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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머뭇거린다면 [367호]
   조회수 276
2019-09-17 16:44:20

등록일 : 2016/04/12 09:37




수년 전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해 매년 12조 달러를 사용하며 이로 인해 일반인들은 하루 3,000개 이상의 광고에 노출된다는 통계를 접한 적이 있다. ‘광고’라는 단어를 구글 검색창에 넣으면 관련된 정보가 1억8천만 개가 검색될 정도로 우리는 지금 정보 스모그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뇌에 유입되는 일주일치 정보량은 20세기 초반에 살던 사람의 뇌가 평생 받아들인 양보다 많다고 하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정보의 홍수속에서 바른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분별한 정보와 혼탁한 이 시대 속에서 우리의 삶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펼쳐지지 않지만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그 속에서 바른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이란 매 순간이 선택의 순간이며 선택한 것을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7년간 31번의 전쟁, 23년간의 가나안 정착기를 이끌어 왔던 여호수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하나님에게서 가나안에 대한 약속을 받았던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자신이 하나님을 섬길 것을 선택한다며 백성에게 그들의 선택을 촉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임종을 앞둔 110세의 여호수아를 향하여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여호수아는 그러한 일을 한 것일까? 지도자로서 30여 년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한 여호수아는 그들이 늘 둘 사이에서 머뭇거렸던 모습을 보아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여호와만을 섬기는 신앙을 간절히 촉구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결단의 촉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떠한가? 머뭇거리지 않고 여호와만을 섬기기로 했는가? 그렇다면 그 선택이 최선임을 증명하는 삶이 뒤따라야 하는데 여호수아는 2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성실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공동 번역 성경에서는 일편단심으로 번역했다. ‘성실’이란 ‘흠없는, 완전한’이라는 뜻이며, ‘진정’이란 ‘진리, 진실, 확고함’을 뜻한다. 즉, 여호수아는 우리가 진리를 꽉 붙잡고 최선을 다하며 흔들림 없이 여호와만 섬기라고 촉구하고 있다. 큰 신앙, 큰 믿음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진리를 꽉 붙잡고 최선을 다하며 흔들림 없이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많은 믿음의 선조가 등장하는데 그들의 위대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어진 상황에서 성실한 삶과 진리를 꽉 붙잡고 믿음의 경주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선택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매일의 삶에서 늘 두 가지 사이에 서게 될 때마다 진리를 꽉 붙잡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신 뜻을 선택해야 한다. 

둘째, 다른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치워 버리고’라는 히브리어의 ‘쑤르’는 ‘피하다, 거부하다, 치우다’라는 뜻이다. 이미 하나님이 애굽에서부터 벌을 내리고 멸하신 거짓 신들을 제하여 버리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기 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신전(판테온)을 세우고 섬겼던 남신과 여신, 물질 지상주의와 쾌락 지상주의의 상징인 가나안 신 바알과 아세라를 거부하고 치워 버림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조물주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려져 있는 허망한 것들, 가짜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지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다른 신이 없는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고,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권력(power), 멈추지 않는 쾌락(pleasure), 제한 없는 넉넉한 소유(possession)를 추구하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근처에서 맴돌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유일한 섬김의 대상인 하나님을 대체하는 다른 것을 단호히 거절하며 치워 버리기 위해 더욱 치열해질 필요가 있다. 마음을 점검해 보자. 하나님만으로 채워지고 만족해야 할 내면에 하나님을 대신 다른 것이 차지하고 있는지 말이다.

만일 우리가 머뭇거린다면 어느 순간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으로 나아가다 결국 하나님을 모르는 삶으로 추락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머뭇거린다면 하나님을 향한 직접적인 믿음이 간접적인 믿음으로 변질되고 결국은 믿음에서 떠난 사람이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머뭇거린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자에서 구경꾼으로 결국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지 않는 자로 추락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머뭇거린다면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서 성경 말씀을 단순히 아는 자로 결국은 성경을 진열장에 소장한 자가 될 것이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의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등장했던 것처럼 말이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왕상 18:21)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3)


첨부파일vote-yes-or-no.jpg (57KB)2016-04-12_만일_머뭇거린다면.docx (22.4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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