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기독교 영성의 지도자 헨리 나우웬은 미국의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교수로 지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일생에서 1985년은 아주 중요한 해였다. 1985년 초에 불란서에 있었던 정신지체아들을 모아서 양육하는 ‘라르쉬’라는 공동체에 한 지도자가 예일대학으로 헨리 나우웬 교수를 방문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 공동체의 지도자로부터 처음으로 정신지체아들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또 이런 정신지체아들을 섬기면서 삶을 고귀하게 사는 분들이 계시구나.’ 그 날은 그들이 사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고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이 공동체의 원장으로 있었던 장 바니에라는 지도자로부터 편지 한 장이 왔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정신지체아들의 수양회가 열리는데 헨리 나우웬이 거기에 왔으면 좋겠다”는 글이었습니다.
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또 한 장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교수님이 함께 있어서 축복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이런 우리 같은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어 주신다면 얼마나 커다란 하나님의 선물일까요.” 그 편지 한 장이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에 도전을 주었다. ‘주님이 나를 하버드대학을 떠나 정신지체아 공동체의 지도자로 일하도록 나를 부르신다.’ 그의 마음에 자꾸 그런 부르심이 느껴져 갈등하였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그는 결국 주님의 강렬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1985년 가을에 하버드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캐나다의 토론토 근처 ‘데이 브레이크 커뮤니티’(DayBreak Community)라는 정신지체아를 위해서 새로 생긴 공동체의 지도자로 헌신했다. 그 곳에는 단 6명의 정신지체아들이 있었다. 그는 단 6명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버렸다.
현대 경영의 대부인 Peter Drucker는 오늘날 최고경영자들의 ‘중년 위기’(mid-life crisis)에 대해 아주 좋은 조언을 해준다. “일반적으로 45세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최고경영자들이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런데 그들은 전성기를 누리면서 더 이상 배우려들지 않으며, 어떤 것에도 더 이상 기여하지 않는 권태기에 빠져들 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피터 드러커는 인생의 후반부를 새롭게 설계하면서 제 이의 다른 경력을 쌓아 가는 삶을 살 것을 제안한다.
금세기 가구업계의 혜성으로 등장한 주디 조지는 “나에게는 오히려 나이가 무기였다”고 간증한다. 권투 선수로서 링 위의 전도사로 활약했던 조지 포먼은, “하나님은 40세를 사형 선고로 생각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역전승의 인생을 간증한다. 금세기 최고의 초베스트셀러 ‘007’ 시리즈를 탄생시킨 영국의 소설가 Ian Fleming은 43세에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제 이의 인생 경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40세 이후부터 이제까지 경험한 것에 대해 ‘긍정’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맞다. 인생 40부터가 새로운 제 이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도약과 도전의 발판이다.
1. 현재의 편안함을 극복하자
현대 기독교 지도자 John Maxwell은 모세의 새로운 도약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믿음의 지대에서 살았다”(He lived in the faith zone out of the safe zone.) 그렇다. 우리가 제 이의 인생을 살고자 도약하려면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벤처 신앙이다 “인생이란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고는 진정 위대한 일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
인생의 삼중고를 극복하고 승리한 헬렌 켈러가 말하듯이, “안전이란 미신과 같은 것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란 과감한 모험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스타벅스 커피의 Howard Schultz는 이런 성공 지향적인 벤처 마인드를 품게 해준다. “무엇을 하든지, 안전하게만 하려고 하지 말라. 언제나 해왔던 방법으로 일을 추진하지 말라. 정형화된 틀에 일을 맞추려고 하지 말라. 남들이 기대하는 것만큼만 한다면, 결코 그 범주를 벗어난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21세기의 성자 헨리 나우웬처럼 안일주의나 편안함의 매너리즘을 벗어나는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새로운 도약만이 믿음의 거인 대열에 서게 해준다.
2. 과거의 실패 경험을 극복하자
현대 기독교 상담의 대가 Paul Tournier는, “사람의 성숙은, 성공보다는 실패나 시련을 거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보다는 병약한 사람 중에서 참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크게 성공하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경험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패를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1)실패는 적이 아니라, 우리의 친구입니다(Failure is not foe, but friend): 실패는 오히려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아군이요, 친구이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공하지도 못한다.
2)실패는 영원한 것이 아닌, 순간적인 것에 불과합니다(Failure is not monumental, but momentary)
노르만 빈센트 필 박사는 이런 좋은 말을 했다. “당신이 실패했을 때, 당신이 할 첫 번째 단계는 잊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절대로 그것을 거론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해야할 세 번째 단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다음 번에는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런지요. 무엇이 최선의 방법일까요?”
3)실패는 패배가 아닙니다(Failure is not Final): 한번의 실패가 마지막이 되어서는 안됩니다(Failure doesn''t have to be final): 평범한 농부가 천신만고 끝에 서른 아홉 살에 처음으로 공직을 얻고, 뒤늦은 50세에 정치무대에 입성한 후 61세 되던 해에 갑자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거하므로 미국 대통령이 된 사람이 곧 헨리 트루먼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실패했을 때에도 항상 전진했고, 좀더 좋은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역사의 거인들은 하나 같이 실패의 뼈아픈 경험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모세처럼 80세 뒤늦은 나이에도 여전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실패를 극복하는 승리자가 되길 바란다.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고 미래의 성공을 내다보므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3. 미래의 불안함을 극복하자
한 보고서에 의하면 긴장과 염려는 다섯 가지 해를 유발한다. 첫째, 혈액 순환이 나빠지고, 둘째 근육통이 생기고, 셋째 판단 착오를 일으키며, 넷째 요긴한 것을 잊어버리게 하고, 다섯째 실력 발휘를 못하게 한다. 염려는 그야말로 백해무익(百害無益)이다. 그래서 기도의 아버지 George Muller는 “염려의 시작은 신앙의 종말이며, 참된 신앙의 시작은 염려의 종말이다”라고 멋지게 정의해준다.
미래는 우리의 관한 밖에 있다. 미래는 하나님의 소관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현재의 안일주의, 과거의 실패 경험, 미래의 불안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나가는 만큼 영웅적 거인의 대열에 설 줄로 확신한다. John Maxwell의의 말이다. “If you want to grow, you need to go”(당신이 더 크게 되려면,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 조봉희 목사(디모데성경연구원 자문위원, 지구촌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