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됨과 획일성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다. 하나 됨을 애써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이미 하나가 되어 있다. 이것은 영적인 실재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의 하나 됨은 계속해서 자취를 감춘다. 찾아보기 너무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은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도록 기도하셨고, 성경은 그것을 힘써 지키라 말 한 것이다. 이미 하나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 됨을 유지하기란 엄청나게 어렵다.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는 서로 어울리는 것을 힘겨워 해 왔다. 죄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성경적인 하나 됨을 그것과 너무 유사한 가짜 획일성과 혼동하게 되었다. 성경적인 하나 됨 우리의 성경적인 하나 됨은 우리가 가족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됨과 비슷하다. 우리 아이들이 자동차 뒷좌석에 다 함께 탈 수 있을 만큼 어렸을 때 이들이 언제나 서로 잘 지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가끔 서로를 죽이고 싶어했다. 나는 때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아이들에게 항상 주지시켰 듯 이들은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서로와 어울리는 법을 배워가야만 했다. 이들은 선택이 아닌 혈육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구원을 받았고 당신이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는 가족이다.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지 않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의견이 완전히 달라도, 오래된 논란을 두고 싸움을 벌이기 위해 전쟁터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다. 서로 어울리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예수님으로 묶여 있다. 그리고 무엇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성경적인 하나 됨은 오직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에 근간을 둔다. 공동의 종교적 실천이나 양식, 선호도를 의지하지 않는다. 모든 신학적 요소에 대한 동의 여부에도 달려 있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지 않을 때에도 존재한다. 획일성 획일성은 하나 됨과는 매우 다르다. 이것은 마치 복제 생물과 같은 유사성에 근거한다. 때문에 획일성은 매우 편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화합이 된다. 모든 사람이 비슷하게 걷고, 이야기하고, 같은 곳을 볼 때 서로 어울리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들도 많지 않다. 나의 복제 생물을 인내하고,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하기란 무척 쉬운 일이다. 상대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기도 쉽다. 상대가 의미하는 바를 잘 알 수 있다. 상대의 고통도 느낀다. 하지만 예수님은 획일성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분이 오셔서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마긴 담을 허무신 것은 우리를 지루하고, 혼합되고, 단일화된 중간 즈음에 섞어 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반대다.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의 차이점들로 부터가 아니라, 그것들 안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다양성을 기뻐하신다.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들 증 다수가 그분의 주권적인 계획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그분이 우리를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다. 획일성의 추구가 성경적인 하나 됨의 유지를 대체할 때, 가장 먼저 우리는 경계표지를 세우려는 경향을 띤다. 경계표지는 우리를 어떠한 그룹과 동일시 시켜주는 효과적인 행동과 상징, 견해를 말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모임에 모피코트를 입고 참여한다면 당신은 분명 그곳의 일원이 아니다. 전통적인 교회의 예배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뛰며 찬양한다면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의 행동, 복장, 생활 방식을 비롯해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와 강조하는 것들까지 이 모두가 다 경계표지들이다. 관계나 공동체 속에서 이러한 경계표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누가 천국의 일원이고 아닌지에 대한 우리의 경계표지가 하나님의 것보다 좁아진다면 문제가 커진다. 예수님이 세우신 것보다 더욱 좁은 경계표지들을 세우고 우리 지표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을 영적 협잡꾼이나 주님의 원수인 양 대할 때, 우리는 우연한 바리새인들이 된다. 우리의 목표가 양 떼를 보호하는 일일 수는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세우신 것보다 좁은 경계표지들은 결코 양 떼를 보호하지 않는다. 도리어 공동체에 획일성만 견고하게 세우고, 공동체는 분열된다.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일, 즉 형제 사이를 이간질할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말하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인 아군 폭격 이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위의 글은 래리 오스본의 『당신의 열심이 위험한 이유』(새물결플러스) 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