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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목표, 나쁜 목표 [제576호]
   조회수 481
2020-06-30 13:59:21


 


좋은 목표, 나쁜 목표



성공, 성취, 승리, 완성 보상, 만족. 우리 사회에 널리 사용되는 이런 단어는 모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이루려는 모든 인간의 바람을 담고 있다. 가치 있는 일을 이루겠다는 바람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꿈은 공짜다. 하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이루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모든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는 성취의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시합에서 이기거나 가장 멋진 레고 작품을 만들고 싶어한다.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밤새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기업가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애를 쓰며, 편안한 은퇴 생활을 꿈꾸고 자녀에게 좋은 유산을 남기기 원한다. 우리 모두는 의미 있는 일을 이루었다는 확신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 원한다.

바울은 목적과 방향성, 인내심을 갖고 싸우고 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빌립보서 3장에서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상, 곧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해 열심히 달려간다고 말한다. 신약 시대에는 로마 제국 곳곳에서 전차 경주가 벌어졌다. 따라서 바울은 전차를 몰고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심판관이 결승선에서 우리에게 최종 판결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기에 바울이 품은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를 닮고 하나님이 주신 일을 마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여러가지 단기 목표와 계획을 세웠다.

신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합, 구체적으로 경주에 비유한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승리하는 경주자는 방해물을 모두 한쪽으로 치우고 목표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인내하며 달린다. 그의 눈은 결승선의 기둥에 고정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목표는 바로 예수님이다.

‘목표’(goal) 라는 단어는 원래 ‘장대나 막대’를 의미했다. ‘목표’는 모든 참가자가 바라보며 달릴 수 있도록 결승점에 설치한 장대나 막대였다. 목표는 헬라어로 ‘스코포스’(scopos)다. 여기서 ‘시야’를 뜻하는 영어 단어 스코프(scope)가 나왔다. 이는 시선을 고정하는 표적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정의를 종합하면, 목표는 우선적인 일을 이루고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 삶이 바라보아야 할 표적이다. 그러나 목표에는 좋은 목표와 나쁜 목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좋은 목표

노아의 목표는 방주를 짓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계획을 주셨다. 방주를 짓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충성스럽게 순종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작업 마감일과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셨다. 노아는 하나님이 이 땅에 그분의 의를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모세는 장막을 지을 때 하나님께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은 좋은 목표를 설정하신 가장 좋은 예다. 예수님은 사역의 끝자락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 17:4)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사명을 이루시기 위한 목표들과 계획들에서 한시도 눈을 떼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정해진 시간에 십자가로 가셨다.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셨다. 이 모든 일은 구속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장기 계획의 단기 목표들을 차례로 이루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분 그리고 그분의 말씀과 진리를 철저히 의지하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나쁜 목표

이 사례 가운데 하나는 창세기 11장 4절에 나오는 바벨탑이다. “우리 자신을 위해 도시를 건설하자. 우리 이름을 떨치기 위해 하늘가지 닿는 탑을 쌓자.” 사람들이 이런 목표를 세우자 하나님은 그들이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언어를 혼란하게 하셔서 그들을 뿔뿔이 흩으셨다(7절).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상상력과 창의력, 팀워크의 잠재력을 가지고 나쁜 목표를 추구했다. 다니엘 4장에 등장하는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 힘으로 자기 영광을 위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다 말씀하시며 들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살게 하셨다.

신약에도 나쁜 목표의 사례가 많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다. 모든 것이 풍요로웠던 그는 낡은 곳간을 허물고 자신의 모든 재물을 넣을 만큼 큰 곳간을 만든다. 주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 부르셨다.

야고보서 4장에서도 나쁜 목표의 사례가 발견된다. “…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13~17). 이 사람들은 적절한 단기 계획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다음 해를 위한 장기 계획도 세웠다. 야고보는 그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주의 뜻”을 목표로 삼고 추구하라고 말했다. 교만과 자신의 뜻, 이기적인 욕심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쁜 목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든지 계획을 세워도 좋지만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고 말씀하신다. 계획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설 것이다. 



위의 글은 다니엘 핸더슨 〮브렌다 브라운 공저, 『내 영혼의 갈망』(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 수정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0-06-30 좋은 목표 나쁜 목표.hwp (29.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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