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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청지기[제489호]
   조회수 344
2019-09-18 12:24:43

등록일 : 2018/09/04 13:55

 

몸의 청지기
 
  청지기직은 우리 모두가 배우고 자라가야 할 기독교 제자도의 핵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게을러지기가 아주 쉽다. 주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부르심을 더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더 깊이 헌신하는 것이 주님의 열망이다. 출발점은 당연히 우리 자신, 곧 우리의 몸과 사고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로마서 12:1)
 
  하나님은 인간을 몸과 영의 존재로 지으셨다. 몸 없이 우리 영혼은 절대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없다. 우리의 몸과 그 지체는 창조와 구속이라는 이중의 근거로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므로 청지기직이 몸으로, 몸의 모든 부위의 위탁으로 시작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몸을 드림으로써 청지기직을 수행할 수 있는가? 바울의 권면인 로마서 12:1은 세 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첫째, 결단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드리라’는 동사에 암시되어 있다. 그것은 부정 과거 능동태 부정사로 한 번 하면 끝내 철회되지 않을 행동을 뜻한다.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하나님께 드릴 때도 그 단어가 쓰였고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자기 앞에 흠 없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바치신다고 한 말씀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전폭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회심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다메섹으로 가던 길의 사도 바울도 그랬다. 바울은 부활의 영광으로 자신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에 자신의 삶을 바쳤다. 철회될 수 없는 결단이었다. 단호했다. 조건이나 단서가 없었다. 그의 헌신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이었다.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둘째, 평생의 헌신으로 해야 한다.
  바울은 구약의 죽은 피 제사와 신약의 산제사를 대비시킨다. 죽은 제사는 한순간의 제사이다. 한 번 드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시 드릴 수 없다. 얼마 후에 다시 다른 제사를 드려야 한다.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의 제사와 섬김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신약에 오면 하나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제사와 섬김은 다르다. 그것은 평생 계속되는 제사이다.
  그리스도인의 헌신과 섬김은 단지 교회에 가느라고 일주일에 하루를 희생하거나 사순절 기간 중에 호사스런 삶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삶은 끊임없는 제사의 삶이다. 하루나 일주일이나 1년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문제이며 헌신이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이어야 한다.
  구약 시대에 제사를 드리려면 먼저 짐승을 제사장에게 가져와 흠이 있는지 조사해야 했다. 제사장이 살펴야 하는 흠은 스무 가지였다. 동물에 흠이 없다는 확신이 서면 그제야 비로소 제사장은 그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도록 허용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반드시 흠이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에 죄가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우리 중에 누구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영영 쓰임을 받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드릴 몸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몸이어야 한다. 우리 삶 속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과 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그리고 날마다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깨끗해져야 한다(요일 1:7, 엡 5:26)
 
  우리가 위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우리 몸을 드려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자비하심(롬 12:1)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진술하는데 이보다 더 감동적인 말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변명의 여지도 없고 자격도 없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이 되셔서 친히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 겸손히 십자가를 지시며 처참한 죽음을 우리 대신 당하셨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을 닮게 하셔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셨던 것이다(롬 8장).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로마서 9:16, NIV)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이 모든 자비하심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우리 몸을 드리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섬김은 우리 자신의 선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미 주도적으로 베푸신 자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어야 한다. 몸을 드림을 결단하자. 평생의 헌신으로 드리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자. 
 
 
- 위의 글은 브라이언 러셀의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라』(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하여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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