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율법주의의 의심 증상들[제494호]
   조회수 419
2019-09-18 13:43:08

등록일 : 2018/10/23 13:51

 

율법주의의 의심 증상들


 율법주의의 위험은 그리스도가 허무신 것을 다시 세운다는 것이다. 율법주의는 복음을 왜곡하고 실제로 파괴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해롭다. 율법주의는 여러 목회적 문제의 중심에 있으며 가장 흔한 영적 질병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든지 이 병에 걸리면 전염성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기에 이 질병의 흔한 증상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 의의 ‘기질’

율법주의는 자기 의의 ‘기질’을 낳는다. 이 기질은 담배나 향수 냄새처럼 숨길 수가 없다. 바리새인과 세리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에서 바리새인에 관해 생각해 보라. 바리새인들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살았다고 한다. 바리새인이라 이름 자체가 ‘구별되다’라는 어원에서 나왔다고 추정된다. 바리새주의의 본질은 보수적인 ‘성결 운동’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은 자신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 남들과 같지 않다.

• 십계명을 완벽히 기키는 사람

• 누구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 영적 훈련을 철저히 하는 사람

• 자기희생적인 사람


하지만 이러한 바리새인들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던 세리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기도 예절에 따라 하늘을 향해 눈을 들 수도 없었고, 자기 죄로 인해 가슴을 두드렸으며,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부짖고, 자기를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낮아짐이 없었다.


은혜의 폭로

예수님은 하나님 은혜의 거대한 분출을 반문화적인 방법으로 묘사하는 비유를 통해 율법주의 정신의 위험성을 드러내신다. 은혜가 나타날 때 깜짝 놀라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며 진정한 마음의 상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비유도 마찬가지이다. 일꾼들은 3시와 6시, 9시, 11시, 이렇게 하루 중 각기 다른 시간에 고용되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서는 고용된 순서와 반대로 임금을 받았다. 즉,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 가장 늦게 돈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이 나중에 온 자들에게 줄 임금이 얼마일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온 자들이 자신들에게 약속된 것과 똑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은 이 이야기의 배경에서 인간의 마음을 끄집어내신다. 자신들이 수고하여 당연히 받아야 할 것과 남들이 은혜로 받은 것을 비교하면서 불만을 쏟아 내는 일꾼의 모습을 통해 말이다. 이것이 은혜의 폭로이다. 은혜의 시험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진정한 마음 상태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교회에서 높은 자리를 받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자리도 돌아오지 않으면 화를 낸다. 이때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면 깊은 곳에서 공로의 가치에 따라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견디지 못한다.


속박의 영

율법주의는 우리의 영을 속박하기도 한다. 바울은 우리와 첫 남편의 결혼이라는 비유를 말한다. 흉가의 유령처럼 자꾸만 다시 출몰하는 첫 남편에 대한 기억, 첫 결혼에서 입은 영구적인 상처 때문에 불쑥불쑥 느끼는 욱신거림, 우리가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께 매력적으로 보일 수 없다는 의기소침, 불쑥불쑥 떠오르는 이전의 ‘학대적인 관계’에 관한 악몽 등이 우리를 죄책감으로 몰아간다. 이 죄책감이 주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용서의 확신을 약화시킨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돌아가야 하건만 자꾸만 실패한다. 율법을 향해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외치지만 율법 자체는 자비를 모른다. 율법은 용서할 힘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두 번째 남편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한다. 그가 손에 못 박히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며 우리가 약하고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원수였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말한다. 우리는 두 번째 남편이요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고도 참을성 많고 사랑 가득한 은혜를 통해서만 속박의 영에서 해방될 수 있다. 개인적, 영적, 정신적, 감정적, 기질적 해방은 율법이 해방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만 찾아온다. 우리의 약한 육신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그 해방을 이루어 주셨다. 학대를 당한 신부는 새 남편의 사랑을 마시고 그분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치료제는 무엇인가?

율법주의의 치료제는 은혜 밖에 없다. 단, 상품으로서의 ‘은혜’가 아니라 실체로서의 은혜이다. 이 은혜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그리스도 자체이시다.

이 은혜는 바로 속죄이다. 단, 이론이나 추상적인 현실로서의 속죄가 아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별개인 속죄도 아니다.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속죄이다.







- 위의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인 싱클레어 퍼거슨의『온전한 그리스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8.10.23)_율법주의의_의심_증상들.hwp (29.5KB)494.jpg (797.2K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