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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행복 [제 621호]
   조회수 405
2021-06-15 10:02:27


 

기쁨과 행복


하나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주저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행복을 누리는 방법이 수없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여기서 더 나아가 훨씬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행복이 즐거움과 만족감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을 가리켜 사용되는 단어인 반면, 그리스도가 주시는 것은 기쁨이다. 이 기쁨은 행복을 포함하지만 훨씬 더 깊이 있고 지속적이며 훨씬 더 강력한 감정이다. 기쁨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대략 4백 번 등장하는데 이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보다는 거룩에 더 관심이 많다는 유명한 기독교 명언이 있다. 하나님을 닮는 것이 그분이 세우신 중요한 우선순위라는 면에서 보면 이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은 마치 행복한 삶과 하나님을 따르는 삶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 안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잇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더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래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이 현재 삶에서 기쁨을 누리는 비결의 일부를 소개한다.

첫째, 우리 죄가 온전히 용서 받았음을 안다(32:1~2). 이 사실에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간단히 말해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타는 건물에서 극적으로 구조되거나 절벽에서 떨어지기 전에 누군가가 붙들어준다 해도 이 복된 소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범죄 기록, 즉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지 못하도록 우리를 분리시킨 전과 기록이 말소되었다.

둘째,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갖는다(벧전 3:21). 많은 사람이 깨끗한 양심으로 인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우리 죄가 용서받았지만 여전히 우리를 처벌하려고 하고,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죄인인지 말해주려고 기다리고 계신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더는 죄에 대한 책임도, 정죄함도 없다. 시편 10312절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셋째, 하나님이 나를 그분의 아들이나 딸로 보고 계심을 기억한다(고후 6:16~18).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31절에서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우리는 구원받을 때 영생을 얻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도무지 갚을 길이 없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더불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 다시는 혼자가 아니며, 그분이 늘 우리를 보살펴주고 계신다는 말이다.

넷째, 인생의 모든 부침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누린다. 하나님은 우리를 완벽하게 알고 계신다. 우리를 완벽하게 이해해주시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때로 누군가가 우리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하나님은 내 안에 있는 모든 어두움까지 보시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이 모든 두려움이 눈 녹 듯이 사라진다. 인생이 형통할 때는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가 되시고, 어려울 때는 내가 겪는 모든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시고 그 일을 무사히 이겨내도록 나를 격려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되신다.

다섯째, 형제자매 된 그리스도인들과 깊은 우정을 누린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우리처럼 죽음에서 구원받은 지체이자 한 가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그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신다. 우리는 함께 누리고 축하할 일들이 아주 많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그분에게서 양식을 공급받을 뿐 아니라 서로를 통해서도 자양분을 공급받도록 계획하셨다. 성도들에게서 받는 사랑과 지원과 함께 함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다.

여섯째, 천국에서 생명을 누린다는 것과 놀라운 미래가 준비되어 있음을 한다(16:11).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우리 이야기의 결말은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다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알 때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이런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다. 인생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인생의 실패자인 것 같고 인생을 허비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우리가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도록 해 주실 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드넓은 바다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고, 바라볼 영원한 낙원이 있다는 소망을 주신다. 천국을 사모하고 소망하면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일곱째, 우리 안에 성령이 내주하신다(14:17, 살전 1:6). 풍성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기쁨을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22~23절은 성령이 우리 안에 여러가지 열매를 맺으시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기쁨이라고 말한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쁨의 열매를 맺는다.

위의 글은 클린턴 E. 아놀드 제프 아놀드기독교 신앙에 대한 난감한 질문 명쾌한 대답(도서출판 디모데)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1-06-16_기쁨과 행복.docx (16.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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