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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한다
“좋은 일을 해도 징벌이 뒤따른다.” 이런 풍자적인 경구를 사무엘하 6:6~7의 사건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웃사는 언약궤를 돌보는 이스라엘 제사장의 아들이었다. 다윗의 통치 기간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궤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웃사가 궤에 손을 댔을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예루살렘에 터를 잡은 후 과거부터 이스라엘이 가장 귀하게 받들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고자 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언약궤는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원전 1050년 무렵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겼다가 7개월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언약궤를 빼앗기기 전과 그 기간 중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참 된 지도자이신 하나님께 반기를 들고 이웃의 이방 국가와 적국처럼 그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셨지만 이스라엘 민족이나 새로운 왕인 사울에게 복을 내리지 않으셨고 언약궤는 약 50년간 방치돼 있었다.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 그는 사람들을 경제적으로나 영적으로 회복시키기를 원했고 언약궤를 운반해 오는 것도 그 회복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블레셋이 빼앗아 간 직후에 그랬던 것처럼 다윗은 언약궤를 잘못 취급했다. 처음 언약궤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40년 동안 만들어졌을 때, 하나님은 언약궤는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되며 반드시 레위 자손들이 장대에 메어서만 운반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출 25:14~15, 민 4:15). 하지만 다윗은 언약궤를 운반하는 데 합당한 방법보다는 편의주의를 선택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제사장의 아들 웃사(역설적이게도 그 이름은 ‘힘’이라는 뜻이다)는 이 활동에 가담해서 죄를 지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방법보다는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기를 원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를 따라서 이런 불순종을 저질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동기가 선하다고 해서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블레셋 사람들도 부적절한 방법으로 궤를 옮겼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계명이 없었으므로 이스라엘과 같은 기준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언약궤가 돌아온 뒤 주제넘게 언약궤 안을 들여다보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이 치셨던 것처럼(삼상 6:19, 민 4:20), 언약궤를 만지고 부적절한 운반에 참여했으며, 레위 지파 중 고핫 자손이 아님에도 도우려고 한 죄로 인해 웃사도 죽었다. 하나님은 어떤 죄든 심각하게 여기신다. 그분의 지시와 명령,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웃사는 이를 무시했으며 그런 그의 불순종 행위는 생명이라는 값 비싼 대가를 치렀고 모든 사람에게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 위의 글은 티모시 J. 데미 & 게리 P. 스튜어트, 『성경에서 가장 궁금한 101가지 질문』(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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