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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 행동으로 표현하라[제415호]
   조회수 228
2019-09-18 09:43:20

 등록일 : 2017/03/28 09:34




긍휼행동으로 표현하라

 

크리스처니티투데이(Christianity Toda)’의 고정 필진이며 현재 캐나다 ‘뉴라이프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목사인 마크 부캐넌은 이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가장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소외된 자들을 더 많이 돕지 않는다며 따끔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런 곳이다분노는 끓어 넘치지만 긍휼은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그래서 예수님은 우셨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우심그것은 이 땅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를 향한 긍휼의 표현이며 겟세마네 동산의 절규를 거쳐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 놓으시는 것에서 절정을 이룬다이러한 예수님의 긍휼의 가장 큰 특징은 늘 행동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눈먼자를 만나셨을 때 그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의 눈을 만지셨다나병환자를 만나셨을 때는 그를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다하나밖에 없던 아들의 죽음앞에 절규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며 아들이 누워있는 관에 손을 대셨다.

긍휼은 불행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동정심이다비탄에 잠긴 우리 인간에게 안도감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동정심을 가동시키실 때에 비로소 우리는 긍휼을 경험하게 된다그리고 그 긍휼을 통해 은혜를 경험하며 변화된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이다이 긍휼이 우리의 마음을 늘 감싸도록 하고 있는가이러한 주님의 긍휼이 우리를 통해 또 다시 누군가를 향하여 흘러가도록 하고 있는가이를 위해 우리에게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속도를 늦추자.

서두름은 긍휼을 베풂에서 최대의 적이다서두르면 주변을 눈여겨볼 수 없기 때문이다보지 못하면 행동할 책임이 없다고 자기를 합리화하면서 바쁜 삶을 핑계로 숨어버린다바쁜 일상이기에 길거리의 노숙자를 애써 외면한다때론 외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난하기 까지 한다폐휴지를 싣고 노후된 손수레에 불안하게 이동하는 노인을 바라보기만 한다약간의 시간이 주어질 때면 그저 나의 노후가 저런 비참한 상황은 되지 말아야 할 텐데라는 정도의 우려를 담은 생각만 할 뿐이다갑자기 찾아온 삶의 위기 앞에서 어찌할 바 몰라 하는 교우를 만나지만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공감을 하지 못한 채 가장 쉽게 기도할께요!’라는 말로 답한다그러고 나서 진심이 담긴 말이 아니기에 자신이 한 말을 쉽게 잊어버린다.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가 지나칠 정도로 우리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가지고 속도를 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속도를 늦춰야 한다사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을 입은 자라는 사실과 우리가 받은 긍휼을 누군가에게로 흘려 보낼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노숙자를 외면하고 비판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내 지갑과 주머니에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자신의 평생의 삶을 노후된 손수레를 의지한 채 힘겹게 끌거나 밀고 있는 그 노인들에게 다가감으로써 그들의 수레를 밀어주거나 끌어주는 모습이 필요하다. ‘기도할께요!’라는 쉬운 말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그냥 쉽게 지나치기 보다는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라는 말과 함께 더 듣고 더 돕고자 하는 태도와 공감을 나누어야 한다.

예수님은 신발에 먼지를 묻히시며 갈릴리 온 지역을 두루 다니시며 군중 사이를 거니셨다늘 사람들과 함께하셨고 그들의 문제 한복판에 당신 자신이 머무시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의 긍휼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대가를 지불하자.

삶의 고통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고통에 함께 공감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그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으며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들의 고통에 참여하기 위한 대가 지불은 결코 만만치 않다고통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그들이 느끼는 고통과 어려움의 무게가 심해질수록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공동체에 무거운 짐이 될 가능성이 있다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무거운 짐을 함께 덜어주고자 하는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여러가지의 대가를 지불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내가 도운다고 그들에게 큰 도움이 안된다’ 혹은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라는 생각으로 눈앞에 찾아온 기회를 날리지 마라그러한 생각을 통해 자신이 감내해야 할 불편함을 회피해서도 안된다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보상은 더 많이 받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것은 엄청난 요구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대가 지불을 위해 우리에게 어떤 것들이 요구되겠는가?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의 재설정이 요구될 수 있다. 개인 스케줄의 재조정을 통해 자기가 아닌 타인의 유익을 위한 기회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이다물질 사용의 우선순위의 재설정이 요구될 수 있다. 고통에 빠진 이에게 긍휼로 다가가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표현에서 그들을 위해 자신의 물질 사용을 점검하며 자기 유익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요구될 수 있다누군가를 긍휼이 여기며 그들을 위로하고 돕기 위하여서는 자신의 편안한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긍휼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거저 받았기 때문이다이것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냄을 받았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이기도 하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10:8b).

하지만 이 세상은 예수님과 그분을 따르는 우리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척박한 곳이다교묘한 사단과 그 가르침의 세속성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에게만 시선을 두라고 강요한다당장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할인 판매되는 각종 물건을 사재기하여 집안에 쌓아두고밖에서 안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은 얼마든지 밖을 볼 수 있는 창문과 커튼을 달고 자신만의 세계에 머물며TV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감동적인 장면에 눈시울이 젖지만 어디까지나 관객의 자리에만 머물라고 하는 시대이다구질구질한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예배도 편안한 소파에 앉아 원하는 예배실황과 메시지를 클릭만 하면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세상에 보냄받은 우리가주저하지 않고 행동을 통해 긍휼을 표현한다면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의 회복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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