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 [제513호]
   조회수 347
2019-09-18 14:15:05

등록일 : 2019/04/02 15:03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기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전인격, 즉 지적, 정서적, 의지적인 것과 관련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 12:30).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될수록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된다. 그분을 더 사랑할수록 우리를 부르셔서 하게 하신 그 일에 대해 더욱 자원하는 마음으로 의지하고 순종하게 된다.

당신을 더 분명히 알기 원합니다.
에베소서 1장과 3장, 빌립보서 1장, 골로새서 1장의 위대한 기도는 독자들을 향한 바울의 깊은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기를 원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있던 지식은 명제적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었다. 그는 주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모든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했다(엡 1:17~18, 3:19)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조직적인 모델로 이해하려고 지나치게 열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무릎 꿇고 사랑을 드려야 할 인격체가 아닌 토론하거나 글을 쓰는 지적인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여기에 그들의 직업적인 위험이 있다. 이런 깊은 의미에서 볼 때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비서인 피페르노의 레지날드(Reginald of Piperno)로부터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의 집필을 왜 중단하느냐는 압력을 받을 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쓴 모든 것은 내가 지금 깨달은 것에 비하여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비전을 통해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물으셨다고 한다. “토마스, 너는 지금까지 나에 대해서 호의적으로 글을 썼다. 네가 받을 상급이 무엇이 되면 좋겠느냐?” 그때 그는 “다른 어떤 상급보다 주님 당신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위대한 정신적, 육제적, 사회적 성취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한 번 보는 것에 비하면 지푸라기에 불과하다(빌 3:7~10). 주님은 가장 고상한 부르심으로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로 하여금 잠깐 동안의 즐거움과 소망의 꼬투리들로 배를 채우게 하기보다는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도록 하신다.
그리스도를 더 분명히 알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핵심적인 두 가지 요소는 시간과 순종이다. 관계를 맺어 나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지속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선택하여 독거, 침묵, 기도, 성경 읽기를 하지 않으면 결코 주님과 친밀해질 수 없다. 순종은 이러한 의사소통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게 될 바로 그분의 약속에 대한 개인적인 신뢰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더 감동을 받을수록 우리는 사람이나 권력 그리고 일들로부터 덜 감동을 받는다.

더 깊이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단지 마음뿐만 아니라 경험을 통하여 그분이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무엇인지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사랑과 감사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만드신 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고 무한한 희생을 치르시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을 발견할 때 우리는 인생을 통해 그렇게 갈망하는 무조건적인 안전을 품기 시작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자발적이고 제한이나 이유가 없고 과분하다. 우리가 사랑스럽거나 아름답거나 똑똑하기 때문이 아니다. 죄성 때문에 사랑스럽지 못하고, 추악하고, 바보스러워서 사랑하신다. 사랑하기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사랑하신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 안으로 용납과 안전을 확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기쁨을 대적하는 자가 아니요, 오히려 기쁨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부르셔서 우리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것은 이러한 사랑에 반응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서 그분과 함께 사랑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더 가까이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면서 우리는 그분의 성품과 약속과 교훈을 신뢰하는 것을 배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하지 말라고 하실 때는 그분이 우리의 흥을 깨는 광대무변한 존재라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선의 관심이 아님을 아시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것을 하라고 하실 때는 그것이 언제나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열심히 따르기로 헌신하겠는가? 그렇다면 그분이 시키시는 일을 해야만 한다. 때때로 그러한 순종은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험이다.
성령이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보이신 일에 순종하는 것은 반문화적이다. 철저하게 순종한다면 때때로 인간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향한 우리의 신뢰와 의존의 정도를 시험하고 드러내는 기간이다. 영적인 삶에서 우리의 위대한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를 결심하는 것,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 위의 글은 케네스 보아의 『기독교 영성, 그 열두 스펙트럼』(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9.04.02)하나님을_온전히_사랑하기.docx (19.3KB)513.jpg (1.05M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