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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제484호]
   조회수 504
2019-09-18 12:17:04

등록일 : 2018/07/31 17:13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성경은 요한복음 17:16과 ‘이 세대를 본받지 마라’는 로마서 12:2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의 개념을 언급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소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아직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라는 말인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몇 가지 태도가 있다.

방어적 자세 :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공격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그들 자신과 그들의 믿음을 보호하려고 비그리스도인들과는 아예 상종하지 않음으로써 비신앙적인 영향력을 차단한다. 세상이 교묘하게 혹은 강제로 신앙을 타협하도록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을 종용하기 때문에 언뜻 타당한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방어적으로 살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고립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교회가 세상을 적대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마태복음 23장과 요한복음 3장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품으시고 모든 사람과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세상에 동화됨 : 세상을 등지는 방어적 자세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과 비례하여 세상에 동화되는 이들 또한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더 큰 대의를 위해 교회와 세상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회 정의나 주변 문화가 중시하는 여러 가치와 방식을 수용하고 동참한다. 그래서 선한 동기로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물론 이 주제는 성경 전체와 예수님도 중요하게 여기신 일이다. 그러나 이 접근 역시 문제점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주변 문화와 교류하며 그 우선순위와 방법,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면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동화될 때 그리스도에 대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은 세상 문화와 가치보다 더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해야 하고 세상과 대중에 영합하기보다 그들을 주도하고 선도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봄 : 문화 전쟁을 주도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이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세상을 피하거나 동화되기보다는 그 뜻대로 문화를 주도하고자 시도한다. 주로 정치를 수단으로 삼는다. 성경적인 정치 개혁과 기독교적인 후보 선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지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문화 변혁을 이루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입장 역시 문제가 있다. 세상을 ‘우리 대 그들’의 시각으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다. 

신실한 현존 :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외면하거나 동화되거나 혹은 세상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도록 부름받지 않았다면 남은 입장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의 세 입장의 장점만을 받아들이되 단점은 버리고 통합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학자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James Davison Hunter)가 주장한 ‘신실한 현존(faithful presence)’ 이다. 하나님이 이 신실한 현존의 모범이시다. 우리를 쫓아오시고, 우리와 하나 되시며, 희생적 사랑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세상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 받은 복을 세상에 베풀고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신실한 현존을 목표로 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세상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신실한 현존은 타문화권에 우리 사회의 가치를 이식하는 대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신실한 현존은 교회를 정치적 파당을 만들지 않고 투표에 참여한다. 세상의 사고방식에 흡수되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주변 세상,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선을 추구하며 주변 모든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어 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에 신실한 현존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는가? 부담과 압박감이 있지만, 조급함을 버리고 다음과 같은 세 영역에서 신실한 현존을 표현하도록 하자.

소속된 공동체 - 여기에는 이웃과 교회와 직장이 포함된다. 이 세 곳에 하나님의 신실하신 현존을 반영할 평생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맡은 책무 - 신실한 현존으로 부름받았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라는 의미는 아니다. 집안일을 하든, 건물을 짓거나 직장 상사를 보좌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성실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해야 한 (골 3:23).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 - 사람은 누구나 여러 환경에서 힘과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 중에는 다른 사람보다 이런 복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 있다. 그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세상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그 영향력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고 마음을 나누며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방법으로 그 영향력을 사용할 것인가?
 

- 위의 글은 클린터 E. 아놀드 & 제프 아놀드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난감한 질문 명쾌한 대답』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하여 부분 수정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8.07.31)_세상에_있지만_세상에_속하지_않는_그리스도인.hwp (16KB)484.jpg (224.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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