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돈과 재능 [제 634호]
   조회수 394
2021-10-04 23:29:32

고린도후서 8-9장을 통해 주의 깊게 살펴보면 관대함에 대한 영적인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하나님께서는 관대하라고 명령하시는데 이것은 더 민감한 도덕적인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 돈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본질이 되는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주는 은혜에 풍성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바울은 어떤 액수를 정해놓고 나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것을 주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그는 관대하라고 말했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전부 다 다른 것이다. 그는 돈의 액수를 정하지 않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그들에게 다시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처럼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단순한 계명을 상기시켰다. 그는 각 사람의 필요와 관대함의 명령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었고(‘즐겨 내는 자’, 고후 9:7), 그래서 그 자신의 마음의 결정에 따르게 했다.

베푸는 분량을 결정할 때 우리는 삶의 근원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결정을 내린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행위는 인생에서 추구하는 삶의 기준과 자기 자신이 성공했다거나 평안하다는  깨달음 그리고 자녀들의 필요와 교육을 위해 관대함을 베푸는 판단력에 영향을 끼친다.

사려 깊게도 성경 말씀은 성도들이 내는 헌금의 액수를 정하기 위해 교회가 교육하거나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발적인 순종속에 드리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우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동일한 의미로 우리가 돈을 쓰는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 마음의 반응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청지기로서 우리에게 돈을 위탁해주신 것이다. 이것은 교회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로운 영역이지만, 하나님께 대해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드러내는 문제로,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반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매우 도덕적이며 영적인 문제이고, 여기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영적인 안목이 있어야만 한다.


재능

돈 문제에 더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대해서 청지기가 되도록 부르셨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역을 영적으로 중립적인 부분이며 실제적으로는 알아서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도 매우 영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영역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영역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에 지혜를 주사 재능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성막의 건축을 맡기기 위해서 부르셨다(26:1, 31, 36, 28:2, 6, 11, 15, 39, 30:15).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짓는 일이 필요한 바로 그때에 그들에게 그런 재능을 주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이전부터 그런 재능을 받았고 직업적으로 재능을 사용하며 살았다.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분야에 대해 우리 각자에게 지혜를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과 교회에서 그분을 섬기며 살아간다.

바울은 로마서 12:3-8절을 통해 로마의 성도들에게 만족스러운 자기 모습이 아니라 정확한 자기 모습을 개발시키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판단력이 깨어 있을 때 이루어지며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기 기만적이고 심하게 과장된 자아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준다.

바울은 우리의 재능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부르신 것을 실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확신 속에서 더욱 발전되어야만 한다.

로마서 12장에 나오는 은사들은 섬김과 권면, 헌금, 지도력 그리고 긍휼과 같은 것들인데, 이것들은 신비적인 은사와 그렇지 않은 은사로 나뉜다. 연약하고 죄가 있음에도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다고 믿는 마음과 받은 은사를 개발시키기 위해서 믿음으로 노력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역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수 있게 해준다.

베드로전서 4:10-11절에서도 이런 원리를 가르친다. 베드로의 요점은 바울의 요점과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확신 가운데 사용할 때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렇게 동기 부여된 신앙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섬김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

은사를 깨닫고 발전시키려는 동기의 문제는 우리의 삶, 즉 교회에서의 직분과 세상에서의 직업 영역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섬김을 위해 각각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 각 사람의 개별적인 사역에 대해서 역시 개별적인 소원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가 자신의 은사와 사역을 깨닫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들여다보거나 우리 삶에 대한 그분의 이상적인 계획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을 통해서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계획과 신앙 속에 주시는 통찰과 그러한 능력들을 사용하면서 얻는 지혜로운 판단들을 개발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위의 글은 제임스 C. 패티스텝 바이 스텝(도서출판 디모데)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1-10-05_돈과 재능.docx (16.2K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