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균형과 성장 [제440호]
   조회수 492
2019-09-18 10:34:18

등록일 : 2017/09/19 14:57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의 균형과 성장


신앙의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한 장성한 자로 자라가야 한다고 말했다(히 5:14). 그런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선택적인 것으로 바꾸려고 한다신앙의 성장을 인위적으로 거부하는 이들도 있지만 성장을 원하지만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들도 있다자신의 본질을 교묘히 가리고 인류에게 찾아와 죄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탄은 오늘날도 교리의 왜곡됨을 교묘하게 포장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을 미혹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는 이때에 그리스도인은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맞서며 건강한 균형 속에 신앙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야 한다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마지막 때의 거짓 교리와 도덕적 타협을 일깨우기 위해 쓰인 베드로후서의 마지막 구절인 3:18을 근거로 정리해 본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먼저는 믿음의 대상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베드로는 이 부분을 주와 구주로 표현했다.

는 삶의 주인이자주권자의 능력을 강조한다. ‘구주는 말 그대로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며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구속자해방자를 의미한다기독교의 신앙은 사변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우리의 신앙의 중심에 계신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다그분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의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다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신 후에 다시 오시기 위해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의 믿음이 사변적일 수 없다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산 믿음이요그 믿음은 삶 자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저 먼 곳 어디인가에 계신 분이 아니다우리의 영원을 책임지실 분으로 현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분이시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존재 역시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자들이다(엡 2:5~6). 그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시다(롬 8:34).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시지만 지금이라는 현재의 삶에도 적극 개입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심을 신약은 다양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사실을 거부하고 있다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실을 사소하게 생각한다신앙을 편안한 내세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현실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는 신앙을 이용할 뿐이다왠지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서의 편안한 삶의 훼방꾼인 것으로 오해하면서 말이다구주가 제시한 삶의 원리를 따르면자신을 우리의 삶의 주인이라 말씀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주님을 허용하면 삶의 다양한 불편함과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는 왜곡에 속아 넘어간다그로 인해 삶에서는 주님을 떠나고 그분을 경외하지 않으려고 한다일주일에 한 번 예배당과 같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주와 구주로 고백할 뿐이다사실 이러한 삶 자체가 악이요 고통(렘 2:44)인데 말이다건강한 성장은 균형을 필요로 한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자 주님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구주이시다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구주시라면 우리는 그분을 삶의 주인과 주님으로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두 번째로는 믿음의 내용에 대한 균형이 필요하다. 은혜와 지식(진리)의 균형을 말한다.

우선은 우리의 믿음의 내용에는 은혜가 담겨 있어야 한다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라고 했다. C. S. 루이스는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에 있다고 말했다이것은 막연한 추상이 아니다은혜란 자격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호의로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의 상황 속에서 나타난다우리는 은혜의 경험과 깨달음이 없이는 자라지 못한다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양육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딛 2:11).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 속에 나타나는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으로 이끄는 에너지()이 된다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적으로 경험했다밤새도록 수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선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시며 주님이 찾아오셨다자신의 노력과 실력이 아닌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낚았을 뿐만 아니라 호언장담 속에 주님을 끝까지 따를 것이라 했던 그는 유다의 배신으로 잡히시는 예수님을 뒤로 하고 멀리 도망갔다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날 사랑하느냐?”라는 세 차례에 걸친 질문 속에서 주님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며 사람 낚는 어부로서 삶과 사역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받았다이렇듯 은혜는 삶의 변화의 시작을 가져오고 지속적으로 삶이 변화되도록 우리를 이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은혜 안에서 자라갈 수 있는가하나님께서 호의를 베푸실 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하나님이 개입하시고 도와주셔야 하는 상황을 선택하라는 것이다그분의 크심과 우리의 작음이 교차되는 곳에서 우리가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나의 능력과 인간적 계산을 내려놓고 주님의 주 되심과 그분이 구주 되심을 인정하며 그 뜻에 합당한 생각과 행동결단과 선택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은혜 안에서 자라가도록 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단순한 정보와 지식이 아니다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지식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끄는 지식이다경험된 지식이자 산 지식이다이것은 어떤 높은 수준의 일반 학문이나 그것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만약에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무시할 때 우리 모두는 잠재적인 이단 혹은 일종의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더 나아가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신을 섬길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마크 A. 놀은 복음주의 기독교 안에 지성이라 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을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라 정의했다하나님에 대한 개인적 경험은 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다지식(지성 혹은 진리)이라 할 만한 내용도 없고 지식에 기반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며 단지 샤머니즘일 뿐이다호세야 선지자는 말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호 4:6).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고 그 안에서의 자라감이 없다면 결국 망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했던 공생애 기간 동안 성경이 곧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하셨다그래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 은혜를 경험하게 한 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시편이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눅 24:44).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은혜와 더불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던 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선포하는 자로 폭풍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갈 수 있는가성경을 읽고 듣고 공부하고 묵상하고 암송하며 삶에 적용하라이 성경이 곧 우리의 주요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이러한 자라감은 단순히 믿음의 대상을 저 멀리 밀어 낸 추상적인 개념이나 관념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단지 내가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믿음이나 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기독교의 신앙은 삶 그 자체이다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감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그분을 주와 구주로 고백함과 그 고백의 진실성을 삶으로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첨부파일우리가_추구해야_할_신앙의_균형과_성장.hwp (16.5KB)440호.jpg (269.1K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