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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와 영광 [제546호]
   조회수 605
2019-11-19 10:41:15




 



수치와 영광


  그리스도인의 고난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수치를 감내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3:12~13은 예수님이 우리의 수치스러운 고난의 본보기가 되신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수치를 당하셨듯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 또한 이런저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 가운데 한 명인 바울이 그의 인생 말년에 로마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를 지원하기 위해 로마 교회에서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디모데후서 4:16이 성경을 통틀어서 가장 비극적인 구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그 치욕은 바울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를 버렸던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서 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은 마지막에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수치 당하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버겁게 수치심을 견디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수치심을 경멸하셨다. 영광된 결말을 확신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다가 수치를 당할 때 똑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것처럼 죽음으로써 열매를 맺으라고 도전하셨다(요 12:23~25).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그분과 가질 수 있는 교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요12:26a). 그리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받게 될 영광에 대해서도 설명하셨다.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2:26b). 하나님의 때가 되면 영광은 주어질 것이다.

  간혹 욥처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영광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심판 때에 신실한 자들을 위해 영광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수치를 감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심판의 교리는 우리가 이 타락한 세상에서 예수님을 섬기면서 원통해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우리가 주어진 소명에 충성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열하고 불의한 사람이 성공할 때는 그 굴욕감에 비참해지기 쉽다.

  우리의 내면에는 선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약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정의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와 반대되는 일이 벌어질 때는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기쁨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원통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안타깝게도 많은 하나님의 정직한 종들은 자신이 그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불의에 격분하여 괴로워한다. 이것은 그들을 정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무력하게 만든다.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장이 아직 쓰이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말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실제로 이 구절에 나오는 고난을 포함한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많은 고난의 목록(고후 6:4~10)은 그가 매우 심한 고난을 당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영광에 비하면 그런 극심한 고난조차도 “잠시 받는 환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을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유익하다. 첫째, 악한 자가 번성하는 것을 원통해할 이유가 없어진다. 둘째, 섬김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동기를 갖게 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천국과 지옥과 심판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기꺼이 그 대가를 치르겠다는 헌신을 다짐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 위의 글은 아지스 페르난도의『고난과 기쁨, 그 역설의 믿음』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9.11.19) 수치와 영광.hwp (15.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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