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부패하게 만드는 울타리 제거하기 마르틴 루터는 산에서 돌 하나를 빼내려고 하다가 뜻하지 않게 산사태를 일으킨 사람이다. 수세기 동안 딱딱하게 굳어진 전통으로부터 복음을 구출하려고 하다가 중세 교회 구조를 송두리째 허물어 버린 셈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열정으로 여러 전통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성경에 뿌리를 둔 신학이라고 확신하는 내용과 그 함의를 설명하기 위해 소책자와 책 집필에 맹렬하게 몰두했다. 루터는 “침묵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는 말해야 할 때이다”라고 밝히며 그의 저서 『독일 귀족들에게 고함』이라는 책을 통해 교황의 폭정을 폭로했다. “교황은 열매를 먹어 치우고 우리는 껍질만 가지고 논다”라는 교황을 향한 비난과 함께 그의 생각은 교황이 교회 개혁 의지가 없으므로 세상 권력이 공의회를 소집하고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데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이 부분은 여러 가지의 생각과 논쟁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교황과 교회는 스스로 개혁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루터는 교회 지도자가 처벌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울타리에 관해 말했다. 교회 권력자들은 마음 놓고 “자유롭게 온갖 사기 행각과 악을 방자하게 저지른다. 여리고 성벽과 마찬가지로 이 세 울타리는(실제로는 ‘종이 울타리’인데) 무너져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부패한 교회를 비호하는 첫 번째 울타리 : ‘영적 권력은 세상 권력 위에 있다’는 믿음이다. 루터는 만인제사장 사상에 호소함으로써 이 사상을 붕괴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가 세상 권세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의 통제가 없다면 인간은 공포 가득한 무법천지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 지배자는 제한 없이 자기 의무를 행할 수 있어야 하며, 교황이나 주교, 농노, 수도사, 수녀에게도 같은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부패한 교회가 스스로에게 지나친 권력을 부여하며 세상 권세 위에 군림하며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악을 향하여 일침을 가했던 것이다. 교회가 영적 권력을 무제한으로 휘두르며 성도들을 교회의 권력과 교회 안으로만 가두려고 하자 가장 평범한 일을 비롯한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확신한 루터는 “마귀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오로지 교회와 그 안에서 수행되는 일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편협한 개념보다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엇나가게 할 최고의 방법이다”라고 하며 비판했다. 교회가 자기 방어하는 두 번째 울타리 : ‘교황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중세의 교권은 자신들이 아무리 무지하고 사악할지라도 성령은 결코 자신들과 교황을 떠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루터는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전통 뒤에 숨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공격했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임을 확신하는 루터였기에 만인이 제사장이라면 우리 모두 성경을 읽고 우리가 보기에 합당한 대로 해석할 권한을 가짐을 또한 확신했다. 그러기에 그는 남녀를 물론하고 보통 사람이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했다. 종교개혁은 사제들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돌려주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딤후 3:16~17)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특정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만드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말씀을 가까이하며 공부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자유를 포기한 채 종교 생활에 안주한다면 중세의 부패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교회가 허물어뜨려야 할 세 번째 울타리 : ‘오직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교황을 그리스도와 비교함으로써 교황의 수치를 드러냈다. 그는 해결되지 않은 분쟁이 있으면 ‘교회로’ 가지고 오라고 언급한 마태복음 18:16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공의회 소집은 교황의 배타적 권한이 아님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교황이 삼중 왕관이나 교황 발가락에 입맞춤 등의 관행을 접고 소박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주님의 몸 된 모든 교회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세계의 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를 맞이하며 다양한 행사와 준비로 분주해지고 있다. 우리의 기독교와 교회들이 종교개혁의 주요한 기념지를 찾고 기념식을 마련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스스로 개혁의 의지를 다지며 중세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살피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부패하게 만들며 쳐 놓은 울타리는 없는지,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 위에서 개혁되고 회복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점검하며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개혁하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