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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제594호]
   조회수 1281
2020-11-09 17:12:18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그리스도의 얼굴을 주시한다고 상상해보라. 오직 그리스도와 일대일로 마주볼 그 순간을! 전 생애가 당신 앞에 펼쳐지고 그리스도께서 보시는 그 장면 장면을 당신도 함께 보고 있다.

아무것도 감출 수 없다. 당신이 했던 일을 좋게 만들 수 있는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당신을 대변해줄 변호인이 없다. 그리스도의 눈에 비춰진 모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젠가 우리가 직면해야 할 모습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리는 종종 베마(bema, 고린도후서 5:10절에서 바울이 기록한 심판대를 의미하는 헬라어)’ 라고 불리 운다. 문자적으로 베마는 승자에게 면류관을 수여하거나 연설을 하도록 높이 세워진 연단을 뜻한다. 고대 로마의 시이저(Caesars)는 전쟁터에서 영웅적인 공적을 올린 살마들에게 상을 주기 위해 심판석에 앉았다. 그리스도의 베마는 다른 모든 심판석을 능가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재판장의 부름을 받는다.

상급에 대한 개념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그것은 모든 인간의 이성을 능가하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상급 자체를 바라보고 상급을 원하지 않는다. 상급이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심을 반영하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25:21)” 하시는 말씀을 들을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영광이라면, 그 영광을 얻기 위해 천국의 앞자리에 앉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베마와 계시록의 크고 흰 보좌앞에서 이루어질 심판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두 심판 모두 우리의 출두를 요구한다. 거기에는 예외가 없고 특별 집행 유예 같은 것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우리는 거기에 서야만 한다.

공정한 심판을 받는다.

우리를 완벽하게 아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구세주에게 심판을 받는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분이 이제 심판자로 서 계신다. 심판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는 다름아닌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시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신실하지 못했다면 그 심판은 엄격해질 수도 있다.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았는지 대답해야 한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잘 하였도다라고 하시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상급은 회심 후 우리가 주어진 기회에 얼마나 신실했는가에 따라 돌아온다.

철저한 심판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심판대 앞에 드러나라고 말했을 때, ‘다 나타나게 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파네로오(phaneroo)’를 사용했다. 이것은 안에 든 것을 뒤집어 모두 다 꺼내놓는모습을 묘사하는데 쓰이는 단어다. 우리는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으로”(고후 5:10) 심판을 받는다. 선한 행위는 사랑스럽게 기억될 것이다. ‘악한혹은 쓸데없는 행위는 선한것에 반대되는 행위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세부적인 사항들이 상황에 따른 동기와 행동들과 함께 마지막 판결에서 드러난다. 지금은 가리워져 있는 모든 것들이 그날에는 다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 다만 그리스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반대할 정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편견 없는 심판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판단하실 원리들을 요약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2:11)고 말한다. 실제로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 즉 사실에 근거한다. 특혜는 없다. 이 세상에서 힘과 권세를 의지했던 사람들은 모든 형태의 속임수들, 그들을 지탱해주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외적인 요소들은 내적인 성품의 실체로 가려진다. 판사이신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로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보실 것이다.

개인적인 심판을 받는다.

심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임을 시인하겠다고 약속한 천사들(12:8)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달란트(므나) 비유에서 받은 달란트를 묻어두었다가 비난받은 종을 기억해보라. 하지만 우리 친구들이 그 자리에 있고 없고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같은 입장에 놓일 것이며 그 누구도 혼자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리거나 황당해 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눈과 마주치게 될 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더 이상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스도는 각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분은 한순간에 우리의 전 생애를 다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다.

자비로운 심판을 받는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쏘신 의로운 분노의 과녁이 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개개인을 바르게 평가해서 장차 오는 나라에서 우리가 받을 위치를 결정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화를 내시지 않지만 실망하실 것이다. 우리는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죄와 실수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용기를 가지라. 불의한 생각과 행동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안다. 개인적으로 회개한 죄는 그것이 상급을 잃게 하는 것이 아닌 한 들춰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묵인하고 있는 죄,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평가와 심판의 대상이 된다. 실패 가운데 자비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상급을 주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아내시리라 믿는다. 사도 바울은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고 했다. 사실 우리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거리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주적인 인터넷을 살펴보며 칭찬할 만한 요소들을 찾아내실 것이다.

[위의 글은 어윈 W. 루처, 영원한 상급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0-11-10_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docx (18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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