긴 햇수가 아주 오래되었더라도 아침마다 일어나서 “명령 받은 것을 다”(눅 17:10) 행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의 종의 사전에 자기만족이나 안일은 없다. 

3. 우리는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진심으로 느껴야 한다.
누가복음 17:10에 함축된 세 번째 함축된 의미는 자신의 섬김이 하나님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렇게 느낀다면 그 느낌은 좋은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자존감 높이기에 경도된 사회에서는 특히 더하다. 훌륭한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변변찮은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변변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칭찬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우리는 칭찬이나 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와 갈보리의 모본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결코 자신의 직무를 다하지 못했다. 돈, 에너지, 시간, 달란트, 손대접, 전도 부분에서 우리가 아무리 많이 드렸다고 해도 하나님은 마땅히 그보다 더 좋은 섬김을 더 많이 받으셔야 할 분이다. 우리 자신이 피조물로서 변변찮은 존재이며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서 무가치한 존재임을 늘 의식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임을 진심으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 안에 행하시는 일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겸손은 나약함, 자신감 부족, 초라한 자존감 따위의 표시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자신과 자신의 성취에 대해 자만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삶과 재능과 성공이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 덕분이라는 것을 고의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도를 닮은 겸손은 그분이 자신의 종들에게서 간절히 보기 원하시는 의복이자 장신구이다. 이것이 우리가 겸손한 청지기로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의 글은 브라이언 러셀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라』 (도서출판 디모데) 에서 발췌하여 부분 수정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9.03.12)_겸손한_청지기.docx (15.9KB)510.jpg (753.3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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