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눈, 긍휼
사람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며(롬 12:15)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빌 2:1~4) 사람들에게 온유한 마음을 실천하는 일(마 18:27) 등 우리가 감정을 온전히 쏟기를 바라신다.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성경에서는 긍휼이라고 한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바른 말을 하더라도 잘못된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하라고 명령하신다. 골로새서 3장에서 바울은 복음으로 신자들이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설명하면서 분함, 노여움, 악의, 비방, 저속한 말을 버리고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거룩하고 사랑받는 존재로서 긍휼의 마음을 품으라고 강조했다. 하나님께 선택받고 구별되었으며 사랑받는 존재이자 긍휼을 이미 경험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삶의 특징으로 긍휼의 옷을 입어야 한다.
긍휼의 중요성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으로도 강조된다. 성경에서 사랑하라는 명령을 볼 때마다 긍휼하라는 명령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에 관심을 두거나 그들에게 감정을 품는 것 이상이다. 누군가에게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지만 사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사랑은 ‘척하는’ 사랑보다 훨씬 크고 선하다. 우리는 그저 단순한 인간관계를 뛰어넘는 관계를 추구하고,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하며, 서로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는 습관을 들이고,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지 못했을 때 마음이 불편한 것이 당연한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진리에 대한 열정은 이웃에 대한 긍휼로 이어진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 진리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진리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깊은 사랑을 분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없이 사람을 섬기려고 하지 마라. 이웃을 향한 사랑 없이 하나님을 섬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진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진리를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즉, 진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진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긍휼이 빠진 열심은 진리를 추해 보이게 만든다. 그 이유는 진리가 가식임을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진리가 가식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열정이 가식이다.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라고 말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이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 긍휼을 입은 자인가를 점검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우리에게서 ‘긍휼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의 대사관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망의 공동체인지 또한 그 공동체를 통해 지역과 이웃을 향한 긍휼이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사랑과 진리가 진정한 것이라는 증거는 가식적인 말이나 세속성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 받은 긍휼을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드러내야 하는 때에 살고 있다.
- 위의 글은 조슈아 맥의 『긍휼』(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부분 발췌하여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