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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 저주 [제543호]
   조회수 797
2019-10-29 13:43:22



 


비교의 저주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일에서 세계 일류가 되기를 바라시지 않는다. 모든 일을 다 잘 하기를 원하시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각 사람에게 고유의 소명을 주셨고 그 소명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은사를 주심으로써 각 자에게 맡겨진 그 일을 잘 감당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 온갖 능력과 기술에 능숙해져야 할 필요가 없다. 프로 골프 선수가 축구 운동장에서 골이 잘 안 들어간다고 그것만 집중적으로 연습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직간접적으로 아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훈련과 사례를 모두 따라하는 것은 골프 선수의 그런 모습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특정한 영적 훈련이나 자질, 특성 면에서 최우수 사례로 꼽히는 많은 사람이 그런 것을 갖추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소명을 감당하는 데 그런 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흠모하는 한 사람의 많은 강점이 대부분 다른 사람의 다른 강점과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쉽다. 신앙의 영웅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들은 우리 각자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흠모하는 영웅이 너무 많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영웅 한 사람 한 사람을 동시에 본받으려고 하면 더욱 그렇다.

새 신자 시절 나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기도 생활과 초기 교부들의 지성 그리고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 복음을 선포하는 솜씨에 매혹되었다. 마르틴 루터가 유난히 바쁜 날에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평소보다 더 많이 기도했다는 말을 들으면 여유 있는 날에도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좋아하는 성경 학자가 그의 연구 습관이나 과거의 위대한 신학자들을 소개하는 말을 듣게 되면 또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 길로 달려나가 목직한 책을 몇 권 구입하고 빠듯한 공부 계획을 새로 짰다. 그러다 빌리 그레이엄의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마음과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대한 내 미미한 노력을 비교하면 나 자신이 냉담한 실패자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하루에 최소한 한 명의 불신자에게 예수님을 전하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 영역에서 어느 정도 진전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 마더 테레사가 내게 찾아왔다!

어느 시점에 이르러 이러한 시도를 그만두었다. 그 동안 다른 사람들의 존경스러운 강점과 특성을 열심히 흉내냈던 이유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때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소명이 바로 내 소명이라고 생각한 친구들과 멘토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이것을 깨닫자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나만의 열정과 재능에 마음껏 집중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대부분에게 몇 가지에 대한 열정과 은사만 주셨다. 그 열정을 따라가고 그 재능을 단련하면 결국 우리의 창조 목적을 정확히 감당하게 된다. 하나님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최고의 특성을 모두 갖추려고 애쓰는 우리의 영적 여정이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성경은 ‘우수 사례 과부하’라고 칭할 수 있는 이 덫의 위험을 경고한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며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고린도전서 12:14~18)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은사와 소명을 하찮게 여기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한 적이 한 번씩은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자신의 삶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창조적인 역사에 대한 미묘한 반역에다 비교의 저주가 더해진 것이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잘 하는 영적 생활의 영역이 있을 것이고 다소 평범한 영역이 있을 것이며 뒤에서 간신히 따라가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뛰어난 영역이 있다는 사실이 교만과 오만함에 빠질 구실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약한 영역도 결코 영적 열등감, 죄책감, 불안감에 사로잡힐 정당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이 당신을 눈(目)으로 만드셨다면 잘 듣지 못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약점은 무시하라. 들을 수 없다고 염려하지 말고 자신의 시력을 강화시켜 나가라.

 

 

※ 위의 글은 래리 오스본의 『일상을 걷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영성』(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9.10.29) 비교의 저주.hwp (15.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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