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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현존 [제592호]
   조회수 424
2020-10-27 12:28:35


 

신실한 현존(faithful presence)

성경은 요한복음 1716절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로마서 122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의 개념을 언급한다. 아직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사람처럼 살라는 말인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대하는 가장 흔한 몇 가지 태도를 살펴보자.


방어적 자세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은 때로 세상의 공격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그들 자신과 자신들의 믿음을 보호하려 애쓴다. 비그리스도인들과 아예 상종하지 않음으로 그들의 비신앙적 영향력을 차단한다. 명확하게 기독교적이지 않은 일은 아예 듣지도 읽지도 보지도 않는 사람도 있다. 비그리스도인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나 활동이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비그리스도인과 어울리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친해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교묘하게 혹은 강제로 신앙을 타협하도록 끊임없이 그리스도인들을 종용하기 때문에 언뜻 타당한 방법처럼 보인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는 목표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방어적으로 살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고립될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가 세상을 적대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마태복음 23장과 요한복음 3장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외면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품으시고 모든 사람과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세상을 외면하는 것은 세상을 대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세상에 동화됨

세상을 등지는 그리스도인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신자들이 있다. 그들은 더 큰 대의를 위해 교회와 세상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회 정의나 주변 문화가 중시하는 여러 가치와 방식을 수용하고 동참한다. 선한 동기로 사회 활동에 참여한다.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는 주제이며, 예수님도 중요하게 여기신 일이다. 그러나 문제점은 그리스도인이 주변 문화와 교류하며 그 우선순위와 방법, 이데올로기를 수용하면 세상과 구분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동화될 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타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따라야 한다. 세상 문화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수준의 선을 추구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변 문화보다 더 고차원적인 것을 추구해야 하고, 세상과 대중에 영합하기보다 그들을 주도하고 선도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봄

이 부류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변 세상을 피하거나 동화되기 보다 그 뜻대로 문화를 주조하고자 시도한다. 주로 정치를 수단으로 삼는다. 성경적인 정치 개혁과 기독교적인 후보 선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지지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문화 변혁을 이루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은 어떤 면에서 상식적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 역시 문제가 있다. 세상을 우리 대 그들의 시각으로 보게 된다. 그레고리 톰슨(Gregory Thompson)이 지적한 대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굴복시켜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사람들을 대적하는 자들로 볼 이유가 충분히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을 위해 죽는 길을 택하셨다.

 

신실한 현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외면하거나 동화되거나 혹은 세상에 맞서 자신을 방어하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면 남은 입장은 무엇인가? 대답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앞의 세 입장의 장점만을 받아들이되 단점은 버리고 통합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학자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James Davison Hunter)가 주장한 신실한 현존’(faithful presence)에서 그 내용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은 신실한 현존이 무엇인지 모범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쫓아오셨고, 우리와 하나 되시며, 희생적 사랑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세상을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 받은 이 축복을 세상에 베풀고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끝까지 사랑의 수고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신실한 현존을 목표로 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도피하거나 세상과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

신실한 현존은 타문화권에 우리 사회의 가치를 이식하는 대신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신실한 현존은 교회를 정치적 파당으로 만들지 않고 투표에 참여한다. 세상의 사고방식에 흡수되지 않으면서도 세상과 적극적으로 교류한다. 주면 세상,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선을 추구하며, 주변 모든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된다. 다음과 같은 세 영역에서 신실한 현존을 표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소속된 공동체 이웃과 교회와 직장이 포함된다. 이 세 곳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현존을 반영할 평생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맡은 책무 집안일을 하든, 건물을 짓거나 직장 상사를 보좌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성실해야 한다(골로새서 3:23).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 사람은 누구나 영향을 미치며, 듣기 이상할지 모르지만 여러 환경에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 중에는 다른 이들보다 이런 축복을 더 많이 받은 이들이 있다. 그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

[위의 글은 클린터 E. 아놀드 & 제프 아놀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난감한 질문 명쾌한 대답(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 수정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0-10-27_신실한 현존.docx (16.3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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