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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넝쿨에 사로잡힌 사명자[제435호]
   조회수 253
2019-09-18 10:19:21

등록일 : 2017/08/14 14:12

 

박넝쿨에 사로잡힌 사명자

 

오늘날의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원망의 말이라 한다가난환경건강자신이 처한 운명을 때문에 자신과 타인혹은 하늘을 바라보며 신을 향하여 원망한다이러한 원망은 결국 분노와 성냄으로 이어진다이러한 원망과 성냄은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의 여정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원망을 많이 하는 우리조차 너무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며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다.

홍해 앞에 서게 된 그들차라리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낫다고 원망한다(출 14). 홍해를 건넌 후마라의 쓴 물 앞에서(출 15원망한다배고픔을 호소하며 원망하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라 말한다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추라기를 먹던 그들은 자신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 값없이 생선오이참외부추마늘을 먹었다(민 11)고 원망했다열두명의 정탐꾼이 40일간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에도 차라리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거늘 왜 칼에 쓰러지게 하는가”(민 14라고 원망했다이러한 원망의 뒤 끝은 항상 분노와 성냄으로 연결되었다.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께 상당한 분노를 표출했던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요나가 떠오른다불만이 가득한 상태에서 다시스를 향한 배에 몸을 싣고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뒤로 한 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던 그에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보통 사람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3일 밤낮을 큰 물고기의 배속에 갇히는 독특한 경험속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다시금 니느웨로 발걸음을 옮긴다삼일동안 걸어야 할 만큼 큰 성읍이었던 니느웨를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의 메시지에 니느웨 성의 임금과 그의 대신들그리고 모든 백성과 그들의 가축까지도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하나님께 회개함으로써 니느웨와 모든 백성들은 새로운 회복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다면이러한 니느웨성의 상황 반전이 요나에게 큰 기쁨이 되어야 하지 않았는가사명자로서 그 사명을 완수함으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히 임하는 현장을 바라보며 감사해야 하지 않았는가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지 않으심을 목격하며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도리어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달라 요청하기 까지 한다하나님을 향한 원망을 분노로 표출하면서 말이다성읍 동쪽에 앉아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하나님이 박넝쿨을 통해 제공하는 그늘에 앉아 있는다그때 요나는 이 박넝쿨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그러나 이 기쁨도 잠시일 뿐 하나님이 보내신 벌레로 인해 박넝쿨이 사라지고 뜨거운 동풍으로 인해 고통이 찾아오자 요나는 박넝쿨로 인하여 크게 원망하며 성낸다.

 

박넝쿨로 인해 크게 기뻐하고박넝쿨로 인해 크게 분노하는 요나의 모습속에서 혹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가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명자인데하나님을 위해 선택된 자 인데하나님의 마음과는 상관없는 모습사명과 관련된 거룩한 분노와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그저 잠시 있다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는 박넝쿨과 같은 것에 감정의 양극을 오가며 휘둘리는 자의 모습이 소위 사명자라고 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라 해야 할까박넝쿨로 인해 요동하는 요나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사명자로 더욱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우리가 원하는 곳을 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는 것을 기뻐하자.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에서 앗수르의 니느웨 까지는 약 880km의 거리이다하루 30km를 걸어도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멀고도 험한 여정이다편안하고 익숙한 곳여전히 이 곳에서도 찾아보면 많은 할 일이 있을 수 있다하지만하나님이 부르셔서 가라하신 분명한 곳이 있다면 사명자는 바로 그 곳에 있어야 한다내가 원하는 곳내게 익숙한 곳내게 편안함을 주는 곳박넝쿨로 그늘이 깃드는 곳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유익과 환경으로 인해 기뻐하는 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자신의 기쁨을 마치 하나님의 기쁨인양 착각해서도 안 된다하나님의 원하시는 자리에 있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자가 되자사명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자리를 고수하며내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박넝쿨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가 되지 말자.

 

둘째우리의 괴로움이 걷히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괴로움이 걷히는 것을 더욱 기뻐하자.

부모의 가장 큰 소원은 자녀의 행복이다어떤 부모도 자녀가 멸망되는 삶을 살고 저주 아래 놓이는 것을 원하는 부모는 없다자녀가 당하는 괴로움을 보며 그것을 즐길 부모도 없다자녀가 악한 길로 가며 삶을 망치고 있을 때그 것을 방관하는 부모도 없다이러한 부모의 본능은 하나님께로 부터 물려받은 것이다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 어떤 민족도 그들의 악으로 인해 멸망당하는 것을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니다도리어 그것이 괴롭기 때문에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신다.

이 일을 위해 사명자인 요나를 보냈지만 그는 그렇게 까지 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그 분의 괴로움에는 관심이 없었다뜨거운 열기로 인한 자신의 괴로움이 사라지게 한 박넝쿨로 인해 기뻐하고그 열기를 막아주는 박넝쿨이 사라짐으로 또 다시 찾아온 괴로움에 분노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 한 영혼을 사랑하시며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멸망의 길로 가는 이들로 인해 괴로워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가 되자.

 

셋째우리가 아끼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아끼는 것 때문에 기뻐하자.

우리는 연약한 자들이다잠간 있다가 사라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곤 한다내가 수고나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내게 이익을 주기에 마음을 주며 아끼고 소중히 여기기까지 한다요나에게 있어서 박넝쿨이 그러한 것이었다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박넝쿨이 있을 수 있다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명을 받은 자라면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박 넝쿨과 구원 받아야 할12만명의 사람들내 자신이 아끼는 박넝쿨과 하나님이 아끼시는 12만명의 사람들무엇을 더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박넝쿨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무엇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자나를 위한 박넝쿨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늘 헤아리는 사명자가 되도록 하자.

첨부파일(2017.08.14)박넝쿨에_사로잡힌_사명자.hwp (32KB)435호.jpg (216.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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