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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왜곡시키는 세 가지 욕심 [제559호]
   조회수 664
2020-02-24 15:54:46



 


복음을 왜곡시키는 세 가지 욕심


 

복음의 단순한 진리를 충실히 선포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교묘히 미혹하는 세 가지 흔한 욕심이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본문을 통해 이 세 가지를 암시해 주고 있다.

 

첫째,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욕심

이 악성 성향이 적어도 지난 250년간 미국 복음주의 운동을 병들게 했다.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이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르고 쉽게 유행을 갈아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섬기는 교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되기 너무 쉽다. 대중문화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는 이 세대에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교회 안에 엄청난 압박감이 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를 주해하는 목사가 그렇게 많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새로운 것을 찾아 숨가쁠 정도로 빠르게 바울의 단순명료한 메시지를 떠났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깊이 닻을 내리지 못한 사람은 늘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엡 4:14)할 위험이 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그런 상태였다. 새로운 것이 주의를 사로잡자 닻이 든든하지 못했던 그들은 순전히 새롭다는 사실에 금세 휩쓸렸다. 참 복음은 하나뿐이며 더 나아질 수 없다. 메시지를 더 새롭고 시의성이 있게 만들어야 다음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둘째, 복음을 고치려는 욕심

설교자의 메시지를 빗나가게 하는 두 번째 현세적 욕심은 복음을 수정하려는 욕구이다.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7). 바울이 밝혔듯이 거짓 교사들은 동기가 나빴다. 악한 욕심을 가지고 미리 작정하여 복음을 왜곡하고 변형시켰다. 그들은 스스로 미혹되어 생각이 영적으로 어두워지다 보니 오히려 자신들이 복음을 더 좋아지게 만든다고 믿었을 것이다. 할례파들은 이미 종식된 옛 언약의 요소를 고수하고 싶었다. 그래서 복음을 고치려는 욕구가 싹텄다. 아마 메시지를 자기네 제사장들과 학자들에게 더 받아들여지기 쉽게 만들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단순한 메시지보다 더 복잡한 무엇을 원했다. 더 세련되고 화려하고 인간의 자존심에 부합되는 종교를 원했다.

사소해 보이는 손질이 복음의 메시지를 송두리째 망쳐 놓는다. 누군가가 복음이 충분히 복잡하거나 학문적이거나 엄격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 복음을 비트는 사람은 그 순간 거의 언제나 모종의 행위를 공식에 집어넣는다. 무엇이 되었든 인간의 행위를 칭의의 수단으로 삼으면 교리가 완전히 무너진다. 복음 진리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다(엡 2:8~9). 이것이 복음 진리의 핵심 교의인데 유대주의자들의 아주 작은 수정이 이를 완전히 무효로 만들었다. 구원의 그 어떤 요소도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는 근본 진리를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복음에 관한 한 수정의 욕구는 저주받을 죄이다.

 

셋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심

바울은 말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바울은 할례파에 동의하며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 바울이 할례를 전했다면 박해를 면하고 “십자가의 걸림돌”을 제거했을 것이다(갈 5:11). 할례파는 자신들이 메시지에 매력을 더하여 그리스도를 이롭게 한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한 일은 하나님 대신 인간에게 영광을 구한 것이다. 

바울의 철학을 잘 보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음”(고전 1:22)을 그도 알았다. 그의 사역 철학이 오늘날 성업 중인 사실상 모든 교회 성장 전문가의 전략과 비슷했다면 그는 전도양양했을 것이다. 유대인의 요구대로 표적을 보여 주었다면 그가 복음을 전함으로 맞은 고난과 역경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유대인의 요구대로 표적을 보여 주기는커녕 그는 그들에게 걸림돌을 내놓았다. 그리스도인의 요구대로 학식과 지혜로 답하지 않고 뻔히 그들에게 미련해 보일 메시지를 전했다. 청중을 약 올리려는 삐딱한 속셈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복음과 복음을 전하는 전략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고전 1:29). 

 

복음은 인간의 자존심에 영합하지 않는다. 복음에 무엇인가를 더하거나 빼고 싶어질 때면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복음은 하나뿐인데 자아를 내세우고 싶은 현세의 욕심 때문에 복음을 무효로 하거나 수정하거나 미화하기가 너무도 쉽다. 우리도 바울처럼 이 모든 성향을 신중히 경계해야 한다. 충실한 사역에 따르는 대가가 이 땅에서는 커 보일지 모르나 하늘의 영광을 생각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는다.

 


위의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인 『예수 그리스도, 하늘의 왕』에 실린 

필 존슨의 글(다른 복음은 없나니 :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발췌한 것입니다.



 

첨부파일(2020.02.24) 복음을 왜곡시키는 세 가지 욕심.hwp (15.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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