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처럼 행동하고 리더처럼 생각하라』로 우리에게 알려진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의 조직행동학 교수인 허미니아 아이바라 교수의 인터뷰가 한 일간지에 실렸다. 물론 일반적인 조직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리더들을 위한 보편적인 이야기들이었다. 그의 인터뷰를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3가지의 덫’으로 요약해주고 있는데, 본질적인 면에서 이미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부분이며 영적 지도자들이 결코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원리라 생각하면서 옮겨 보았다. 능숙함의 덫 “지금 당신을 그 자리에 올려둔 능력이 당신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하던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다른 일은 하지 못하게 되는 함정을 말한다. 보통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승진했을 때, 새 업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하던 일을 계속할 때 이 함정에 빠진다고 한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일수록 더 위험하다. 늘 하는 일은 이미 요령을 터득했기 때문에 쉽고 빨리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자리에서 새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데, 재미없고 지루하다. 그래서 ‘새로운 능력’을 익히는 대신, 자신이 하던 일의 ‘전문성’을 더 높이는 방향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다른 능력을 익히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는 현상이 발생한다. 영적 지도자로서 목회의 현장과 말씀 사역 속에서 혹시 능숙함의 덫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빠르게 세속화되는 세상과 그것의 영향을 무분별하게 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환경과는 무관하면서 내가 있는 능숙함의 자리에서 그 자리만을 깊게 파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라는 울타리와 성도와의 관계의 익숙함에만 머물러서 세상을 향한 주님의 권능과 영향력을 끼칠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게으름의 덫 늘 만나던 사람과 만났을 때 빠지는 함정, 즉 게으른 인맥을 말한다. 게으른 인맥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자신과 비슷한 배경, 사고방식, 나이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는 경우. 둘째는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과 만나는 경우. 셋째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서로 모두 알고 지내는 경우. 넷째는 지금과 다른 일을 할 때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경우이다. 혹시 영적 지도자인 당신은 게으름의 덫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오래 알고 지내는 사람은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때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첫인상의 선입견이 남아 있어 ‘현재’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할 우려가 있다. 10년 전에 처음 만난 사람이라면, 10년 사이 변화가 있었다고 해도 이를 잘 알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눠도 새 아이디어를 얻기 어렵다. 새로운 만남이 필요한데도 인맥을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다. 관계 속에 자리 잡는 게으름의 덫은 영적 지도자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계의 폭의 확장을 가로막는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삼는 본질적인 사역의 가장 큰 장애물로 연결된다. 진정성의 덫 자신이 지닌 일종의 이상 때문에 새로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함정이다.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진정성을 핑계로 익숙한 것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직장에서 승진하면 누구나 각자의 안전지대를 벗어나도록 요구받는데, 이때 각자의 정체성을 보호하려 하는 강한 충동이 나타난다. 새 환경에 적응할 자신감이 서지 않으면, 대개 익숙한 행동방식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움츠러들고 자신의 틀을 깨지 못하면 리더십을 키우기 어렵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체성을 ‘빛’과 ‘소금’으로 분명하게 해 주셨다. 그런데 주님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말씀하셨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 세상의 한복판에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늘 갈릴리 온 지역과 군중 사이를 걸어 다니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세상의 부패 막고,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런데 진정성의 덫에 걸려 이 일을 외면하거나 소극적이 될 때, 도리어 세상에 밟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를 미워하고 짓밟으려 하겠지만, 밟히더라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밟혀야 된다. 우리의 본이 되는 초대교회 성도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은 영적 지도자로서 진정성을 핑계로 익숙한 것에만 머무르려고 하지는 않는가? [이 글은 조선일보의 7월4-5일 주말판 위클리비즈의 윤형준 기자의 기사를 참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