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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확신 [제 694호]
   조회수 270
2022-12-27 11:13:29


 

어려움이나 반대에 부딪힐 때 바울이 사용한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단정하고 바울의 사역 방식을 포기하는 사역자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가감 없이 선포하려고 노력했어요. 율법의 엄격한 진리를 전하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했어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죄인들을 깨우쳐 주실 것을 믿었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여전히 성장하지 못했어요. 우리 마을에는 스모크 머신 조명, 대중문화에 편승한 설교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대형 교회가 있어요. 그런 교회는 주일마다 수천 명의 사람으로 북적거려요. 얼마 전부터 우리도 그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세기에 통했던 방식은 이제 중단하고 시대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답니다. 바울의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별다른 결실이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 먼저 바울이 복음을 선포한 뒤 심각한 부정적 반응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고 거의 죽게 되었다(14:19). 에베소에서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는 도시 전체에 폭동이 일어났다(19:23-39). 고린도 교회는 문제와 갈등으로 얼룩졌다. 소아시아 교회들은 너무나 쉽게 신적 은혜의 교리를 폐기했다(5:4).

그러나 바울은 결과가 자신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았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라고 말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하나님의 말씀은 확신을 갖고 분명하게 선언할 때 결과가 비록 더디게 나타나더라도 항상 열매를 맺는다.

때로 하나님의 계획은 가르치고 의로 교육하는 데 있지만 때로 책망하고 바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일 때도 있다. 복음은 듣고 믿는 자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된다. 그러나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로 가고자 하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은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향기다(고후 2:15-16). 어는 경우든, 진리를 온전하고 명확하게 성실함으로 전하면 우리 몫의 책임을 다하게 된다. 결과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긍정적 반응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부정직한 방식으로 조작하거나 메시지의 내용을 순화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복음의 메시지를 수정한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다. 설령 이런 방식으로 긍정적 반응을 얻는 듯 보여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 시대에는 필요에 맞게 가공된 가짜 복음들이 가짜 회심자들로 교회를 가득 채웠다. 이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죄책이 얼마나 무겁고 두려운 것인지 혹은 예수를 주로 신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른다.

바울은 복음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낸다. 그는 우리 복음이 가려 있으면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복음을 증거 하거나 선포할 때 우리는 바울이 망하는 자들”(3)이라고 확인해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영적으로 죽었고 태어날 때부터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2:1-3). 고린도후서 44절에서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그들의 생각을 혼미하게 함으로 이중으로 눈이 먼 상태라고 말한다. 그들은 완전히 눈이 멀었다.

바울은 사람들이 타락한 자연 상태에서는 영적으로 완전히 눈이 멀어 있으며, 절망적인 망각 상태에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선포하였다고 말한다. 구원을 우한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은 영적 죽음의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성경에서 우리를 가장 낙망하게 하는 교리를 꼽는다면 인간 타락의 교리하고 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거나 기쁘시게 해 드릴 능력이 없다(8:7-8). 자발적인 의지로 그를 믿을 수도 없다. 그러나 적대적인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죽은 죄인을 깨우는 것은 우리의 능력 밖이라는 사실이 또 다른 의미에서 고무적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복음의 진리를 공개적으로 전하고, 끝까지 신실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이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하나 의무라는 말이다. 복음이 인간을 구원하는 데 하나님이 사용하실 유일한 수단이 분명하다면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탁월한 전략을 구사한다 하더라도 사역의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끝까지 인내하며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사역자는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의 은혜라는 위대한 진리에 닻을 내려야 한다. 하나님은 영적 생명이 없는 비활성 상태에서 죄인들이 깨어나도록 하시는 분이다(2:4-10).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이 이런 우리의 순종을 사용하셔서 그분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실 것이다. 누군가의 영원한 운명이 목회자로서 나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그런 엄중한 책임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사역의 결과가 나의 능력이나 지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섬기도록 부르신 방법으로는 결코 사역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은 사역의 결과가 전적으로 우리 주권자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충성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사역과 일생의 마지막을 보고 극히 낙심하거나 심지어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의 글은 존 맥아더, 목회-흔들림 없이 신실하게(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2-12-27_결과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확신.docx (1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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