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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세우는 사람 150호] 나의 것이 아닌 세 가지
   조회수 378
2019-09-10 12:26:20

등록일 : 2011/10/10 14:27





나의 것이 아닌 세 가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20:24 –

위의 구절은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과 마지막 만남의 시간속에서 눈물로 고별설교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씀속에서 바울이 자신의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고 있는 세가지를 말한다.

1.   

바울은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려 함에는….”이라 고백하며 자신의 길에 대하여 말한다. 바울이 자신의 서신서 에서 종종 운동의 예화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여기에서의 길은 육상 선수들의 경주를 두고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 시민이 아니면 아무도 시합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의 경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천국 시민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이러한 경주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길에 대하여, 하나님께 다가가는 길에 대하여 결코 크고 넓은 길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7:14)고 말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할 길에는 언제나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있다. 제대로 경주를 하기 위해서는 날마다의 훈련이 필요하다. 특별히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경주를 가로막는 무거운 것들과 본질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며 경주 그 자체를 이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죄들을 물리치는 훈련 말이다. 이러한 훈련들은 결코 넓은 길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화려한 길은 무거운 것과 죄의 짐에 대한 자각을 무디게 만들며 종착점에 대한 소망을 잊게 만든다. 좁은 길은 그 길을 걸어가는 여정의 험난함이 자신을 훈련시켜주며 목적지에 대한 소망을 타오르게 만든다. 바울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보라.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딤후 4:7~8a). 좁은 길을 걷는 바울의 삶은 결승점에서의 귀한 상급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넓은 길을 갈 수 있었던 그는 자신을 만나주시고 구원하신 그 은혜 때문에 기꺼이 좁은길, 고난의 길을 걷는다. 지금 당신은 좁은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넓은 길을 걷고 있는가?

2.    사명

바울은 자신의 사명에 대하여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 말한다. 곧 예수께서 지정해 주신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다메섹에서 자신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그 분께 받은 인생의 과업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의 본질적 변화는 그의 인생에 본질과 사명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부여된 특명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것은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자격 없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 자격없는 자신에게 아무 대가없이 주어진 구원이 자기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하여 흘러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이러한 사명은 모든 구원받은 자에게 특권이자 책임으로 주어진 고귀한 역할이자 부르심이다.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허울을 벗겨내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형식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명을 이루고, 사명을 위하여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사명에 대하여 혼동하고 있는 듯 하다. 본질적 사명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지나치게 메여있다. 때로는 이 방식을 사명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한 사명을 받은 자이다. 복음으로 인하여 새롭고 복된 삶을 사는 자들이기에, 이 복음을 그 누군가에게 흘려보내며 전하는 삶이어야 한다. 당신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삶을 살고 있는가?

3.    생명

바울은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이것을 배웠을까? 바울은 이 진리를 주 예수께 배웠을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9:23~24). 생명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하나님은 당신을 아셨고 당신의 삶에 뜻을 두셨다. 바울은 생명을 향한 이러한 의미를 혼자만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내어 드렸다.

생명을 움켜쥐면 잃고 베풀면 영원한 것이 된다. 이것이 영적인 삶의 원리이다. 내 생명을 아끼고 내 이익을 챙기고 내 욕망을 채우면 절대 삶다운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이기적인 사람들은 항상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의 기회는 딱 한번 뿐이다. 삶이 끝나면 더 이상 그리스도께 귀한 것으로 그 삶을 드릴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 146:4).

생명있는 동안에 생명의 주관자를 위해 생명을 내어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셨고, 그 생명력이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분을 향하여 생명을 내어드리는 것이 참 생명을 누리는 것이된다. 당신은 지금 주어진 생명의 에너지를 무엇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첨부파일150.jpg (689.3KB)2011_10_10_나의_것이_아닌_3가지.doc (33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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