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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해 보는 소명[제488호]
   조회수 330
2019-09-18 12:24:04

등록일 : 2018/08/28 13:56

 



다시 생각해 보는 소명

 
  일반적으로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을 받은 자이다. 내가 선택해서 결정하고 따르는 자가 된 것이 아니라 나의 결정 이전에 초청하신 주님의 부르심이 선행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소명’에 관한 주제에 대하여 탁월한 가르침을 주는 오스 기니스는 ”’소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모든 이가,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것에서’ 삶을 살아가는 문제”라고 말한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네덜란드 태생의 탁월한 신학자이다. 소명에 따라 삶을 산 그는 주후 19세기에 태어나 기독교 지도자로 영향을 끼치며 주후 20세기에는 조국의 수상까지 된 인물이다. 그는 사상가요 개혁가였다. 목회자요 신학자였다. 57년 동안 공직에 머물렀던 카이퍼는 수상으로 4년, 목사로 10년, 하원의원으로 10년, 상원 의원으로 7년, 암스테르담 자유 대학의 교수로 20년, 정당의 의장으로 42년, 일간 및 주간 신문의 편집인으로 47년 등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도 했다. 232권의 책이 그의 저작 목록에 있다.
  카이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시도했다고 말한다. 신경 쇠약 증상으로 힘든 시간을 세 번이나 겪은 것은 당연하다고 비난도 한다. 그가 소명을 말하지만 하나의 옷을 입고 일관되게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직업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의 소명 의식이 불분명하여 지나치게 많은 것을 시도하며 이곳저곳을 쉽게 기웃거린 삶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가 다양한 역할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했던 것은 그의 집념이나 욕심이 아닌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대한 그의 열정적인 비전에서 연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전 피조 세계의 어느 한 영역에 대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는 내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속한 것이다!’라고 외치지 않는 곳은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이퍼는 자기의 소명은 높고, 과업은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며 다양한 역할을 향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카이퍼가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모든 영역의 주님이심을 주장하며 소명에 사로잡힌 자였기에 공적인 삶의 영역에서 믿음을 위협하는 심각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강력한 리더십과 실제적인 본보기를 보여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소명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인간의 삶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소명은 단순히 직업과 연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을 자기를 부르신 분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곳에 있을지라도,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바로 그곳에서 ‘소금’과 ‘빛’으로 행동하며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소명은 기본적으로 자기의 삶의 자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자기의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고 하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위치하는 사회 구석구석에서 전혀 그 믿음과 부르심이 일관성 있게 작동하지 않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은 장소와 역할과 관계없이 말씀의 기준과 복음의 원리를 기반으로 일관성있게 작동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진정으로 소명이 있는 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과 자기 정체성에 흔들림이 없는 자이다. 자기의 부르심을 확신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담대히 있고, 처한 곳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세속의 물결이 기독교와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신앙의 자유를 말하지만 하나님과 관련된 신앙은 더 이상 삶의 공적 영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위협을 받고 있다. 그로 인해 신앙과 소명을 개인적 영역으로 축소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하나님을 향한 자발적이며 긍정적 관계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제하는 어둠의 역사를 위한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이 개인적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믿음을 자기 추구 혹은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지 말고 자기 삶의 자리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더 나아가 은혜와 사랑이 나타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의 장이 되게 해야 한다. 소명은 영역을 제한받지 않는다. 도리어 영역을 초월한다.
  이러한 일의 첫걸음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안에 있지만 결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임을 기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마음으로 단체를 만들고 다양한 운동과 캠페인을 펼치며 정치 조직을 만들거나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반드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과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위적인 운동과 조직 이전에 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서 있는 삶의 자리 구석구석에서 자기의 소명에 따라 굳건히 살아갈 때 그 작은 영향력을 통해 하나님의 크심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가장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게 하심으로써 무지한 인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시기 위해서 말이다.

첨부파일(2018.08.27)_다시_생각해_보는_소명.hwp (15.5KB)488.jpg (318.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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