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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행복, 우리의 행복 [제473호]
   조회수 468
2019-09-18 12:09:27

등록일 : 2018/05/15 15:49

 

하나님의 행복, 우리의 행복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려면 반드시 행복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며 창조와 구속에 능동적으로 임하신다.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고 결국 불행만 남기지만, 예수님은 풍성하게 흘러넘치는 생명을 통해 우리에게 궁극적 행복을 주신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한히 행복하시다. 유한한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분을 즐거워할 수 있다. 그분의 행복 속에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다.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면(롬 12:2) 행복하신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진다. 우리의 행복은 점점 더 커져간다.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행복이 흘러넘친 결과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선하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하나님은 당신이 지은 모든 것을 보시며 행복해 하셨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행복은 창조의 목적이다. 창조주께서 세상을 지으신 동기는 분명히 그분의 선하심이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신다”라고 썼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그때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니라”(욥 38:4, 7). 창조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아버지인 하나님께 반응했다는 뜻이다. 그분이 창조하신 웅장한 세계 속에 그분 자신의 즐거움이 흘러넘쳤다.

 

모든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행복을 반사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동물들을 보며 행복해하셨다.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욥 39:19, 21~22, 24~25).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말을 마냥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타락한 창조 세계를 여전히 사랑하셔서, 그것을 멸하시기는커녕 자신과 우리가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도록 그것을 구속하려고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이 불행한 구원을 보내실 리가 없다. 행복하신 창조주는 또한 행복하신 구주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람들을 기뻐하여 즐거이 노래하신다.

 

스바냐 3:14에 하나님은 행복을 뜻하는 네 개의 서로 다른 히브리어 단어를 써서 자기 백성에게 기뻐할 것을 명하신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린나, rinnah)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루아흐, ruah)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사마흐, samach) 즐거워할지어다(알라즈, alaz)”

그야말로 즐거움이 철철 넘쳐흐르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시다면 결코 자기 백성에게 이런 행복을 명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런데 세 구절 후인 스바냐 3:17에 보면 더 놀라운 진술이 나온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심하, simchah)을 이기지 못하시며(수스, sus)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길, gil) 기뻐하시리라(린나, rinnah)” 이 구절 하나에만도 하나님의 행복과 자상하심과 사랑이 가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표현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며 행복해하신다.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행복해하신다.

 

예수님이 누가복음 15:6에 보여주신 하나님은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라고 하시는 목자이다. 잃은 양을 찾아서 아주 행복해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또한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분개하는 형을 향하여 말한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행복해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2). 왜 아버지는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을까? 하나님은 자신의 속성에 충실하게 행동하시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시기에 즐거워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행복해하신다.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듯이 하나님은 혼자서만 행복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즐거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시 36:7~8). 이 구절이 가르치는 바에 대하여 1868년에 미국의 신학자 앨버트 반즈(Albert Barnes)는 이렇게 주해했다.

 

1) 하나님은 행복하시다. 2) 신앙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3)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행복과 본질 내지 성격이 같다. 4) 이 행복은 본질상 만족을 준다. 즉, 영혼의 참된 필요를 채워준다. 5) 그것은 풍성하여 영혼의 어떤 필요도 채워지지 않은 채로 두지 않는다. 6) 이 행복은 … 하나님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편 기자가 고백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기뻐할 때 즐거워하신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로라”(시 104:34). 생각해 보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우리는 바다 같은 하나님의 행복을 즐거워하고 그분은 시내 같은 우리의 행복을 즐거워하신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며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의 행복 안에 감추어져 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아하실 만한 것들을 향하여 먹고 마시며 수고하고 낙을 누릴 때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이 만족해하시며 심히 좋아하시는 그분의 행복 속에서 우리 또한 진짜 행복을 경험한다.

첨부파일473.jpg (97.2KB)(2018.05.14)_하나님의_행복_우리의_행복.hwp (1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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