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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에서 나오는 꿀 [제 609호]
   조회수 863
2021-03-01 20:44:15


반석에서 나오는 꿀

시편 8116절에는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시는 약속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그분이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우리를 만족케 하신다는 약속이다. ‘반석에서 나오는 꿀’ – 딱딱한 것에서 달콤한 것이 나온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당신도 이 약속을 주장해야 한다.

시편 8116절의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적 의미가 아니다. 꿀이란 벌집이나 꿀통에서 얻는 것이다. 주님은 훨씬 깊은 것을 말씀하신다. “살다 보면 험한 길도 나올 것이고 바위에 부딪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낙심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바위에서 나오는 꿀을 주겠다. 험한 인생 경험에서 너는 단맛을 볼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왜 인생길의 바위를 제하여 주지 않으시는지 궁금했었다. 험한 길을 좋아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앞서가서 돌을 없애 주셔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달갑지 않겠지만 그래도 바위는 필요하다. 인생의 가장 달콤한 경험은 바위 때문에 존재했음을 당신도 배웠을 것이다.

물론 성경 시대의 사람들도 그랬다. 요셉. 13년간 그에게는 돌부리밖에 차이는 게 없어 보였다. 형들의 미움, 애굽에 노예로 팔림. 그런 후에 고분고분 죄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옥에 갇혀 거의 잊혀진 신세가 되었다. 험한 바위의 연속이었다. 의미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다 끝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자 요셉은 반석에서 꿀을 얻었다. 그런 힘겨운 삶은 그가 하나님의 종이 되고 애굽의 제2인자가 되는 준비 과정이었다.

다윗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이었지만 한낱 전과자처럼 쫓겨 다녔다. 사울 왕은 그를 미워하여 죽이려 했다. 다윗은 집을 피하여 굴속에서 살아야 했다. 다윗이야 말로 험난한 세월을 보냈다. 마음에 의심이 생기고 적들의 회유가 들린 게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에게 반석에서 나온 꿀을 주셨다. 심령에 새 힘을 주는 시편의 많은 시들은 그의 고달픈 인생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삶의 즐거움을 어디서 얻는지 보면 그 사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잘못된 짓을 저지르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어떤 사람들은 책임과 역경을 피하고 편안히 안주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다.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인간이 절대 성숙하고 강인해질 수 없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일부러 역경을 찾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역경을 피해 달아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 뜻 안에서 역경을 받아들이며 주님께 반석에서 나오는 꿀을 구한다.

잘 보면 시편의 많은 시들은 눈물, 의뢰, 승리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시는 눈물과 환난으로 시작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러다 그는 자신과 역경에서 눈을 떼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시련은 승리로 대치되고 한숨은 노래로 바뀐다. 반석에서 꿀을 얻은 것이다.

지금 당신은 험한 길을 지나는 중일 수 있다. 신실하게 본분을 다해왔는데 그만 바위에 부딪쳤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반석에서 나오는 꿀을 달라고 기도하라. 주님 뜻에 맡기면 언제나 험한 것에서 단 것이 나오게 되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험할 길에 대처할 방도가 있어야 한다. 험한 길이 존재하지 않는 듯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래봐야 길은 더 험해 질 뿐이다. 예수님이 지상에 사실 때 당하신 역경들을 생각해 보라. 가난한 집에 태어나 내 것이라 내세울 만한 재산도 없었다. 멸시 받고 천대받는 민족에 태어났다. 당시 유대인은 강대국의 발굽에 짓밟힌 소수 집단이었다. 예수님이 선을 행하여 할 때마다 누군가 그것을 악으로 둔갑시키려 했다. 그분이 발길을 멈추어 죄인을 사하시면 사람들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 불렀고, 친구와 함께 음식을 드시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라고 비난했다. 그분은 진리를 말씀하셨지만 거짓말쟁이 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신 그분을 종교 지도자들은 마귀와 한패라고 몰아세웠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시든 그분은 험한 꼴을 당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번도 험한 길이라고 달아나지 않으셨다. 자신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있음을 아셨기에 그분은 바위와 그 속에 든 꿀을 받아들이셨다. 어느 날 그분은 음식을 내놓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 그분은 반석에서 꿀을 얻으셨고 그 꿀로 만족하셨다.

그렇다. 예수님의 삶에는 바위가 많았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분을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바위 위의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해골처럼 생긴 갈보리라는 언덕이었다. 곧 친구들이 그분의 시신을 거두어 요셉의 새 무덤인 바위 안에 두었고 거기서 그분은 사흘을 누워 계셨다. 그러나 그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 갈보리 언덕과 무덤에서 구원의 단 꿀이 흘러나온다. 반석에서 나오는 꿀이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가?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일단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알고 있다면 당신은 인생의 험한 길을 당당하고 용감하게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반석에서 나오는 꿀을 주시기 때문이다.


[위의 글은 워렌 위어스비, 고난의 삶에 소망을 말하다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1-03-02_반석에서 나오는 꿀.docx (16.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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