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ket List이라는 것이 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을 의미하는 것으로, ‘죽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속어인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으로부터 만들어진 말이다. 그 이유는 중세 시대에는 교수형을 집행하거나 자살을 할 때 올가미를 목에 두른 뒤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에 올라간 다음 양동이를 걷어참으로써 목을 매 교수형에 처하던 상황에서 유래했다.
당신이 지금 Bucket List를 작성해야 한다면 그 리스트에는 1~3은 무엇이 되겠는가? 일반인들의 Bucket List는 대부분 마음의 평화, 타인에 대한 봉사, 세상에 대한 동경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대체로 가족과 여행하거나 맛있는 음식 먹기, 봉사활동, 그리고 세계여행이라 한다. 사람들의 이러한 Bucket List를 통해 볼 때 사랑과 봉사와 같은 특징이 드러나는데, 죽기 전에 많은 사람이 좀 더 이타적인 삶을 생각하며 이기적인 삶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되었든,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더욱 진지하게 해 줌을 발견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언제 종결될지, 혹은 주님이 언제 오실지 우리는 알 수 없기에 늘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 속에 지금의 이 순간을 살아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최선을 다해 따르고자 하는 삶의 태도,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삶의 모양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이 가까왔기에, 마지막 때이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벧전 4:7~11에서는 마지막이 가까왔기에 힘써야 할 것에 대하여 4가지로 말해주고 있다.
첫 번째, “기도하라”.
기도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다. 기도의 동기와 이유 및 시작점이 다양할지라도, 시간을 거듭할수록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대화로 성숙해 가야 한다. 마지막 때일수록 세상이 혼탁해지며, 사람들은 매우 이기적이 되고 돈과 쾌락을 사랑하게 되면서 더욱 어지럽게 되기에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기도는 무아지경에서, 단순히 나 자신의 감정적 성토를 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고 분별력 있는 정신을 가지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이 가까올수록 만나게 될 그분을 더욱 기대하며 그분께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분과의 만남의 시간에 더 집중해야 한다.
두 번째, “서로 사랑하라”.
어느 가수는 “사랑이란 그 이름만으로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노래했다.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단순한 추상명사, 혹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동사이다. 감정으로 시작되어 의지와 헌신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자발적인 자기희생이 없이는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사랑하라 말하며 “열심으로”를 전제하고 있다. “열심”이란 단어에는 격렬함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뜨거우면서도 변치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육상선수가 결승선을 끊기 위해 몸을 구부리는 이미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사랑하면 상대방의 허물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보여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늘 본문은 사랑의 결과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죄를 묵인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용서, 허물을 덮어준다, 가리워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가를 어떻게 알수 있는가? 그것은 그의 죄를 들춰내고 허물을 퍼뜨리는가 아니면 그것을 덮어주고 있는가로 알 수 있을것이다. 사랑의 결과는 용서와 용납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서로 대접하라”.
대접은 관대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대접은 하늘에 보화와 상급을 쌓는 재테크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천국에서 으리으리한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궁전에서 살기 위한 재테크가 아니라 인생의 수고를 다한 후에 자신의 삶이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검증받으며 하나님께 칭찬과 책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서로 대접함에 있어서 “원망 없이” 하라 말하고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결과가 죄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기에 상대방의 태도와 관계없이 관대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원망없이 대접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상황이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향해, 혹은 마음이 가난하여 아직도 이기적인 사람들을 향하여 그들의 필요를 신속하게 제공해 주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서로 봉사하라”
서로 섬기라는 것이다. 섬김은 상대방을 높이고 나 자신을 낮출 때 가능해지는 특징이 있다. 열심히 섬기며 봉사함에서 “은사를 받은 대로…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다. 은사를 받은 대로란 쉬운 표현으로 자기의 장점,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선한 청지기란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자기의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을 가지고 충성스럽게 하나님과 공동체와 세상을 섬기도록 책임을 진 자로서 봉사하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또한 이러한 일을 위해 무슨 말이 필요할 때,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봉사할 때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담대하게 행하라고 말한다(11절).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시며 이 일을 통해 영광받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히 6:10)
이러한 하나님을 기억하며 마지막 때에 마지막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삶의 긴박성과 진지함을 유지하며 주어진 삶의 기회를 성실히 살아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